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25)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2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3.07.1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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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다 똥 된다고 그럼 어디에다 쓸까? 백옥같이 뽀얀 허벅지를 피멍으로 물들일 일이 있어!
“엄~ 마! 인자부터는 그 꼬질꼬질한 것일랑은 소죽 아궁이에다 후지지고 이것일랑 써!”
흥부네 박이 터지듯 쌓이는 혼수품을 두고 동네의 아낙들이 내 일같이 여겨 한 몸처럼 나서지 않았다면 어림없었다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10일, 8월 한가위를 맞아 블루문의 보름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허~ 호! 저런~ 저런 저 여편네 꼬락서니 한번 보소! 가라는 말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좋아라고 허둥대는 저 꼴 좀 보소! 두말 세 말 않고는 발딱 일어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몸이 달았었나 보네! 천근의 방티(‘고무통’의 사투리) 만한 궁뎅이(‘궁둥이’의 방언)가 팔랑개비처럼 가벼우이! 호호호~ 젊다는 게 뭐에 좋아, 저래서 좋은 거지! 나도 십 년만 젊었더라면 벌써 집에 가고 이 자리에 없을걸! 하긴 몸이 근질근질, 불덩이 같은데 불도를 닦는 비구니도 아닐 진데 어떻게 참아, 청상과부도 아닐 진데 백옥같은 허벅지를 피멍으로 물들일 일이 있나!” 한마디씩을 뚝뚝 던져놓고는 키득거린다. 다음 날로 초저녁에 나타난 영천댁의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얼굴을 보고는

“어째 오늘은 얼굴이 발그스레하니 해바라기 꽃처럼 화들짝 피었네! 그렇게 졸린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잠은 핑계로 다른 볼일도 함께 본 모양인 갑네!” 하는 말에 영천댁이

“아따~ 다 아시면서 그만 일에 놀려 먹기는~” 하는 것으로 겨울이 깊어 봄으로 치닫는다.

어찌 영천댁만 그럴까? 아닌 게 아니라 밤늦게 집으로 돌아간 아낙네들은 애써 뒷간부터 찾았다. 세숫대야에다 얼음장 같은 물 한 바가지를 펴서는 철퍼덕 깔고 앉았다.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잠든 아이의 숨결부터 살폈다. 한겨울 철임에도 아이의 눈앞에서 파리를 좇는다. 옷을 활활 벗고는 잠은 뒷전으로 코맹맹이 소리를 응응거리다가는 단박에 신랑의 허리를 껴안아 기어들었다. 본능에 따라 까만 밤에 몸을 묻었다. 그렇게 동지섣달의 긴 긴 밤이 달콤하게 흘러 아침이면 뺏긴 것도 없이 밉상에 찌푸린 인상으로 투덜거리던 서방의 입이 언제 그랬냐 싶다. 댓 발이나 나왔던 입이 쑥 들어간다. 반찬 투정으로 상을 치던 숟가락이 입안으로 수월하게 들락날락한다. 며칠은 봄 가뭄에 단비를 맞은 상춧잎처럼 싱싱하여 잠잠하다. 그러다가 입이 댓 발이나 나올만하면 아낙들의 몸이 눈치껏 알아 긴 하품으로 입이 찢어진다. 연신 잠이 쏟아진다며 노래를 부른다.

고모의 혼수준비가 얼추 끝나갈 무렵에 이르자 연일 날씨는 봄으로 치달아 삼월하고도 초순이다. 붉은 홍매와 하얀색 청매가 가지마다 오종종 벙글어지더니 줄줄이 피고, 연분홍색 노루귀의 여린 싹이 동토의 땅을 뚫어 하늘을 향해 고물고물 기지개를 켠다. 푸르른 창공이 어지럽도록 종달새 무리가 쌍쌍이 날아올라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소리로 울음 운다. 그동안 고모도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바느질에 신부수업 등으로 길고 긴 겨울을 손끝으로 났다. 한 땀 한 땀 옷감에다 정성을 들였다. 처음 시집은 무슨 시집하고 뾰로통하게 돌아앉은 때와는 달리 봄바람에 새싹이 돋듯 적극성을 띠었다.

“엄마 나 시집 안 가고 엄마랑 평생을 이렇게 살면 안 돼?” 하던 때와는 달리 찬찬하게 바늘귀에 실을 꿰어서는 촘촘하게 꿰맸다. 간혹 서툰 솜씨로 인해 바늘 끝으로 손가락을 찌른다. 그럴 때면 새하얀 손끝에서 빨갛게 몽우리 지는 핏방울을 보고는 울먹울먹, 따갑다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다고 전날처럼 내팽개쳐 오뚝이처럼 발딱발딱 일어서지는 않았다. 날이 갈수록 화를 낸다기보다 없었던 일인 양 여겨 정성을 다하는 고모는

“내가 베고 내 서방님과 같이 베고 잘 베갠데!” 쫑알쫑알, 한 땀 한 땀 베갯머리를 들어 학과 봉황이 어우러지게 수를 놓았다. 솔기를 접은 옷감 가장자리로 야무지게 바늘을 찔러 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청하지도 않았건만 할머니의 손수건을 새로이 만들어서는

“엄~ 마! 인자부터는 그 꼬질꼬질한 것일랑은 소죽 아궁이에다 후지지고 이것일랑 써!”

“오냐 고맙다. 네가 이 어미에게 선물이라 손수건을 만들고, 영 철이 안 들 줄 알았는데 기특한 것!”

“엄마는 또 철~ 철 그런다. 그런데 마음에 들기는 들어? 이뻐?”

“그럼~ 그럼 누가 만들어 준 건데! 말해 뭐해! 마음에 들고말고, 예쁘고말고!” 하고는 하룬가 쓰고는 연신 헌 손수건만 애지중지다.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손을 씻고도 손수건은 뒷전으로 치맛자락에 문질러 닦는다. 앞 적삼에다 ‘쓱싹쓱싹’ 대충 문지른다. 고모가 이상히 여겨

“엄~마! 새 손수건은?”

“응~ 그거 아껴 쓰려고 저기 저 장롱에!” 하며 말끝을 흐린다. 하여간 손이 여간 깨끗하지 않으면 절대 손수건을 꺼내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마당 가장자리에서 서서 앞산을 향할 때는 한결같았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을 주야장천 읊조릴 때는 실오라기가 부풀고 부풀다 못해 보풀이 되어 푸슬푸슬하고 손때가 까맣게 내려앉은 헌 손수건만을 고집이다. 이미 그 일은 할머니에게 버릇이고 습관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루라도 마당 끝에 서지 않으면 고모의 행복을 망치고 혼사가 깨진다 여기는 모양이었다. 마음가짐이 그렇다 보니 혼수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는 날에도, 북풍한설이 칼날처럼 설치는 날에도 시계처럼 어김이 없다. 그렇게 산골의 겨울이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윽고 삼월 초여드렛날에 으르자 할머니의 구구세한도에 남은 마지막 한 송이의 매화가 빨갛게 꽃망울을 터트렸다. 기다렸다는 듯 재 너머로부터 초례청을 차리는 일체의 기물이 넘어왔다. 황소가 이끄는 수레 가득 짐이 실려 오고, 지게를 진 짐꾼들이 줄줄이 넘어오는데 역시 인근 최고의 부자다운 면모가 여실히 보였다. 뒤를 따라서 이바지 음식 등이 넘어오는데 할머니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흥부네 박이 터지듯 쌓이는 혼수품을 두고 동네 아낙네들이 내 일같이 여겨 한 몸처럼 나서지 않았다면 어림없었다. 할머니만큼 고모도 처음 맞는 광경에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꾸역꾸역 혼수품이 마당으로 쌓이는 모습에 고모는 이제 할머니 곁은 떠나 시집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전날 밤 할머니가 두 손을 꼭 잡고는 세세하고도 자상하게 이르던 당부가 실감이 났다. 교훈 삼아 들려주던 이야기가 귓전에 쟁쟁하다. 그때 할머니는

“애~ 아가야!” 다정하게 불러 그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당부하듯 차근차근 말했다.

이제 이 어미 품을 떠나 시집으로 들어가면 시집 귀신으로 살아야 한다. 친정 쪽으로는 돌아보지도 말고, 친정 사정일랑 알려고도 하지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 것이며 오롯이 시집 귀신으로 살아야 한다. 살아생전에 이 어미와 다시 못 만나더라도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시부모님께는 이 어미 이상으로 봉양하고 김 서방일랑 앙앙불락하여 바가지랑 대충 긁고,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뒷바라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 길만이 복 받고 잘사는 길이며, 시댁의 뜻에 따라 줄줄이 사탕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손이 귀한 집이라 있는 재물에 유모를 들이더라도 많이 낳을 수만 있다면 많이 낳는 것이 최고의 며느리가 되는 길이자 효라고 했다.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덕을 많이 쌓으라고 했다. 덕은 쌓으면 쌓을수록 복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후일 재물이 네 몸에 이르걸랑 아낌없이 베풀라고 했다. 그때는 네 집을 찾는 손님,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아끼지 말라 했다. 동냥 다니는 남녀노소를 들어 쪽박을 외면하지 말라고 했다. 또 바깥나들이 때는 발밑을 조심하라고 했다. 개미가 있는지 지렁이가 기어가는지 살펴서 걸으라 했다. 장난삼아서 하는 살생만큼 큰 죄업이 없다며 함부로 하는 살생은 안 된다고 했다. 힘이 들고 괴롭더라도 늘 웃으며 살며 희망을 꿈꾸라 했다. 관세음보살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겨 삼독(三毒: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의 착한 마음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 따위를 독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의 죄랑은 절대 범하지 말라고 했다. 만사를 된다. 된다고 여겨 꿈을 가지라 했다.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조선 시대 때의 홍윤성을 들어 덕과 복에 대해 교훈처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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