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로 살아보니] 관심은 가지되 간섭은 자제해야
[시니어로 살아보니] 관심은 가지되 간섭은 자제해야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2.08.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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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간섭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 상황에 따라 반대로 나타나
섣부른 실천이나 행동보다 슬기로운 지혜와 '운영의 묘'가 필요

30년 가까이 같은 장소에서 과일노점을 하던 털보아저씨가 일주일 동안 보이지 않아, 걱정을 했다. 그런 중 예전처럼 넓게 펼쳐진 과일바구니를 보며 반가운 마음에 조심스레 안부를 물었다. 아저씨는 누군가 물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병원에 다니느라 나오지 못했다’며 여러 질병에 대한 소회를 장황하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진 대답이 전혀 지루하거나 불편하게 들리지 않았던 것은 동년배로서 느끼는 동병상련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통시장 주변 인도에서 여러 종류의 노점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허봉조 기자

제법 굵은 비가 내리던 날, 아파트 근처 중학교 앞에서 신발 끈이 풀린 채 달리려고 자세를 취하는 남학생이 눈에 띄어 “학생, 신발 끈 풀렸네”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공연한 간섭을 했나?’ 싶어 우산 속으로 얼굴을 감추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감사합니다”라는 의외의 반응이 돌아와 ‘관심으로 받아주었구나’ 싶은 마음에 내가 오히려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볼일이 있어 시내로 나가던 길에, 이어폰을 꽂고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기는 아주머니의 배낭이 활짝 열린 채 출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차마 그냥 지나치기가 민망해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해주었다. 흠칫 놀라던 아주머니는 배낭의 지퍼를 닫으며 “어머나, 고맙습니다”라고 연거푸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몇 마디 짧은 대화가 덤으로 이어졌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에게, 이전에는 결코 있을 수 없던 일이었다. 마음속으로 혼자 만리장성을 쌓을지언정, 다른 사람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으려는 성격이다. 좋은 게 좋다고, 가까운 친지나 동료, 친구들에게도 불편한 말은 거의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누군가 말해주겠지’ 또는 ‘어차피 알게 되겠지’라며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격이나 행동도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아니, 점점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감탄사나 칭찬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넉살이 좋아진 것일까. 산책길에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게 된 것도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긴 직장 생활을 하던 때와는 시야가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일과 가정 등 좁은 범위에 관심을 한정하다보니, 다른 일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간섭은 무엇이고, 관심은 무엇인가. 둘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고는 한다. 간섭이라도 상대방이 좋게 받아들이면 관심이 되고, 상대방이 불편하다면 관심도 간섭이 되는 것이다. 전달 방법에 따라 듣는 기분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관심이나 간섭은 서로 간의 소통의 물꼬를 트는 씨앗이 될 수 있으며,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마음이 통해 공감의 손뼉을 칠 수 있다면 유쾌한 소통의 열매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터디그룹(study group)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 등을 통해 서로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해주는 친절한 지인들이 있다. 지적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인정하고 고맙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지적을 위한 지적이나 간섭으로 느껴지게 된다면, 역효과로 인해 관계가 서먹해질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니어로 살아보니, 관심은 가지되 간섭은 자제해야겠다는 다짐을 자주 하게 된다. 표현하기에 따라 의도와는 달리 관심과 간섭이 뒤바뀌게 될 수도 있으니, 섣부른 실천이나 행동보다는 슬기로운 지혜와 ‘운영의 묘’를 살려야 되는 일인 것 같다. 아무리 애정 어린 관심과 값진 충고라 하더라도, 상대방의 취향이나 의지를 침해하게 된다면 불필요한 간섭과 참견이라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네거리 한 모퉁이에서 채소를 다듬고 판매하던 중년부부가 벌써 한 달 가까이 보이지 않아 걱정거리가 또 생겼다. 몇 년 전, 아내가 난치성 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주위 사람을 통해 들었지만 원활한 치료과정으로 사람 좋은 얼굴로 싱글벙글 자전거를 타고 씩씩하게 달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는데….

이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그들 부부에게서도 특정 질병에 대한 세세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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