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87) 화장실의 변천 과정
[꽃 피어날 추억] (87) 화장실의 변천 과정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3.02.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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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화장실과 처가 집은 멀수록 좋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가까울수록 좋은 것 같아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70년대 개량하여 사용하였던 재래식 화장실의 모습. 유병길 기자

 

 

1950년~8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뿐만 아니라 전국 농촌의 한옥 초가집, 기와집의 삶은 너무나 불편하고 환경이 열악하였다. 그때는 그 자체가 불편한 줄 모르고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었다.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없어 항상 배가 고팠고, 방이 적어 여럿이 한방에서 잠을 잤었다. 밥을 하려면 방문을 열고 부엌에 나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밥을 하였고, 먹는 물은 마을 공동우물에서 매일 아침 항아리로 이고 왔고, 여인들은 길쌈을 하여 옷을 만들었고 겨울에는 웅덩이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빨래하였다. 남자들은 노동으로 모든 농사일을 다 하였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다 하였다.

50대 재래식 화장실은 땅에 묻은 큰 단지 위에 긴 나무토막 2개와 중간에 둥근기와를 놓고 앉아서 볼일을 보았다. 나무토막이 움직여도 그냥 사용하였다. "못을 박으면 눈이 먼다"는 속설 때문에 못을 박지 못하였다. 냄새도 많이 나고 어린아이들은 겁이 나서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화장지 대용으로 아이들 헌 교과서, 신문지, 밀가루 포대 종이도 사용하였으나, 50년 이전 어른들은 볏짚을 사용하였다.

아이들은 캄캄한 밤 화장실을 가기가 무서워서 어머니 고모를 같이 가자고 졸랐고, 초롱에 불을 붙여 갔다. 대도시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온다고 좋아하였으나 화장실 갈 때는 겁이 나서 많이 울었다.

그때 사용한 농사용 거름은 인분뇨와 가축의 분뇨로 만든 퇴비 뿐이였다. 원료를 많이 확보하기 위하여 집집마다 집 안과 대문 밖에 화장실 두 개가 있었다. 집안 마당가 화장실은 여인과 아이들이 사용, 대문 밖 화장실은 남자들이 사용하였고, 길을 가다가 급한 사람이 일을 보게 하였다.

70년대 전기가 들어오고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화장실 개량도 하였다. 시멘트벽돌로 재래식 화장실 벽을 쌓고 바닥을 바르고, 나무토막도 사각으로 연결 못을 박아 고정하여 단지위에 놓았다.  파리가 못 들어가게 뚜껑을 만들어 긴 손잡이를 달아서 덮었으나, 파리를 다 막을 수는 없었다.

 

농경유물관에 보관중인 놋쇠 요강과 사기요강. 유병길 기자 

 

밤이면 큰방과 사랑방에는 놋쇠 요강(조금 사는 집), 사기요강(보통 가정)을 두고 잠을 자면서 소변을 보고 아침에 오줌장군에 비우며 깨끗하게 씻어 사용하였다.

그때는 '화장실과 처가 집은 멀수록 좋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가까울수록 좋은 것 같아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통일벼 재배로 80년대 농촌의 삶이 조금 좋아지면서 편리한 삶을 위하여지하수 관정을 뚫어 물탱크를 만들고 마을마다 간이상수도 공사 붐이 일어났다. 행정에서 융자금, 보조금이 지원되는 입식 부엌개량사업 신청을 생활개선회, 부녀회에서 받았다. 싱크대를 설치한 부엌개량을 하게 되면서 연탄보일러 설치를 하였다.

80년대 농촌에 설치하였던 수세식 변기의 모습. 유병길 기자

 

기존 부엌 바닥을 메워 방바닥 높이로 만들고 벽을 쌓아 싱크대를 설치하거나, 작은방이나 마루를 부엌으로 개조하면서 옆에 욕실을 넣고 수세식 변기 설치를 하였다. 여유가 있는 농가는 부엌 개량보다 집을 양옥으로 신축하였다.

집안에 부엌, 수도, 화장실이 들어왔다.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면서 공동우물이 사라졌다. 보일러 버튼만 누르면 방이 따뜻하여지면서 장작더미가 사라지고, 수세식 변기가 욕실에 놓이면서 박물관에도 보관이 안되는 재래화장실이 없어졌다. 밤이면 방에서 사용하고, 신부가 신행 오는 가마 안에도 들어갔던 요강도 사라지게 되었다.

어느 순간 시골에도 좌변기가 놓여 편하게 앉아 볼일을 보게되었다. 80년대 후반 칠십대 어르신을 만났다. "집을 수리하여 편리하시지요?" "좋은데, 밖에 화장실이 없어져 며느리가 앉았던 자리에 내가 앉으려니 민망하고 불편해..." 하셨다.
삶이 더 풍요로워 지면서 비데가 유행처럼 설치되어 더 편리한 삶을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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