[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4)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9.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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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부엌 한쪽 구석에서 남몰래 누룽지를 훔쳐 먹다가 들킨 듯 놀란 표정의 영천댁이다
화장품 품평회서 말 한마디 잘못 한 것을 두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었다
지난날의 행패를 생각하면 그분께 귀싸대기를 왕복으로 맞고 또 맞아도 한마디 말도 못 할 이 년인데!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성~님! 죄송하네요! 그리고 지가 뭐~ 대처로 가지 죽으로 가남요! 몇 년이고 또 몇 년이고 흘러 구년묵이 정이 그리운 날에는 만사를 제쳐 내 발로 찾아오면 되지요! 그때는 그리운 얼굴이 마당 복잡하게 오글오글 모여 그리웠던 세월만큼이나 강판에다 썩썩, 있는 만큼 감자를 갈아 전이라 두툼하게 붙여서는 뜨겁다 호호 불고, 호메이고기(‘양미리’의 방언)라 한 두름 사서는 화톳불이라 잉걸불에 노릇하게 굽어 입 주디(‘주둥이’의 방언) 시꺼멓게 양손으로 들고 뜯고, 가마솥에 서너 국자 된장을 훌훌 풀고는 이루꾸 한 줌 아낌없이 넣어 시래깃국이라고 맛나게 끓여 드리면 되잖아요!”

“자네는 말이라 그런지 참기름에 미끄러지는 듯 참 쉽기도 하네! 한데 생각해 보게 늙은이에게는 하루하루가 독약이라고 몇 년! 그 몇 년이 문제지! 그렇지 암만, 저승길이 코앞인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을 성으로 보이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내일 당장 입이 궁한 것은 어쩔 거냐고!” 섭섭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성~님은 떠나가는 사람을 두고 발길 무겁게 나무라지 마세요! 그리고 영천댁 솜씨도 이제는 어지간하네요!” 앞으로의 공을 영천댁에게 은근하게 떠넘겨서 하얗게 웃는다. 성주댁의 그 말에 감골댁이

“그러고 보니 오늘 영천댁이 어지간히 참고 있는 모양인갑네! 입이 근질근질해서 벌써 찔뚝-없은(‘주책없다’의 방언) 몇 마디를 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주위를 둘러보는데 옷고름을 입에 넣어 잘근잘근 씹던 영천댁이 따가운 시선을 의식, 화들짝 놀라 토끼 눈으로 동그랗다.

“어~ 머~머! 다들 왜 그래요! 어째 다들 나만 쳐다보고 그래요! 나는 오늘 입도 뻥긋 안 했어요!” 정색이다. 부엌 한쪽 구석서 남몰래 누룽지를 훔쳐 먹다가 들킨 듯 놀란 표정의 영천댁의 모습이 어찌나 우스워 보였던지 ‘호호호’하고 웃던 김천댁이

“아~ 이 여편네야 누가 뭐라나! 오늘 이후 이 동네 음식은 영천댁이 주동으로 책임이라는데 어떻게 자신이 있나 모르겠네?”

“지가요? 지는 아직 멀었어요! 보름달에 반딧불이라고 성주형님을 따라가려면 한참이나 멀었어요!” 손사래다. 그런 영천댁을 보고 빙그레 웃던 성주댁이

“아니야~ 동생! 그만한 실력이면 어디를 가더라도 한 대접 받네! 때아니게 겸손을 떨기는! 평소 하던 대로만 하시게!” 추켜세워 거들고 나설 때 영천댁은 가만, 홀로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즈음 들어 서방이고 아이들이고 간에 그 흔하던 반찬 투정이 없어졌다는 생각이다. 신혼 초와 시어머니인 청솔댁의 사후를 들어서

“반찬이라고 죄다 왜 이래~ 이것은 쓰고, 저것은 맵고, 식초투성이고, 그럴싸해서 입에 물고 보면 짜거나 아니면 싱겁고, 같은 재료를 쓰면서 당최 왜 이래! 돌아가신 어머니를 편드는 건 아니지만, 내용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 큰 어른의 치기 어린 반찬 투정 같지만, 어디 한 가지라도 먹을 만 것이 있어야지!” 툭하면 영천양반은 물론 식구들의 입버릇 같은 투덜거림을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오래다. 이제는 기억에서도 가물가물 까마득하다는 생각이다.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는데 그 시작점은 할머니의 초가삼간을 인 날 이후로 기억되었다. 그날 성주댁의 시시콜콜한 간섭 아래 고깃국을 끓인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다는 생각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날 이후 동네에서 모임이라도 있다 싶으면 성주댁은 영천댁을 사제 간도 아니건만 조수처럼 끌고 다녔다. 눈치가 이상하다 싶으면 나이를 핑계로 윽박 질려오는 통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다. 잠시도 옆을 못 떠나게 붙들어 놓고는 사사건건 간섭이다. 소금은, 고춧가루는, 간장은 하는 등으로 억지춘양 격, 숟가락을 손에 들려 양을 조절하고, 넣는 시점 등을 일일이 가르쳐왔다. 음식의 간을 볼 때도 제일 먼저 불러서 맛을 보게 했다. 조리과정을 일일이 열거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지겹지도 않은지 반복을 연속으로 입이 아파라 설명이다.

하지만 본인은 최선으로 정성을 다한다지만 그것은 영천댁이 볼 때 하찮은 지청구에 불과했다. 게다가 늘 잔소리꾼으로, 몸종 취급에 일꾼처럼 부러 먹는 성주댁이 진정 안 미울 수가 없었다. 화장품 품평회서 말 한마디 잘못 한 것을 두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성주댁을 두고 형님이고 나발이고 간에 영천댁도 반항 아닌 반항을 하고 싶었다.

문득 자신도 모르게 반항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영천댁은 찔끔하는 두려움에 온몸으로 싸하게 소름이 돋는다. 할머니를 대상으로 가해자로 지낸 과거의 몇 년이 떠올라 눈앞이 아득하다. 어째 그랬을까? 새삼 후회가 막급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건만 차마 용기가 없어 망설여 왔던 지난날의 자신을 죽여 버리고 싶도록 미웠다. 사람이라면 이럴 수는 없다며 도리질에 의지의 자유를 부정으로 맞섰건만 무리에서 이탈은 죽음보다 끔찍하다 여겨 늘 제자리를 뱅뱅 돈 기억이 끔찍할 뿐이다. 그렇게 이를 악물어 악인의 탈을 쓰고는 선을 빙자로 한 도덕적인 삶, 나만 그랬었나? 그렇게 자신을 속여서 허수아비로, 후회로, 가식으로 살아온 삶에도 실오라기 같은 용서란 단어의 씨앗 하나를 품었나 보다. 파릇한 새싹 하나 방그레 돋았나 보다.

어느 날인가? 이른 봄을 맞아 냉이 무침을 상에 올렸을 때다. 시어머니인 청솔댁의 성화를 좇아 갖진 고생 끝에 귀하게 얻은 아들이

“엄마~ 이게 무슨 나물무침이야 진짜로 맛있다. 감칠맛으로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중에 달짝지근한 것이 봄이 입안에 가득 든 것 같아! 진짜 엄마가 요리한 것 맞아~ 혹 성주댁 아줌마 집에서 얻어 온 것 아니야!” 하는데 가슴이 뿌듯하더란다. 나도 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뱃속으로부터 새 생명의 태동이 느껴지자 시어머니의 성화가 그리워지듯이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성주댁의 잔소리가 노랫가락처럼 들리더라는 것이다.

“에~고 무슨 말씀들을 지는 재주가 메주라 아직은 엉터리에 서툴러 빠져 성주형님 손맛을 따라가기에는 한참이나 멀었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성~님은 그간 좀 더 다잡아 세세하게 가르쳐 주질 않고요! 회초리라도 들지 않고!” 성주댁을 바라보는데

“어~ 머~머 이 아줌씨가 뭐라 카노?~ 내가 손위 동서에 언니도 아닌데 천하에 나쁜 년으로 몰아 뜬금없는 회초리라니! 하여간 이 여편네 말본새 좀 보소! 물에 빠진 사람 건졌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으로 어째 이카노! 그리고 영천댁아~ 그만이면 됐네! 다 가르쳐주면 나는 뭐가 남게! 청출어람, 자네 솜씨가 너무 뛰어나서 부지불식간에 식당이라 차린다고 나 맹크로 이사를 입에 올리면 그 원망은 고스란히 내가 다 듣게! 그리고 참~ 그간 자네의 마음고생에 비에 한참이나 늦었건만, 진즉에~ 진즉 했어야만 하는데! 못난 이 부엌데기가 용열하여 지금에서야 엎드려 절 받기로 동상에게 용서를 비네! 미안하네! 진심일세! 지난날의 모질었던 나를 부디 용서하시게!”

“아이고 성님은 무슨 말씀을! 용서라니요! 가당치가 않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지는 뭐가 되게요! 공납금 한 푼 안 내고! 오히려 지가 더 고맙지요! 성~ 님! 진짜로 감사해요!” 치맛자락에 쓱쓱 닦은 손을 성주댁을 향해 내밀 적에 감골댁이

“그~려 그렇게 속정으로 푸는 모습이 가슴 훈훈하여 보기 좋구먼! 사람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얼른 저 손을 잡아주게나! 그리고 이쯤에서 영천댁도 알건 알아야겠지! 다름이 아니라 이 모든 게 다 철수 할머니! 그렇지 네 양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자네를 위해 베풀어준 덕인 줄로만 알게나!”

“아니 우리 양어머님이 왜요?”

“왜는 왜야! 그 어른이 시간 나고 틈만 나면 손을 부여잡고는 내 딸내미를 좀 봐주게! 눈물을 글썽글썽 당부잖아! 불쑥불쑥 내뱉는 말이 귀에 거슬리고 생각 없는 거친 행동이 다소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막내딸입네!, 귀여운 여동생 인양 여겨서 어여삐 봐 주시게! 애원 조로 부탁한 때문이지!”

“이 천하에 몹쓸! 전갈에 독사 같은 수양딸도 딸내미라고! 천지 분간을 몰라, 위아래도 모르고 날뛴 지난날의 행패를 생각하면 그분께 귀싸대기를 맞고 또 맞고 맞아도 한마디 말도 못 할 이 년인데! 그런 이 년을 두고 그 어른께서는 죄인처럼 굽신굽신, 언제 그토록 형님들께 간곡하게 부탁했는지요? 하긴 저도 언제부턴가 성주형님의 행동거지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동네 아낙네들이 죄다 아는 그런 사실을 나는 어째서 낌새조차 못 느꼈을까요? 그러고 보면 내 머리는 어깨 위의 장식품으로, 세상 물정은 어두워 칠락 팔락으로 밉상에 덜렁거릴 줄만 아는 칠칠치 못한 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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