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1)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1)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8.28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잔뜩 미루어 두었던 일을 마친 듯 홀가분한 표정이 그랬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그건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번지르르하게 내뱉는 말이고
아부지 미워! 딸내미에게 뭐 해준 게 있다고 야속하게 엄마마저 데려가요!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올 적마다 앵무새처럼 소박이 아니라는 말만 되뇌는 고모는 손을 흔들어 쑥스럽게 웃으며 재를 넘어갔다. 그런 고모의 가녀린 뒤태를 보는 할머니의 가슴은 도려낸 상처가 덧나 짓물러 내리는 기분이다. 그런 한편으로 시어머니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걱정이다. 아니면 시집에서도 어지간히 이력이 붙어 묵인인가 싶었다. 성급함이 앞서서일까? 차라리 이참에 아기라도 들어섰으면 안심이다 싶건만 말과 행동으로 보아 아직은 섣부른 기대만 같다. 귓밥에 딱지가 않도록 타이르고 얼려 보지만 목석(木石)에 경 읽기도 아니고 할머니도 거의 포기상태다. 그런 중에도 재를 넘은 고모는 보고 싶었다는 노래를 불러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때마다 수학의 공식처럼 서러운 세월에 애가 타는 할머니와 무턱대고 반가운 고모가 부둥켜안아 눈물바다다. 그런 가운데 점심상을 밀쳐놓기 무섭게 쌈짓돈을 들어서는 고모가 매번 승자다. 돈에 관해 할아버지에게 늘 승자였던 할머니가 고모를 만나면 언제나 패자다. 아니, 못 이기는 척 져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걸 두고 천적 관계라 불러야 하나! 전생의 빚쟁이가 자식으로 온다더니 하여간 빈손으로 와서는 쌈지를 탈탈 털어가는 고모다. 그런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심술쟁이, 욕심쟁이, 노망난 할망구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아 동네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는다. 전날에는 품앗이 차, 마지못해서 했다면 부탁 아닌 부탁에 없는 일거리도 만들어서는 적극적이다. 빈 쌈지를 채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동네 아낙들도 그런 할머니를 두고 입을 내밀었건만 그간의 정리로 보아 애교로 넘기고 있었다. 부잣집 작은 마님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모든 경제권이 마님인 시어머니에게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으라 여긴 때문이다.

인생의 이치가 또 그렇게 짜진 모양이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순리로 다 그런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의 쌈지로부터 고모의 손으로 넘어가는 돈, 하는 꼬락서니를 쌍심지로 지켜보던 할머니도 기어이 속이 상했는지

“있는 것들이 더하다고 저런 저 앉은자리에 풀도 안날 천하에 악독한 년 같으니!” 매번 도끼눈으로 떠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허세며 남들이 보기에 허울 좋은 핑곗거리일 뿐이었다. 정을 담은 마음을 은근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딸에 대한 일종의 사랑표현 방식에 불과했다. 그새 할머니의 얼굴은 생기가 돈다. 잔뜩 미루었던 일을 마친 듯 홀가분한 표정이 그랬다. 그리고는 곧장 대문을 나서는 고모가

“엄마 나~ 가!” 할 때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앙앙불락하던 할머니가 방문을 활짝 열고는

“내사~마! 니~ 년이 가든 동 마는 둥!” 속마음과는 달리 시큰둥한 표정으로 돌아앉는다.

“궁상맞기는 저 할마씨는 또 저런다. 웃으며 보내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나?” 입속말로 구시렁구시렁하는 고모가 등을 보일 때면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 붉히는 할머니다. 끝내 옷고름을 접어 눈가로 간다. 혈연으로 이어진 모녀지간이란 그런 것인가? 그러던 어느 때인가? 고모의 친정 나들이가 석 달을 지나고도 두 번씩이나 달포를 넘긴 적이 있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 싸워서 눈물바다를 이룬지가 어제 같은데 할머니는 그 두 달이 여삼추라! 그새 고모가 못내 그리운 모양이다. 조석으로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리던 할머니가 땅을 굽어보고 하늘을 우러러 원망이다.

“올 때가 됐는데!, 벌써 두 달포나 지나서 넘었는데! 그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좀 못 배우면 어떻단 말인고? 나중에 아들딸 펑펑 싸질러 놓고 살림살이 짭질(짭짤하다. 일이 뜻대로 잘되어 실속이 있다)받이 살면 그만이지!” 한숨 끝에 힘 잃은 눈동자를 삽짝으로 돌린 할머니가

“김서방 이~ 나쁜 놈의 자슥 같으니라구! 사우쟁이라고 달랑하나 있는 게 장모 자리 알기를 들판에 선 갈대로 아는 건지! 핫바지로 아는 건지! 죽은 지 애비만 살았어도 이런 괄시는 없을 건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어떻게 눈탱이(‘눈퉁이’의 비표준어) 시퍼렇게 두들겨 맞지나 않았는지?” 중얼거리다간 양손으로 무릎을 콩닥콩닥 두들긴다. 기어이 마당으로 내려서서는 바람 소리만 썰렁한 삽짝을 기웃거린다. 하루하루를 지나는 날에 비례하여 딸을 기다리던 마음이 은연중에 병으로 도진 모양이다. 까치만 울어도 방문을 열고, 달빛에 서린 오동나무 그림자가 문살에 가지라도 설렁설렁 걸칠라치면 문지방에서 목을 늘인다. 때때로 문밖서 낙엽 지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화들짝 문을 열고선

“거기~ 누가 왔어요! 끝순이가?” 기린처럼 고개를 뺀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속고 또 속고는 허탈한 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아랫목에 오도카니 앉았다. 하지만 딸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 마음이 뒤숭숭한지 허리춤을 뒤져 쌈지를 어루만진다. 끝내 끌러서는 확인차 세어가다간

“내~ 너를 줄라고 이렇게 모다서 기다리는데 미욱한 니는 어쩌자고 에미 속 타는 줄 모르고 일자 한 자 소식이 없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그건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번지르르하게 내뱉는 말이고. 내~사 마~ 시시각각, 니가 보고파서 눈이 뭉그러질라 칸다” 하는데 그리움과 근심 걱정이 얼굴에 가득하다. 그렇게 서럽게 만났다 헤진 끝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할머니는

“저 여리고 덜 여문 젊은 청춘을! 저 불쌍하고 철딱서니 없는 내 딸을 어이할꼬? 시집을 서천으로 아는 저 아이를 어이하면 좋단 말인고? 나 죽으면 가련한 저 아이를 누가 있어서 험악한 시집살이로부터 사랑으로 지켜줄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너 때문에 어이 쉬이 눈을 감을 수가 있을 거나!” 노랫가락처럼 읊는 할머니의 근심 걱정이 나날이 싸여 태산을 이룬다.

그러했던 서러운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을 받으려는 듯 고모의 울음은 할머니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한결같다. 멀쩡한 문상객들까지 무람없이 눈물짓게 한다. 입관에 이르자 고모의 몸부림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엄~마! 엄마~ 눈을 떠봐! 나를 두고, 이 끝순이를 두고는 엄마는 절대 눈을 못 감는다며! 그런데 어째 눈을 감고는 자는 듯 누웠어! 그러지 말고 일어나 한번 웃어봐! 내가 왔잖아! 엄마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엄마 딸 끝순이가 왔잖아! 아부지가 구워주는 산 밤이 그렇게나 맛있었어! 행랑아범과 행랑어멈을 닦달, 나도 산 밤 구워줄게! 태산같이 많이 구워줄게! 그러니까 어서 눈을 떠! 눈을 뜨란 말아야! 아부지 미워! 딸내미에게 뭐 해준 게 있다고 야속하게 엄마마저 데려가요! 생으로 정을 떼가요!” 하늘이 무너져라! 악머구리(요란스럽게 잘 운다고 하여 ‘참개구리’를 이르는 말)로 울부짖는 고모다. 하지만 그 절정은 아무래도 입관에 이어 하관 때다. 입관 시 눈을 뜨라고 떼를 쓰는 중에 할머니의 볼을 쓰다듬어 통곡했다면 하관 때는 양팔로 관을 껴안아 울음소리를 높인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