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로 살아보니] 오늘이 제일 젊은 날, 나이는 잘못이 아니야
[시니어로 살아보니] 오늘이 제일 젊은 날, 나이는 잘못이 아니야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2.11.1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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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으로 갈수록 근육이 줄고 골감소증도 진행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
사회적 유대감은 면역력 강화로 병에 덜 걸리게

대중교통을 즐겨 이용하고 있다. 매우 급한 일이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면,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대중교통 이용을 위해 일정 거리를 걷지 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방주시나 제한속도 등 운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창밖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나 우수수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보며 기발한 상상이나 은밀한 계획을 꾸밀 수도 있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친구들과 채팅을 하거나 금융거래를 할 수 있고, 예상치도 못했던 지인을 만나 지나간 회포를 푸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보면 단맛과 쓴맛도 고루 맛볼 수 있다. 타야할 버스가 간발의 차이로 출발해버렸다면 실망스러운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녹색신호가 깜빡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출발을 위해 붕붕거리는 버스를 가까스로 탈 수 있을 때는, 무사히 커트라인을 통과한 운전면허시험 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지하철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 두 발로 뛰어들게 되었을 때, 잠시나마 성취감으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그날은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주머니가 버스를 보고 혼신의 힘으로 달리는 현장을 목격했다. 등에 가방을 메고, 양 팔을 크게 휘저으며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다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버스는 서너 발짝 사이를 두고 먼지를 뿜으며 달아나버렸다. 아주머니는 몹시 허탈한 표정으로 불만을 터트렸다. 늙은이가 힘겹게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도 기다려주지 않은 기사의 행동이 얄밉고 괘씸하다는 것이었다.

상황을 처음부터 생생하게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마디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조용히 웃으며, 달리기를 참 잘 하더라고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둥그런 눈으로 정말 그렇게 보였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년 전에 낙상으로 인한 대퇴부 골절로 쇠를 두 개나 박아 달릴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달리기를 잘 하더라’는 말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아주머니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며, 버스를 잡지 못한 이유를 나이 탓으로 돌렸다. 다섯 살 아니 한 살 만이라도 젊었다면, 저렇게 버스를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돌려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아쉬운 일이 있게 마련이다. 1년이나 2년 또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다보면 오늘과 같은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을 상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주변을 돌아보면, 노년에 들어 하루가 다르게 근육이 줄고 골밀도 역시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 10명 안팎의 동아리 회원 중 3명이 비슷한 시기에 부딪히거나 넘어지고, 인대파열 등으로 두 달 째 참여를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신호가 깜빡이는 횡단보도나 떠나려는 버스를 애써 잡으려하지 말고 한 박자 쉬어가는 것이 어떨까. 무리하게 움직이다 잘못하면 의외로 큰 부담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로 살아보니, 평온한 마음과 양보의 미덕이 중요함을 느낀다. 나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신체적 조건이 예전에 비해 단단하지 못함을 받아들이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겠다. 건강하고 부드러운 심신을 위해 자주 햇볕을 쬐며, 꾸준한 운동과 대화를 통해 정서적 공감대를 유지하는 것도 좋다.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몸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충하고 간접적으로 면역력을 강화시켜 병에 덜 걸리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정신적 건강과 육체적 건강은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나이는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왜 모를까. 다만,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언젠가 오늘을 다시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대구수목원 산책길을 시민들이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다. 허봉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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