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0)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0)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8.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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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미어지게 담뿍 안아 이 어미의 살점을 저며서라도 배 터지게 주마!
앞산을 바라다보는데 어떤 여인네 하나가 두리번두리번 재를 넘는다
있는 반찬에다 가짓수를 늘여 정성껏 점심상으로 한껏 차렸다.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너희들은 모른다. 자식을 앞장세워 가슴에 묻은 어미의 심정을, 단장이 끊어지는 질곡의 아픔을, 이 자지러지는 아픔을 무슨 글이 있어 자자구구 가능할까?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듯 참담한 가슴속을 어떤 달변가(達辯家)가 있어 구구절절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느 전기수(傳奇叟)라 한들 실타래 풀 듯 세세히 풀어내면 철석간장인들 아니 눈물 지울 수 없으리! 내 너희들을 줄줄이 잃고서 가슴을 쥐어짜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세상을, 옥황상제를 원망했는지를! 그러나 어쩌겠나!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것을! 자~자! 숙명이라 여겨 지난 과걸랑은 모두 잊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과일이 먹고 싶으면 배를 깎고, 사과도 먹고, 고소하게 볶은 낙화생도 입에 넣어 씹어보려무나! 그래그래 먹다가 목이 마르면 이 술 한 잔술을 들이키거라! 그리고는 이승에서의 티끌만큼의 한도 남기지 말아라! 무거운 짐을 벗듯, 지게를 벗듯 훌훌 벗어놓고는 홀가분하게 저승길을 재촉하거라! 두려워 말고, 서러워도 말 것이며, 망설이지 말고 레테의 강을 건너 곧장 네 아비를 찾아가거라! 카론도 선선히 허락하여 손을 벌리지 않을 것이며 케르베로스도 길을 잘못 들었다 이를 것이다. 이 어미도 오늘에 들어 이제 원도 한도 없다. 머잖은 어느 날에는 이승에서의 인연일랑은 훨훨 벗어던져 곧장 너희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날에는 얼싸안아 못다 한 정을 눈물로 나누어 보자 구나! 가슴 미어지게 담뿍 안아 이 어미의 살가죽으로 만든 이불로 세찬 바람을 막고, 살점을 저며서라도 배 터지게 먹여주리라! 그날에 듣는 원망은 무슨 원망이라도 어리광으로 여길 것이니라! 투정이라 여겨 원망을 원망이 아니라 여길 것이니라! 하~믄!! 하믄 그렇게 오순도순 살아보자 꾸나! 끝순이 아부지요 그날까지 우야 든지 이 애들을 잘 다독여 주소! 이 어미가 곧 간다며 왕사탕을 사서라도 토닥토닥 달래 주소!” 울먹이더니 허공에다 잔을 휘저어 흩뿌려서는 안녕인 듯 손짓이다. 다시 잔이 넘치도록 술을 부어 놓고는

“어두운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영(靈)들아! 장가 못 들어 죽은 애달픈 몽달귀신아! 시집 못가 죽은 원통한 손각시야! 처녀귀신아! 구중궁궐서 오로지 임금님의 사랑만을 일구월심으로 구걸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뒤 시구문(屍口門, 예전에, 시체를 내가는 문이란 뜻으로 ‘수구문’을 달리 이르던 말)밖에서 육신은 흩어지고 고혼(孤魂)으로 사윈 생각시야! 억울하고 절통해서 눈 못 감은 객귀야! 이런 사연에 우주를 배회하는 영가야! 저런 사연으로 한이 많은 잡귀신아! 한줄기 세상 빛조차 제대로 못 보고 죽은 동자귀(童子鬼)야! 태자귀(太子鬼, 胎子鬼)야! 이 한 잔술로 한을 씻고, 진설한 음식을 배부르게 흠향(歆饗)하여 어~여! 어여! 길을 재촉하려무나! 오늘 이후 내 딸 끝순이 곁으로는 얼씬도 말아주시게나! 내 이렇게 돈수백배, 몸과 마음으로 마르고 닳도록 빌고 또 비옵나니 부디 이 늙은이의 마지막 염원을 외면 말아주시게나!” 빌고는 예의 손수건으로 두세 번에 걸쳐 눈시울을 찍어내고는 넋을 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봄 날씨에 어둠 살이 살랑살랑 기어들어 삽짝을 덮을 즈음에 어머니가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도 밤을 지새울 기세다. 어머니의 청을 알기라도 하듯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물어 백구가 저린 다리를 쭉 펴서는 기지개다.

한데 고모가 시집을 간지 삼 개월여 만에 할머니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할머니가 느지막하게 꿈꾸던 안락한 삶이 가뭇없어졌다.

하지를 지나 양력으로 칠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대지는 어지간하게 데워진다. 찢어지고 구멍이 숭숭한 부채일지라도 손끝에다 두고 싶고 짬만 나면 그늘이 좋은 시기로 접어든다. 그에 비례하여 지심의 기세가 날로 사나워지는 어느 날의 아침이다. 일찌감치 조반을 끝낸 할머니가 바쁜 걸음 중에 문득 마당 끝에 서서 앞산을 바라다보는데 어떤 여인네 하나가 두리번두리번 재를 넘는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괜한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 백구랑 매일같이 마당 끝자리에 서서

“천지신명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내 딸 끝순아! 시댁 풍속을 몸으로 마음으로 익혀 잘 살아야 한다. 관세음보살님 자비를 베풀어 어여삐 여겨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빌고 빌어온 날들이 물거품이 되어 허망하다는 느낌이다. 찌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소원한 날들이 부질없어 보였다.

“시집을 가서도 천지를 분간 못해 촐싹거리는 저년을, 저 몸뚱이를 어떡할거나? 생각 같아서는 다리-몽디(‘다리몽둥이’의 방언)를 분질러서라도 들어 앉히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중얼거리며 걸음걸이나 맵시를 노려보는데 할머니는 기시감을 넘어 눈에 훤하여 낙심천만이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의 우려를 비웃듯 잠시 뒤 설마설마하던 고모가 환하게 웃으며 삽짝으로 들어선다. 가장 먼저 백구가 낑낑, 앞발을 들어 반긴다. 그날까지 백구는 젊은 옛 주인의 체취를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반갑다는 듯 꼬리를 사정없이 내저으며 머리를 탈래탈래 흔들어 오두방정이다.

“오~냐! 오냐! 이것아 이게 손이냐? 발이냐? 이런 기특한 것을 보았나! 너도 그간 밥 잘 먹고 집 잘 지키고 있었지러? 응? 내가 그렇게도 그립고 보고 싶었어? 너도 생시로 나를 보자 반갑지? 그치!” 손처럼 내미는 앞발을 잡았던 한 손을 놓아 머리를 쓰다듬더니 할머니를 향해

“엄마 나 왔네!” 폴짝폴짝 뛰어서는 가슴팍으로 얼굴을 묻어 비빈다. 그런 고모의 어깨를 감싸 안는 할머니의 눈길이 고모의 손끝에 머문다. 가만가만 차림새를 살펴보는데 가슴으로 안아 든 옷 보따리가 없다. 소박맞은 옷차림이 아니라는데 우선은 안심이다. 하지만 고모는 이제 시집으로 들어간 지 갓 삼 개월을 넘기고 있다. 나 죽었다고 기별이 가면 오라고 했건만 어째서 왔단 말인가? 다시 못 만날 것 같던 딸을 만나 반가운 한편으로는 근심과 걱정이 방정맞게 지름길을 달려 앞장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 무슨 일이고? 시댁은 어떡하고? 네가 이 시간에 어쩐 일이고? 내 그만치 일렀건만!”

“시집은 시집이고 첫 친정 온 딸을 두고 엄마의 뚱한 그 표정은 다 뭐야! 그 날수에 딸내미가 진정 안 보고 싶었어! 반갑지도 않았어?” 대답 대신 고모는 원망을 앞장으로 날을 세워 서러움을 한 보자기 풀어 놓는다. 눈물 바람으로 할머니의 가슴팍에다 묻은 얼굴만 백구처럼 도리도리 비빌 뿐이다. 그 모습에 할머니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모의 머리만 하염없이 어루만지며 섰다.

그도 잠시 방안으로 들어 마주 앉자마자 시집에서 쫓겨났냐는 할머니의 근심 어린 말에 고개만 좌우로 젓는 고모는 시집이 마냥 싫다고 했다. 왠지 정이 안 간다며 쫑알거린다. 가끔 서방인지 남방인지가 괜한 손찌검이라며 왜 맞고 살아야 하냐며 심장이 울컥할 정도로 억울하다고 하소연이다. 할머니가 시집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고, 남정네란 다 그런 것이라 해명을 해도 이건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이다. 남존여비가 판치는 요즈음 세상에는 십중팔구는 맞고 산다고 달래보아도 소용없다. 몰라서 그렇지 네 올케언니도 네 오라비에게 맞고, 성주댁도 맞고, 김천댁도 맞고 살아생전 할아버지도 할머니 자신에게 손찌검했다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잔소리처럼 고개를 숙여 한참이나 나 죽었네 하며 묵묵히 듣고 있던 고모는 점심만 먹고는 갈 거라 했다. 그 말에 따라 할머니는 있는 밑반찬에다 가짓수를 늘였다. 영천댁에서 달걀을 꾸어 오는 등으로 점심상으로 한껏 차렸다. 때에 맞추어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잠시 지나는 길에 들였다고 안심을 시켰다. 만나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같은 핑계로 설렁설렁 얼버무렸다.

고모는 고모의 말대로 점심을 먹고는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순순히 재를 넘어갔다. 할머니가 여비에 보태라고, 주전부리에 가용하라고 쌈지를 털어 챙겨주는 돈을 속적삼 안으로 챙겨 넣고는 순순히 길을 재촉이다. 떠나가는 고모의 뒷모습을 처연하게 바라다보는 할머니에게 고모는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었다. 깨물어서 아픈 열 손가락 중에서 덧난 생채기를 깨문 듯 가장 아린 손가락이었다. 이후로도 고모는 할머니가 눈물로 애원하는 신신당부를 비웃어 삼 개월이 멀다 하고 재를 넘어왔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무당이 예언하던 말이 문득문득 떠올라 머릿속에서 맴돈다. 무당이 말한 신혼 초의 어려움이란 이것이었나 싶어 더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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