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문국은 삼한시대 '변한계' 소국의 하나
1990년 공단부지 조성 공사중 발견
1990년 공단부지 조성 공사중 발견
한국 삼한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 3세기 후반에 저술된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에 따르면, 3세기 중엽 영남 지방에는 진한계 12국과 변한계 12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중에서 감문국(甘文國)과 주조마국(走漕馬國)은 변한에 속한 김천 지방의 소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1990년 공단부지를 조성하던중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변에 위치한 구성면 송죽리 일대에서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층위적으로 형성된 취락 구조가 발견 되면서, 감천의 중하류에 위치했던 감문국 건국 세력과의 관련성을 주목하게 되었다.
감문국은 감천(甘川)의 중하류인 비옥한 계령들 충적 평야지를 기반으로 성립되어, 삼한시대 초기 가야와의 선린 우호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 왕성한 발전을 이룩 하였다.
조선 중기의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후기의 대동지지(大東地志) 관련 사료를 종합해 볼 때 ,감문국의 중심지는 현재의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일대로 추정되며, 그영역은 감문면과 아포읍, 어모면, 조마면까기 미쳤을 것으로 본다.
일부 학자들은 선산군, 무을면 일대까지를 감문국의 영역으로 보기도 한다. 당시 감문국의 규모는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 과 동사의 기록을 근거로 볼 때, 6백~7백 가구에 달하고 군사 30인을 대군(大軍)으로 표현할 정도의 국세를 보유한 소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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