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7)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3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10.09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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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이 될 나이에 오줌싸개란 사실은 여자 친구를 떠나서 그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어
어머니 냄새! 늘 맡아도 지겹거나 싫지 않은 냄새가 어머니 냄새다
아줌마가 동네 남세스러워서 어디 사위라 떠받들어 삼을 수나 있겠니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피~ 이! 낼 모래면, 어쩌면 뻔뻔하게 부끄럽지도 않아~, 오빠는 허풍쟁이에 바보~ 천치야! 허우대만 커다랗게 기저귀를 채워야 할 갓난아기야! 옛날 같으면 꼬마 신랑으로 장가를 들어 자식을 볼 나이에 찌렁-내(‘지린내’의 방언)가 등천으로 오줌이나 바짓가랑이에 질질 싸서 붙이고, 오빠란 게 남 보기 창피하게 뭐가 이래! 입 무거운 숙자는 그렇다 치고, 참새 주둥아리처럼 잠시도 쉴 짬 없이 나불거리는 여옥이 고년은 어쩔거냐고! 고년의 촉새 같은 입을 통해 내일이면 온 동네에 소문이 쫘~ 하고 퍼질 건데! 어~ 휴! 내가 살아도 못살아!” 우거지상으로 얼굴을 찡그려 입술을 뾰족이 내밀어 조롱하는 듯, 화를 내는 듯, 홉뜨는 눈매가 숫돌에 벼른 비수처럼 날을 세워 시퍼렇다. 양손을 활짝 펴 양 볼에 붙여서는 나풀나풀 ‘메롱~메롱’ 놀려오는 모양새다.

소설 속 백설공주를 닮은 듯, 만화 속 주인공도 아닌 것이 얼굴 전체가 눈치레랄까? 왕방울 같은 눈이 오늘따라 더욱 커 보인다. 떼굴떼굴 굴리는 모양새가 미상불 황소눈깔만 같아서 두렵다.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의 다른이름)모양 조잘거릴 때와는 달리 키 크고 안 싱거운 사람 없다지만 또래의 계집아이들에 비해 입이 무거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사이가 남녀다. 한번 약점이 주홍글씨가 되어 불도장으로 낙인, 평생을 간다는데, 오늘은 그렇다 치고 내일부터 미래가 까만색으로 절망이다. 가슴앓이로 원통하고 절통하다. 곧장 3월이고, 봄방학이 끝나면 3학년이 될 나이에 오줌싸개란 사실은 여자 친구를 떠나서 그 어디에도 드러낼 수 없는 수치 중의 수치다.

대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아전인수랄까? 주먹구구식으로 전쟁터를 나가는 장군이라도 된 듯 기세 당당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영희에게만은 감추고 싶은 치부인 것만은 분명했던 모양, 얼띠기(‘얼뜨기’의 방언)의 태산 같은 기개는 영희네 집이 가까워질수록 입안에 든 알사탕처럼 볼품없이 녹아서 옹송그려진다. 바람이 빠져나가는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만날 때마다

“철수야 아니, 오빠야 같이 놀자!” 폴짝폴짝 뛰어와 턱 밑에다 얼굴을 들이밀어, 커다란 눈망울은 껌벅껌벅, 가는 숨결은 쌔근쌔근, 얼굴에 묻은 밥풀떼기를 찾듯 빤히 쳐다볼 때면 아닌 게 아니라 까닭 없이 가슴이 싱숭생숭했다. 그런 영희네 집으로 머리에는 키를 씌우고 손에는 바가지를 들여 소금 심부름을 보내다니! 교육도 교육 나름, 창피를 줘도 유분수가 있지! 지금껏 살아오면서 오늘만큼은 엄마에게 약이 오르고 미운 적이 없었다.

“빙충맞은 종만, 덜렁이 원철, 오지랖이 병식이 등 많고 많은 또래의 선머스마들은 다 빼고 왜 하필 영희, 그 가스나 집이람” 뻐꾸기 울음에 돌멩이 하나 던져 불러내면 소금 한 줌쯤이야 일도 아닌데! 무슨 일을 실타래 꼬듯 배배 꼬아가며 만들어도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투덜거림도 잠시, 어느새 영희네 집 사립문 앞에 서성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당황스럽다. 팔딱거리는 심장을 잠재우고자 숨 호흡을 깊게 한 뒤 살쾡이 눈으로 전후좌우를 살핀다. 망루에 올라선 초병처럼 독수리 눈으로 사주경계다. 그렇게 한참을 희번덕거려가며 눈알을 굴리고 두리번거리다가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발걸음으로 담장 밑을 향해 바람처럼 기어든다. 까치발로 살금살금 사립문 아래로 몸을 숨긴다. 습관처럼 고개를 두어 차례 들기를 반복이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도둑고양이처럼 길게 목을 늘여 빠끔히 들여다보는 집안으로 풍기는 된장찌개가 구수하다. 한데 어디로 갔을까? 영희어머니만 자리를 비운 가운데 가족이 두레상에 둘러앉은 모양새가 오손도손하여 더없이 단란하다. 그런데 웬 뜬금없는 비린낸가? 생뚱맞게도 고소하게 익은 고등어가 미각을 자극한다.

“부엌에서 콩나물국이라도 뜨고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데 된장찌개에서 풍기는 뭉근한 냄새가 자발없이 코끝에서 구수하다. 죄인의 몸으로 유배 온 처지를 잊을 만큼 진하여 절로 목구멍을 짓이겨서 고문이다. 저 된장찌개에는 무엇을 넣었기에 고등어 석쇠 구이를 젖혀 뱃속에 든 밥벌레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온통 요동칠까? 영희어머니도 울 엄마처럼 음식솜씨가 좋은 모양으로 한 줌의 이루꾸(멸치)를 넣었을까? 아니면 겨우내 방 윗목에다 검은 보자기를 씌워 키워낸 콩나물을 두어 줌 뽑아 모녀가 마주 앉아 아슴아슴 다듬어 듬뿍 넣었을까? 가당찮게 돼지고기 같은 남의 살은 산골 살이 형편에 언감생심으로 없어서 못 넣을 것이다. 반면 지난가을 소나무 밑을 뒤진 끝에 따서 말린 송이버섯 한 뿌리와 숭덩숭덩 썬 두부 한 모쯤은 너끈히 들어갔을 것만 같다. 너무 맛있게 느껴져서 그럴까? 영희네 집 된장찌개에서 엄마 냄새와 버무려진 우리 집 된장 냄새가 솔솔 풍긴다는 기분이다.

어머니 냄새! 늘 맡아도 지겹거나 싫지 않은 냄새가 어머니 냄새다. 할머니의 삼우제가 끝나 날 할머니의 옷가지에 얼굴을 묻은 고모가

“휴~ 이 냄새! 엄마 냄새! 무슨 냄새, 무슨 냄새 그래도 나는 이 세상에서 엄마 냄새가 젤로 좋다. 눈물이 서려 있어서 좋고, 서럽도록 편안해서 좋다” 했듯 하루만 못 맡아도 그립고 그리운 냄새다. 어떻게 보면 서러운 눈물 같은 냄새다. 그 냄새 속에 내 삶이 오롯이 녹아있다. 어머니의 냄새가 부엌에서부터 마루로 올라온다. 밥상이 차려지고 꽁보리밥에 감자가 박힌 밥공기가 보인다. 젓가락질 한 번에 고등어의 두툼한 살피듬, 검푸른 등판의 아랫부분이 하얗게 흐드러져서 군침이 돈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방정맞은 배가 장단을 맞추어 꼬르륵 운다. 어떻게든 빨리 소금을 얻어야 된장찌개에 고등어구이를 반찬으로 아침을 먹을 텐데! 그저 한다는 짓이 아래쪽만 뚫어지게 내려다본다. 깜장고무신의 코끝을 뚫어 삐죽이 삐져나온 엄지발가락으로 언 땅만 어기적거려 후벼 파고 있다. 어쩌다가 이런 처지로 전락일까? 참으로 한심스러운 새벽 나절이다.

길잃은 지렁이라도 한 마리 어울렁더울렁 지나가면 친구삼아 놀아 줄 텐데! 겨울철이라 그런지 지렁이는 고사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살을 에는 추위만 발가락 끝으로부터 가슴까지 치밀어 이질에라도 걸린 듯 사지가 와들와들 떨린다. 졸지에 엄지발가락만 횡액을 당하는 새벽이다.

게다가 두레상에 다소곳하게 앉은 영희를 본 다음부터 마음속은 천사의 꼬임과 악마의 유혹이 일진일퇴의 공방으로 죽 끓듯 한다. 어떻게 한다. 그렇다고 마냥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 당면한 딜레마다. 점차로 치솟는 아침 해가 시시각각으로 재촉이다. 마침내 어금니를 지긋하게 물어서 결단을 내릴 시간이란다. 그와 동시에 비칠비칠, 어정거림도 잠시 패잔병으로 뒷걸음질이다. 보기에도 딱하게 후줄근한 꼬락서니로 어기적어기적 가재걸음이다. 이런 낯짝을 영희에게 보이느니 차라리 어머니에게 몽땅 빗자루로 비 오는 날 먼지가 풀썩 일도록 맞는 편이 났겠다 싶다.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조용히 앉아 명상에 들어도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인 조선 시대의 스님처럼 이판사판이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무언가가 될 대로 되겠지! 몸을 돌려 일어서려는데 문득 머리 위로부터

“에~게게 사내대장부 배포가 그리 작아서야 원, 그만 일에 풀죽은 두루마기처럼 후줄근하게 기가 죽어서야 쓰나! 그래 가지고야 어떻게 나중 어떻게 큰일을 하게! 그러게 말이야! 철수야~ 오늘 이후 다시는 오줌 싸지 말거래이! 나중에 장모가 될 이 아줌마가 동네 남세스러워서 어디 사위라 떠받들어 삼을 수나 있겠니? 나는 또 그렇다 치고 남들이 보는 눈도 있는데 네 색시가 될 영희 생각도 좀 해야지! 그리고 이것 하나는 걱정하지 말아! 이 아줌마도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영희도 입 하나는 지퍼를 채운 듯 무겁단다” 하는 말이 천둥처럼 정수리로부터 떨어지는데 정신은 혼절한 듯 혼미해지고 얼굴은 불에라도 덴 듯 화끈거린다. 고개를 들자 언제 왔는지 영희어머니가 희미하게 고소를 머금은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다. 손에든 양재기에서 소금을 한 줌을 천천히 집어서는 바가지에 옮겨 담는다. 아~ 그토록 바라던 소금, 드디어 소금 한 줌을 얻었다는 희열감에 체면은 물론 자존감은 헌신짝처럼 내던져 저리로 가란다. 이것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라는데 이마가 절로 땅바닥에 닿을 듯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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