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2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2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7.3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가 거듭될수록 죽을상으로 장모님을 외치며 할머니를, 목이 터져라! 애달프게 고모를 찾는다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될 걸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듯, 삼인성호(三人成虎)처럼 잔뜩 부풀렸던 모양이다
한삼 자락을 나풀나풀 손에 감아쥐고는 보들보들 팔을 접었다는 하늘하늘 펼쳤다.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와 동시에 고모는 등을 떠밀리다시피 촛불이 깜박이는 신방으로 들었다. 고모가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고모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 고모부는 죄를 지었다는 명목 아래 동네 중장년들에 의해 발목이 광목천으로 휘감겼다. 그도 잠시 방바닥으로 늘어진 광목천이 대들보 같은 어느 장정의 어깨 위를 넘는가 싶더니 하체가 매달리듯 달랑 들렸다. 죄목은 간단했다. 마을 처녀를 도둑질해 가는 흉악범이라는 것이다. 겁도 없이 인근 동네를 통틀어 가장 예쁘고 참한 처녀를 도둑질해 간다는 죄목이다. 그런 까닭에 단단히 혼이 나야 한다며 으름장이다. 어리숙하고 빌어먹을 동네일망정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정신을 차린다고 서슬이 시퍼렇다. 맨 처음 회초리로 등장한 것은 실을 감은 명태다.

그 모습에 가슴이 뜨끔한 할머니는 속으로 첫날밤도 안 치렀는데 웬 도둑놈 타령인가 싶다. 보통의 경우 3일은 족히 묵어가야 하는데 달랑 하룻밤이다. 귀틀집이나 다름없는 초가삼간에 애옥살림이 빚은 결과다. 할머니도 더는 욕심을 부릴 수가 없었다. 과유불급이라! 여기서 욕심을 부린다면 초례청이 치워지는 동시에 떠나갈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아니게 처녀를 훔쳐 가는 도둑놈을 들먹인다. 할머니가 애걸복걸로 매달려야 할 판국에 수월하게 이뤄진 혼사가 꿈만 같은데 언감생심이다. 그간 남모르게 시샘하는 사람이 함부로 내뱉은 말이 불쏘시개가 되어 동티가 날까 싶어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생각다 못한 할머니가

“이 보게들! 아직 첫날밤도 안 치렀는데 무슨 처녀도둑놈 타령이고? 기분 좋게 그냥저냥 술이나 한 잔씩들 하들 않고!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줄 모양으로 젓가락 장단에 밤새 니나노 가락으로 울대 뻐근하도록 놀아보는 게 어떤가?” 묻고는 만면에 웃음 띤 얼굴로 은근슬쩍 어르고 달랠 요량으로 술잔이 찰찰 넘치게 따라서 코앞으로 들이밀어도 소용이 없다. 칼자루는 이미 우리가 잡았노라며 물색없는 말은 그만하란다. 그와 동시에 동네 장년의

“한 대요!” 하는 우렁찬 고함이 절로 좌중의 입을 다물게 한다. 뒤를 이어 화답을 인 듯

“어이구 나 죽네! 우리 색시야 나 죽는다. 장모님 저 죽습니다. 죽어요!” 하는 비명이 노랫가락처럼 방안 가득 처량하다. 춘향전의 ‘쑥대머리’의 중모리장단에 못지않다.

“그런데 불한당 같은 이놈이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엄살이 엄살이고!” 하더니

“또 한 대요!” 하는 소리가 체 끝나기도 전에

“어이구 진짜로 나 죽네! 장가든 첫날 밤도 못 넘겨 몽달귀신으로 나 죽네! 색시야 나 좀 살려줘! 어이구 장모님! 아~ 아니 우리 끝순이 색시야!” 하는 앓는 소리가 뒤를 잇는다. 서너 차례의 매가 거듭될수록 목소리는 점입가경으로 더욱 애절하다, 곧장 죽을상으로 장모님을 외치며 할머니를, 목이 터져라! 애달프게 고모를 찾는다. 어리광을 부리는 듯 그 모습을 보는데 주위를 둘러싸서 구경꾼으로 나선 동네 사람들이 죄다 하하하~호호호~깔깔’거린다. 그즈음 실타래가 풀어진 명태 든 장정이 주위를 휘둘러

“이거 이! 이~ 소리만 ‘퍽퍽’거려 크지 조우쪼가리 맨치로 가벼워서 원~ 명태 말고 좀 그럴싸한 그런 매가 어디 없을까?”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 옆을 지키던 청년이

“아~ 없긴 왜 없어! 다듬잇방망이가 나 여기 있네~ 진즉부터 기다리고 있잖아!” 하는데 하는 행세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미운 형상으로 선뜻 건넨다. 그러자 냉큼 받아들고는

“무어라~ 우리 색시! 아직도 불한당 같은 이놈이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처녀도둑놈 주제에 무어라 우리 색시! 이런 얼빠진 놈에게는 몽둥이라고, 매가 약이지! 자~ 자 그럼 이제부터 새로 시작이네! 에~라 이런 날 도적놈 같은 놈아 어디 훔쳐 갈 것이 없어 우리 마을 최고의 신붓감을 훔쳐 가~ 자~ 인제부터가 진짜로 단단히 마음먹으시게! 다듬잇방망이라 진짜로 아플 거요!” 머리 높이 치켜드는데 방문이 벌컥 열리는가 싶더니 고모가 치렁치렁한 치맛단을 양손으로 두리두리 올려 잡고는 놀란 얼굴에 화들짝 뛰어든다. 불문곡직 앞을 가로막아 서는

“왜? 왜들 그래요! 멀쩡한 사람을 도둑으로 몰아 때리긴 왜 때려요! 그리고 내가 가고 싶어 가는 시집도 아니고 어머니가 등 떠밀어 억지로 가는 시집인데 오빠들이 왜? 왜 그래요? 그렇게 안 봤는데 오빠들은 전부가 다 나빠요! 미워요! 그리고 멀쩡한 내 서방님을 두고 처녀도적놈은 뭣이고 날강도는 또 뭐예요! 작정하고 때릴 거면 그 다듬잇방망이로 곱다시 날로 때려 주소! 인자 우리 서방님한테는 일 없구먼요!” 양팔을 활짝 벌려 육탄방어다. 사실 새신랑을 달아매는 것은 놀이의 일종에 불과하다. 혼례 이튿날 밤을 맞아서 벌이는 장난의 일종이다. 이 밤이 지나고 나면 고모도 처녀 시절을 벗어난다. 그런 과정 중의 하나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고모도 나름대로 이런 장난에 대해 옥자를 비롯한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고는 어떡하나?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살이 붙어도 너무 붙어서 와전이 된 듯 보였다.

옥자를 비롯한 친구들은 고모가 부잣집 도련님과 혼례를 치른다는 말에 심통이 나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집으로 들어가기 전 무얼 구실로 저 어리바리한 고모를 골탕을 먹일까? 호시탐탐 노리다가 바로 이거야 쾌재를 부른 모양이다. 심보가 삐뚤어지다 보니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될 걸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듯, 세 명이면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처럼 부풀렸던 모양이다. 신혼 초야를 치르고 난 후 동네 장정들이 장난삼아 신랑을 매달 적에 신부가 처신을 잘못하면 십중팔구는 과부가 된다며 엄포를 놓았던 모양이다. 문득문득 떠오는 그 말이 신혼 방에 홀로 앉은 고모를 좌불안석으로 불안케만 한다.

에끼손가락(새끼손가락) 걸어 사랑을 맹세한 적 없고, 예쁘다며 얼굴 한번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 적 없는 고모부다. 하지만 초례청을 마주한 이상 부부지간이나 다름없다. 한번 서방님은 영원한 서방님이라고, 술잔을 건네받으면 소태를 씹는 기분이 들더라도 못 이기는 척 돌아앉아 설탕물처럼 여겨 홀짝이고, 입을 맞추자면 남세스럽다 고개를 숙였다가는 부끄럽다는 듯 살포시 눈을 감고는 내숭으로 몸을 배배 꼬아 입술을 오므려 턱을 들라고 했다, 또 춤을 추라면 두 눈을 질끈 감아 리듬에 몸을 싣고, 노래를 부르라면 간드러지게 목청을 가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이도 저도 아무런 재주가 없다고 얌전 만 빼다가는 최소한 다리가 부러지든 팔이 어긋나든 병신 서방님을 맞을 수밖에 없단다. 그런저런 이야기를 떠올리는 고모는 오늘 밤을 맞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볼 때 가진 재주가 아무것도 없다.

“그럼 숙맥 같은 이것아! 늦었다는 때가 빠르다고 지금이라도 배워야지!” 채근하는 친구들을 따라 허리가 뻐근하도록 몸을 내돌렸다. ‘옷소매 붉은 끝동’, 한삼(汗衫:예복을 갖출 때 손을 가리기 위해 두루마기나 여자의 저고리 소매 끝에 덧대는 소매) 자락을 나풀나풀 손에 감아쥐고는 보들보들 팔을 접었다는 하늘하늘 펼쳤다.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목이 쉬어 터지도록 노래 연습도 했다, 하지만 자꾸만 쪼그라드는 마음에 도통 자신이 없다. 어떻게 당면한 위기를 모면할까 싶은데 때리고 맞는 중에 고모부의 곧장 죽겠다는 비명이 실감 나게 들린다.

사람이 배워 알기도 하지만 본능으로 깨달아 아는 것들도 많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남녀관계다. 김삿갓이 어느 마을에서 새장가를 들었다. 이윽고 초야를 맞아 한차례의 방사(房事)를 치른 후 고개를 갸우뚱 말했다.

“모심내활(毛深內闊:털이 깊고 속이 넓으니) 필과타인(必過他人:반드시 다른 사내가 다녀갔으리라!)” 실망감을 보이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처녀가 방긋 웃으며

“계변양류불우장(溪邊楊柳不雨長:개울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절로 자라고), 후원황률불봉탁(後園黃栗不蜂坼:뒷마당 알밤은 굳이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진다)” 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고모가 비록 병치레 등으로 성장발육이 또래에 비해 늦다 할지라도 엄연한 숙녀다. 시집을, 서방님의 존재는 배우지 않아도 훤하다.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알건 다 알고 있는 나이다.

매가 거듭될수록 조바심으로 가만 앉아 있질 못한다. 안달이나 방안이 비좁다 바장거린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흡사 내가 맞는 듯 발바닥이, 종아리가 화끈거린다. 이대로 넋을 놓고 있다가는 곱다시 생과부로 전락하는가 싶어 심장이 콩닥콩닥 안달복달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분이다. 깊은 바닷속을 거니는 듯 아득한 심연으로 몸도 마음도 곤두박질이다. 그저 눈앞이 깜깜하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