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은 '갓'을 쓰고 '겨자'를 품는다
밥도둑은 '갓'을 쓰고 '겨자'를 품는다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2.02.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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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의 씨앗을 곱게 갈아서 양념으로 만든 것이 바로 '겨자'이다. 원래 갓의 씨앗을 가리키는 말이 한자로는 '개자'였는데 이것이 발음이 바뀐 것이 '겨자'이다
경산시 남천강에 서식하는 '적 갓' 모습. 여관구 기자.

‘갓’의 꽃말은 무관심이다. 경산시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경산시의 젖줄 남천강의 곳곳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갓이 무수히 자란다. 갓은 톡 쏘는 매운맛이 특색인 채소이다. 그냥 먹기도 하나 갓김치로도 많이 담가 먹는다. 한자로는 개채(芥菜)라고 부른다.

갓은 서늘한 기후에 잘 자라며, 갓에 따라 잎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른 편이다. 보통 많이 재배하는 종류는 김치를 담는 돌산 갓과 김장의 양념으로 사용하는 청 갓, 적 갓, 얼청 갓이다. 갓은 봄, 가을로 재배가 가능하지만 가을에 재배하는 것이 수월하고 김치를 담기에도 적절하기 때문에 보통 가을에 재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야생으로 자라는 것도 있는데 재배하는 것보다 맛이 강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실시하는 지리적 표시제에 여수 돌산 갓(67호)이 여수 돌산갓김치(68호)와 함께 등록되어 있다. 갓김치는 보통 김치보다 맛이 훨씬 강하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좀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냥 김치는 싱거워서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남천강에서 자생하는 '청 갓' 모습.  여관구 기자.

갓의 씨앗을 곱게 갈아서 양념으로 만든 것이 바로 겨자이다. 원래 갓의 씨앗을 가리키는 말이 한자로는 개자(芥子)였는데 이것이 발음이 바뀐 것이 겨자다. 겨자로 많이 먹는 품종인 적 겨자와 흑 겨자는 겨자로만 많이 불리고, 갓은 주로 채소로 먹다보니 다른 식물인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갓의 씨앗도 갈아서 겨자로 먹을 수 있다. 반대로 적 겨자와 흑 겨자도 그 이파리를 채소로 먹을 수 있는데, 단어의 의미가 역류해서 적 겨자와 흑 겨자 잎은 겨자채 혹은 겨자 잎이라고 한다. 갓 줄기의 아래가 혹처럼 부풀어 있는 변종인 자 차이(짜 사이)는 중국 요리에 사용된다.

청갓과 적갓이 혼합되어 자라는 모습.  여관구 기자.

< 갓 김치 >

김치의 종류 중 하나로 갓 잎에 양념을 버무려 만든 김치다. 갓은 1년에 5번 이상 재배가 가능하므로 갓김치 또한 1년 내내 먹을 수 있지만, 봄인 4~5월에 수확한 갓으로 만든 것이 가장 맛이 좋다. 갓 특유의 독특한 향에 감칠맛과 매운맛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겨자의 톡 쏘는 매운맛과 열무김치 같은 사각사각한 식감에 어우러지는 남도 특유의 양념-매운 고춧가루와 짭짤한 젓갈 맛이 일품이다. 갓김치를 잘 익히면 식감에 익은 김치 특유의 맛이 더해지기 때문에 이쪽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식객에서도 봄 갓은 진미라는 식으로 언급된 바 있다. 특히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도에서 자라는 갓이 특유의 향이 좋기로 소문나 명물로 알려져 있다. 토양의 차이 때문인지 같은 종자를 써도 돌산 밖에서 자란 갓은 그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적갓이 냇가에서 자라는 모습.  여관구 기자.

갓김치의 톡 쏘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돌산 갓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돌산 갓이 맛과 식감이 부드럽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갓으로 갓김치를 담으면 와사비를 먹은 듯 코를 찡그리면서 먹을 정도로 강한 향과 맛을 내지만 동시에 굉장히 질겨서 돌산 갓의 열무김치처럼 부드러운 식감을 생각하고 먹으면 별로라고 느낄 수 있다. 톡 쏘고 강렬한 매운 맛 덕분에 느끼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특히 삼겹살 같은 기름진 고기랑 같이 먹으면 정말 환상의 조합이다. 라면과도 꽤나 어울리는 편이다. 다만 지나치게 익어서 갓이 삭아버릴 경우에는 식감이 흐물흐물 해지고 특유의 향도 거의 없어지는데다 너무 시어져 먹기 곤란해진다. 그렇다고 이걸 묵은 지처럼 요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너무 삭기 전에 맛있게 먹는 것이 제일 좋다.

갓이 냇가에 집단으로 자라는 모습.  여관구 기자.

호불호를 타긴 하지만 대신 한 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이 있는 김치다. 배추김치 등 흔한 김치에서 느끼기 힘든 아삭아삭한 식감과 코끝을 톡 쏘는 겨자 맛, 그리고 여기에 매운 양념 맛이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돌산 갓김치를 선물하고 그 반응을 보자. 높은 확률로 다시 구할 수 있느냐 거나 김치 담그는 법을 묻는 말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돌산도가 고향인 분들은 명절이나 휴가철 등에 고향을 방문할 일이 생기면 매우 높은 확률로 주변 지인들에게 갓김치를 대리구매해서 보내주거나 혹은 아예 생 갓을 바리바리 싸 들고 서울로 올라오기도 한다.

갓과 풀들의 공생 모습.  여관구 기자.

갓김치는 여수시의 돌산 갓이 유명하지만 초기에 돌산 갓이 유명해질 때와 지금의 맛은 약간 다르다. 상기하였듯이 갓 김치는 톡 쏘는 맛으로 먹는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외지인들에게는 꽤 먹기 힘든 음식 중 하나다. 지금이야 자극적인 맛을 많이 찾지만, 김치 상품화가 막 시작된 1990년대 초중반에는 이러한 맛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돌산 갓은 갓 김치임에도 이러한 쏘는 맛이 적고 부드럽고 향이 강했기 때문에 상품화에 성공하여 널리 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변하여 이제는 돌산 갓 김치도 톡 쏘는 맛으로 광고하고 있는 듯하다. 조선시대 당시 돌산 갓은 수랏상에도 올랐으며, 지금의 돌산 갓은 1950년 대 일본인이 종자를 들여와 재배를 한 것이다. 여수시는 일본 종자로 재배되던 돌산 갓을 국산종자로 대체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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