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까치꽃'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봄까치꽃'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2.03.16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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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까치꽃'의 학명은 Veronica persica이다. 속명 Veronica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 산으로 올라갈 때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던 소녀의 이름이며, persica는 페르시아 지방을 뜻한다. 봄까치꽃의 꽃말은 '기쁜소식'이다.
경산의 남천강 뚝길에 자생하는 '봄까치꽃'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전국적으로 가뭄이 극심하다. 그로 인해 강원도와 경북 북부, 대구에 이르기까지 산발적으로 산불이 일어났다. 이번 산불은 소중한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불이 난 지 10여 일이 지나고, 겨우 불씨를  잡을 수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가뭄에 사람들의 부주의가 더해져 일어난 인재라는 생각이 든다. 훼손된 산림을 정상적으로 복귀하는데 10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주변을 살피고 산림보호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우리 생활주변에 자생하는 '봄까치꽃'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봄의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한낮의 기온은 소매자락을 걷어 올리게 한다. 겨우내 움츠렸던 피부에 다가오는 따스한 느낌이 다정스럽다. 봄볕이 그리운 날, 버들가지가 하늘거리는 남천강 냇가에 손을 담가보고 싶다. 팔랑개비 짓을 하는 봄바람은 겨우내 닫혀 있던 마음의 단추를 풀어놓듯 자유스럽다.

남천강 둔치를 걷다가 양지바른 언덕에 잠시 시선이 멈췄다. 연보랏빛 옷을 입은 초청 하지 않은 풀들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혹에 이끌려 쌩긋이 웃고 있는 그 오만한 아가씨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잠깐 동안의 눈맞춤으로 자신의 존재가 들켜버렸을까. 살포시 미소 지으며 수줍은듯 하늘거린다. 마주한 눈길은 순수하기 그지 없었다. 그의 향기웃음에 나의 질투심이 순간 녹아내리고 있었다.

‘봄까치꽃’이다. 양지 바른 곳에서 가장 먼저 핀다는 꽃,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양지바른 곳에 아주 작게 피는 연보랏빛 꽃이다. 꽃은 한 송이씩 차례로 피었다가 저녁에는 져버리고 그 다음날 새롭게 피어나는 하루살이꽃이다. 길가나 공터, 밭둑의 햇볕이 잘 드는 곳이면 어디든지 잘 자라 삶터를 탓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 꽃을 ‘큰개불알풀’이라고 부른다. 열매가 달린 모습이 개의 음낭을 닮아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일본에서 불리는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름은 꽃과 어울리지 않는다 해서 최근에는 봄소식을 빨리 전한다는 의미로 ‘봄까치꽃’이라 고쳐 부르고 있다. 학명이 Veronica persica이다. 속명 Veronica는 예수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 산으로 올라갈 때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주었던 소녀의 이름이며, persica는 페르시아 지방을 뜻한다. 유럽인들은 베로니카의 영혼을 꽃으로 환생시켰다. 베로니카, 얼마나 예쁜 이름인가. 세상에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메시지를 담았던 작은 여인의 숙명과도 같은 꽃이다.

경산의 남천강변에 서식하는 '봄까치꽃'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봄까치꽃의 꽃말도 ‘기쁜 소식’이다. 다른 꽃에 비해 꽃도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기쁜 봄소식을 전하기 위해 겨울의 그 추운 시간을 이겨내고 꽃을 피웠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마치 삶을 달관한 성녀(聖女)처럼 애증의 상처를 오히려 위로하고 감싸주며 찾아와 주었다. 용서하고 잊어준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었던가. 잡초라고 무시해 온 너였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가.

들판에는 여러 종류의 잡초들이 나름대로 삶의 자리를 차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영양분이 풍부하고 햇볕이 잘 드는 자리를 탐하거나 시기하는 일이 없다. 또한 이방인을 배척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일 없이 평화롭게 보일 뿐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인간사회는 어떤가. 개인중심사회로 변질되어 황막한 사막과 같이 민낯을 드러낸 사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추구하는 공동사회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은 아닐까.

사막의 열기 같은 뜨거운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잠시 숨 돌리며 쉬어보자. 남천강의 어느 한곳의 도랑물속의 개구리들처럼 새봄을 맞아 개굴개굴 노래 부르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가뭄을 걷어내고 자유스럽게 흘러가고 싶은 그들에게 자그마한 빗줄기 하나면 족하다. 마지막 꽃송이까지 활짝 피우는 ‘봄까치꽃’처럼 최선을 다하는 삶 인생길도 시간의 뒤안길을 돌아 가다보면 자신을 찾을 날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십자가와 까치 그리고 '봄까치꽃' 그림(석화).  그림과 사진 여관구 기자.

< 혀끝에 맺힌 열매 > 시인 여관구

혀는

씨앗을 영글게 하고 희망을 샘솟게 하는

마음의 텃밭인가보다.

그 씨앗에서

예쁘게 피어난 꽃들이 알찬 열매로 익는다면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만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풀씨 같은 존재라면

우리 마음에 꽃이 시들겠지요.

혀끝에 맺히는 씨앗은

주님이 주시는

우리 마음의 결실인 것처럼

알찬 열매만 맺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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