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로 살아보니] 지나친 친절이 불편할 때가 있다
[시니어로 살아보니] 지나친 친절이 불편할 때가 있다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2.03.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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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적인 지인이 있다. 나이에 비해 몸이 가볍고, 대중교통을 애용하며, 걷기운동 역시 부지런히 실천하는 등 건강관리에 적극적인 편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블로그(blog)와 페이스북(facebook)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과 금융업무 같은 전자기기 활용에도 능숙한 시니어 세대의 긍정 아이콘이라고 할까.

일전에 만난 그 지인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것 같아,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산책길에 있었던 일이라며, 지인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지나친 친절로 무시를 당한 기분’이었다며, 서운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굵은 눈물이라도 한 방울 툭 떨어질 것 같았다. 긴 내용은 아니었으나, 지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비슷한 처지의 시니어로서 공감을 느끼기에, 그 쓴맛의 내용을 옮겨본다.

숲 속에서 산책코스를 걷다가 큼직한 카메라로 전문가의 자세를 취한 사람들이 보이기에 호기심으로 가까이 다가갔더란다. 작년 봄에 보았던 깜찍한 야생화가 그 주인공.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말 아는 사람의 눈에만 보일 만큼 매우 작고 솜털이 보송보송한 꽃이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동년배로 보이는 카메라맨에게 물었고, 남성은 친절하게 꽃 이름을 가르쳐주더라고 했다.

노루귀, 그 이름을 듣고서야 “아, 맞네요”라고 맞장구를 치며 잠시 잊고 있었다는 표현을 했단다. 그리고 예쁜 꽃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성큼 다가서는데, “잠깐만요”라며 남성은 넓적한 손바닥으로 제지하며 발을 함부로 디디면 연약한 꽃들이 다칠 수 있다고 경고를 하더라는 것. 일리가 있는 말이기에 고개를 수그렸다고. 거기다 “아주머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줄을 쳐놓은 것”이라는 핀잔에 뒷덜미가 서늘해지더라고 했다.

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하며, 일정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단다. 이번에는 ‘그렇게 찍지 말고, 이렇게 하라’며 스마트폰에 직접 손가락을 대고 사진을 확대해 보는 법을 가르치더라는 것이었다. ‘그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을 하고 싶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애써 참았다고 한다.

그것으로 끝이었다면 입맛이 그렇게 씁쓸하지는 않았을 텐데. 잠시 후 일행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다가와 '꽃을 찍을 때는 카메라 위치를 이렇게 하고, 각도를 저렇게 하라’는 등 권유의 정도를 넘어 훈계를 하는 바람에,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을 만큼 불편했다는 것이었다. 꽃 이름 하나 물었을 뿐인데, 그렇게 사람을 얕고 어설프게 볼 수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렇다. 저마다의 개성과 취미가 다른 것처럼, 관심 분야에 따라 잘 아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가 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라고 다른 사람에게도 비슷한 정도의 지식이나 기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궁금한 질문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더불어 간단한 설명이나 해설을 곁들인다면 더욱 친절한 일이다. 그러나 궁금해 하지 않은 내용까지 시시콜콜 지적이나 강요가 뒤따른다면, 자칫 짜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무엇이든지 적당한 것이 좋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정도를 지나치면 오히려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것이다. 어른이라고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을 고치려 들거나 불필요한 간섭은 자제해야 하는 것처럼, 젊은이들 역시 윗세대에게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곤란하다. 힘이 부족하거나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이야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일이지만, 내면의 상태를 미리 알기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달포 전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결재를 하는 과정에 "페이뱅크(pay bank)를 사용해 보았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계산을 하던 직원이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언제 그런 것을 해보았느냐고 다시 물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앱(App)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세련되셨다"며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머리카락이 희끗하니, 알지 못할 것’이라는 자세라면, 그런 친절은 사양하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고 당연히 모를 것은 없다. 다만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점이 다를 뿐.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해 본 것과 해보지 않은 것의 차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혹시 누군가에게 지나친 친절로 실망이나 불편을 안겨주는 일은 없을지, 타산지석의 기회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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