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로 살아보니] 나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
[시니어로 살아보니] 나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
  • 허봉조 기자
  • 승인 2022.09.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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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손목과 손의 마비로 병원 생활
인체 하나하나의 소중함 깨닫는 기회 돼
나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

많은 주부들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음식’이라는 답을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깨알 같은 작은 소망이다. 마치 그 소망을 이루려는 듯 열흘 가까이 병원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으니, 참으로 황당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변고는 주말 저녁 친정에 다녀오던 열차에서 일어났다.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알람이 설정된 휴대폰을 끼운 채 20분 정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을 때, 휴대폰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무슨 일이지? 싶어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잡았을 때 손목이 삽처럼 구부러진 ‘ㄱ’자 모양으로 푹 꺾여버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손을 주물러보았지만, 미세한 전류가 흐르던 손은 또다시 힘을 잃고 숱한 발길에 채인 가느다란 풀줄기처럼 꺾이기를 반복했다.

동대구역에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짧은 거리였건만, 갖은 생각들로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혹시 혀가 꼬이거나 말이 어눌해지지는 않았는지,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뇌혈관질환을 염려해서였다. 병원 응급실에서도 뇌졸중이 의심된다며 급히 CT(컴퓨터 단층촬영)와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해보았건만, 특이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비된 손은 완전히 힘을 잃어 지폐 한 장을 잡지 못하고, 옷의 단추를 여미는 일은 언감생심. 만약의 출혈 등을 우려해 뇌졸중 집중치료실로 옮겨져 정밀 MRI 검사를 해보았으나 역시 뇌혈관에서는 티끌 같은 점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방향은 뇌졸중이 아닌 손목과 손의 말초신경계로 전환되었다. 양팔의 균형 운동과 전기 자극 등 재활치료가 진행되면서, 손의 신경이 조금씩 살아나 구부리지도 못하던 손가락이 주먹을 쥘 수 있는 정도로 발전했다.

병원 로비에서 환자와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허봉조 기자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미처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던 손, 인체 하나하나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오른손잡이로서 왼손이 하는 일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는 의식 또한 부끄럽게 다가왔다. 그나마 오른손이 건재했기에 가족과 지인에게 근황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생활에 익숙해 있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걷기에 열중했다. 만보걷기를 생활화하면서 은근히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당뇨관리를 제외하고는 병원을 찾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 동년배들이 겪는 다양한 질병도 ‘나에게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았다는데 대해서도 내심 탁월한 면역력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지인들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감염되고 있음에도 ‘아직도 감염되지 못한(?) 것’은 사회성 부족이거나 감염이 되고서도 알아채지 못한 무지의 소치가 아니겠느냐는 우스갯소리들을 한다. 나도 그들과 함께 웃으며, 조용히 마스크를 챙기고 있다.

지난 봄,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를 내고 입원한 일이 있었다. 탁구와 골프로 체력을 관리한다는 활동적인 지인이 발목인대 파열로 깁스를 했다는 소식에도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사건・사고와 부딪힐 수 있고, 알지 못했던 질병으로 병원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시니어로 살아보니, 나에게만 예외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자주 생긴다. 결국 ‘요골신경병증’이라는 비교적 가벼운 진단명으로 대학병원에서 퇴원 후 마취통증의학과에서 팔 근육의 힘을 되살리는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팔의 힘과 손의 기능이 회복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아직은 글을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자판을 두들기는 일이 어설프다. 옷매무새를 단장하거나 머리카락 다듬는 일에도 약간의 노력을 기울여야한다. 하지만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뇌혈관이 깨끗하다는 것과 X-ray, 심초음파, 심전도, 근전도, 혈액 등 각종 검사의 결과가 모두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터이니, 다행으로 여겨야 될 것 같다.

다른 사람이 차려준 편안한 밥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인의 권유처럼 ‘잠시 쉬어가라’는 무언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소중한 경험으로 삼아야겠다. 더불어 뜻밖의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은 나의 왼팔과 손, 걱정해준 가족・친지들께도 감사의 뜻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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