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8)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8)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0.16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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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어머니가 쓴 인정만큼 영희를 생각하는 마음도 자연히 연분홍색으로 따뜻해진다
영희의 볼우물을 두고 간혹 동네 아주머니들이 빈정거려 뜬금없는 소리로 주워섬겼다.
영희의 철수를 향한 성의가 평강공주 빰을 칠 정도로 대단하다지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30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예~ 예! 고~ 맙! 고맙습니다” 눈가로 찔끔 눈물이 묻어나는 기분이다. 그제야 살았다 싶어 고개를 들어 집안을 바라볼 적에 밥숟가락을 오른손에 든 영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까짓 하찮은 걱정일랑은 붙잡아 매, 오빠는 사내대장부잖아!” 속삭이는 듯 빙그레 웃는다.

“살다 보면 별별 일이 많은데, 그만 일에 풀이 죽어 옹색하게 굴기는 그럴 수도 있지 뭐! 괜찮아!” 말을 건네 오는 듯하다. 희멀겋게 웃는 영희의 양쪽 입꼬리, 양쪽 볼 아래로 보일 듯 말듯 팬 볼우물(보조개)이 전에 없이 예쁘다. 그간의 모든 서러움을 잊고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싶다,

“학교에서 나불나불 입방정을 떨어 소문은 안 낼 거야!” 하는 안도감이 더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밥상머리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던 영희어머니는 그 시간 뒤란으로 소금을 푸러 갔던 모양이다. 한데 영희어머니는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을까? 의문도 잠시 영희어머니가 쓴 인정만큼 영희를 생각하는 마음도 자연히 연분홍색으로 따뜻해진다.

“말라깽이에 꺽다리,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한! 아니지 얼굴이 계란형으로 좀 가름했던가? 하여튼 못생긴 가스나가 엄마 말처럼 하는 짓마다 맹랑한 것이 잔망스러워!” 중얼거리는 오른손에는 영희 눈만큼 커다란 알사탕 하나가 고스란히 쥐어졌다.

만사는 불여튼튼이라고, 영희의 입을 틀어막으려면 어떡하든지 이 사탕을 영희 손에다 쥐여주긴 쥐여 줘야 하는데! 어떻게? 어떻게? 또르르 머리를 빨래를 짜듯 쥐어짜서 굴리는데 문득 손바닥이 찐득한 기분이다. 어이구나 싶어 손을 펴자 그새 알사탕은 지난날 영희 손바닥 안의 찔레순처럼 녹아내려 눅진하다. 엄동설한임에도 너무 오랫동안 힘을 주어 쥐고 있다 보니 손바닥의 열기로 인해 부지불식간 녹았나 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쥐었던 손을 펴서 ‘호호호’ 몇 번이나 입으로 불고 분다. 거듭해서 불고 나자 꾸덕꾸덕 마른 듯 보여 바지에 딸린 호주머니에 고이 넣어 갈무리다. 혹시나 잊어버릴라! 호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났을까? 손을 집어넣어 이리저리 내질러 확인이다, 다행히도 뚫어진 곳은 없다. 그제야 안심이다 싶어 공허한 하늘을 향해 빙그레 웃는다. 그렇다고 영 걱정이 없지는 않다. 최소한 두 개, 달랑 한 개만 주면 투정은 물론 그 성깔머리에 가만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에~게게! 인정머리 없게 달랑 한 개? 앞으로 나랑 진짜로 싸워보자는 거야 뭐야! 그래도 나는 숙자나 여옥이처럼 깨북쟁이 친구를 떠나 색신데 동급으로 취급은 억울하지! 또 없어~” 억지를 부려 보챌까 두렵기는 하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꼬집히든 잔소리를 듣던 그건 나중 일, 영희가 한 알의 알사탕이나마 날름 입안에 털어 넣으면 최소한 1단계는 성공이다. 좋아라고 빙그레 웃을 적에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볼록해진 입꼬리 옆으로 살짝 패인 볼우물만 지으면 만사가 오케인 것이다. 일종의 뇌물이랄까? 그것으로 뒷일은 걱정이 없다는 것이다.

볼우물! 영희의 볼우물을 두고 간혹 동네 아주머니들이 빈정거려 뜬금없는 소리를 주워섬겼다.

“영희야~ 너 진짜 아부지 엄마는 어디 있니! 너는 저~ 재 너머 앞 거랑 끝에 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데 맞지! 망태아저씨(‘넝마주이’의 다른 이름)가 너 진짜 아부지라 카는 데 맞제!” 놀렸다. 그럴 때면 영희는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세상이 떠나가게 ‘앙앙’ 거려 울었다. 세상천지에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 날에는 억울하고 서러운지 목이 쉬도록 울었다. 그럴 때면 나라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우는 중에 악에 박힌 영희가

“아줌마는 왜 그래요! 울 아부지~ 울 엄마는 집에 있단 말이에요! 다리 밑에서 안 주워 왔단 말이에요! 망태아저씨는 울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앙칼지게 내뱉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려 세상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이다. 그렇게 영희의 울음소리가 골목 안으로 속속들이 펴질라치면 용케도 알아들은 영희어머니가 바람처럼 허겁지겁 나타난다.

“아이고 형님들 또~또! 자네들은 우리 이쁜 영희를 두고 왜들 그래요” 눈을 흘긴 뒤

“오냐~ 오냐 울 아가야 엄마 여기 있다. 착하지! 우리 영희는 누가 뭐래도 엄마 딸이다. 다리 밑에서 주워 온 내 딸이 아니지! 암~ 암 그렇지” 어르고 달랜 뒤에야 간신히 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어쩌면 무료한 시골 풍경이 만들어 낸 일종의 해프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다고 한두 번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혹부리 영감처럼 심술보가 툭툭 불거진 아주머니들이 영희를 만나는 날이면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그동안 영희도 많이 컸다. 능청이 쌓이고, 영악한 여우처럼 잔꾀가 늘었다. 여느 날처럼 고샅에서 만난 동네 아주머니가

“영희야 너!” 입이라고 뗄라치면

“아주머니들은 참 못 뗐어요! 또 다리 밑에서 어쩌고저쩌고해서 날 약 올리려 먹으려고 그러는 거죠!” 선방으로 선수를 치기에 이른다. 이는 영희네 집 식구 중 영희를 빼고는 아무도 볼우물이 가진 사람이 없는 까닭에 겪는 시련이다. 돌연변이라고나 해야 할까? 영희어머니는 물론 여동생인 영자조차 볼우물이 없다 보니 괜스레 받는 오해다. 분을 바른 듯 뽀얀 얼굴에 입꼬리 양쪽으로 보일 듯 말 듯 살짝 패는 볼우물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같은 여자들이 볼 때 은근한 시샘을 유발, 질투하는 듯 보였다. 이를 두고 그동안 꼬인 삼사를 풀 겸, 심심풀이 삼아 만만하게 놀려먹었는데 꾀가 늘어난 영희의 반격에 당황한 동네 아낙들은 또 다른 길을 모색하여 반격이다. 어떻게 골탕을 먹일까? 고민을 거듭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은 수다를 떠는 것으로 결정, 영희가 모여앉은 앞을 지날라치면

“조렇게 예쁘장한 영희 서방은 누가 될는지? 아주 복이 터졌지!” ‘호호호’ 웃다가는

“영희 서방이 누구긴 누구야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는 철수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래!”

“누가 그래 전생에 철수가 나라를 구했다고? 빈말이겠지? 하여간 그것도 다는 못 믿어! 죽고 못 산다던 갑돌이와 갑순이만 봐도 그러하잖아!”

“에~게게! 개들 둘은 동성동본이라 그렇지! 아니면 둘은 원앙도 부러워서 울고 갈 잉꼬부부가 되었을걸!”

“뭔 그런 가당찮은 소리야! 갑돌이, 갑순이가 이름이지? 언제 ‘갑’이 성씨라 그랬게?”

“하여간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그거는 어린 날에 일이고, 너도나도 그리고 우리가 점받치도 아닐 진데 어떻게 미래를 알아! 겪어보지 않은 지금이야 알 수 없제! 그건 그렇고 영희의 철수를 향한 성의가 평강공주 빰을 칠 정도로 대단하다지 아마!”

“맞아 영희엄마가 그러는데 당최 누구를 닮아서 그 짓거리 인지 얄미워 죽겠다드만, 감자를 삶으면 치마 밑에 숨겨서 나르고, 그것도 꼭꼭 두 알씩이나! 하나는 정이 없어서 싸운다나 어쩐다나! 한 손에 다 쥐지도 못할 걸 어째 숨겨가나 몰라! 하는 짓거리를 못 이기는 척 보고 있노라면 참말 매구(천년 묵은 여우가 변해서 된다는 전설상의 짐승)가 따로 없다나 뭐라나! 그뿐만이 아니라 고구마를 삶으면 고구마를 나르고, 강낭(‘강냉이’의 방언)을 삶으면 강낭을 훔치고, 좌우간 집구석에 남아 나는 게 없을 정도로 철수에게는 지극정성으로 요물이라네!”

“요물, 호호호, 영악한 영희는 그렇다 치고 철수는 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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