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88) 무쇠 밥솥이 압력 전기밥솥으로 변화한 삶
[꽃 피어날 추억] (88) 무쇠 밥솥이 압력 전기밥솥으로 변화한 삶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3.03.2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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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나가서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려서 큰방, 작은방에 가져다 드렸다. 입식 부엌개량을 하면서 주방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옥의 재래식 부엌 모습. 유병길 기자

 

195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부엌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 무쇠 밥솥에서 밥을 지어서 세끼 밥을 먹으며 생활하였다. 

3월이되면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아침밥을 먹고 호미를 들고 보리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풀을 뽑았다. 봄방학을 하면 아이들도 보리밭에 나갔으나 다리가 아프다고 투정을 부렸다. 보리농사는 벼농사 다음으로 큰 농사였다. 이때부터 보릿고개가 시작되었다. 양식에 조금이라도 보태려고 냉이, 버금다지, 쑥 등 봄나물을 많이 뜯어서 먹었다. 

겨우내 불을 떼어 장작더미가 사라지면 남자들은 나무하려 산으로 갔디. 그때 뒷산은 큰 나무가 없는 벌거숭이 산이었다. 소가 있는 집은 우산재 넘어 너점 독점 도제이까지 가서 나무를 소 등에 싣고 왔다. 소가 없는 집은 지게를 지고 뒷산, 노음산에 가서 잡목을 베거나 벨 나무가 없어 풀뿌리까지 캐었다. 농산부산물 볏짚, 콩대, 밀보리 짚, 들깨 참깨 줄기, 왕겨 등으로 불을 때어서 밥을 지으며 난방을 하였다. 큰솥에는 밥을 짓고, 작은 솥에는 국을, 아궁이 앞에 삼발이를 놓고 냄비에 된장을 끓였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는 연기가 나서 눈이 매웠고 눈물이 났다. 추운 겨울에도 연기 때문에 부엌문 닫을 수가 없었다.

부엌에 나가서 밥을 짓고 밥상을 차려서 큰방, 작은방에 가져다 드렸기에 많이 불편하였다. 매일 새벽 공동우물에서 물을 이고 와서 물독에 담아 먹는 물로 사용하였다.

외출하여 밥을 같이 못 먹는 가족이 있을 때는 놋쇠 밥그릇에 뚜껑을 덮어 이불 밑에 넣어두었다. 집에 오면 국과 된장을 데워서 밥상을 차려 주었다.

석유 곤로의 모습. 유병길 기자 

 

60년대 후반 가벼운 양은솥이 보급되었다. 석유 곤로가 보급되어 양은솥에 밥을 짓게 되어 편리하였다.

72년 봉강리에도 전기가 들어와 밤에도 대낮같이 밝아서 좋아하였다.

많이 사용하였던 양은솥의 모습. 유병길 기자

 

또 연탄이 보급되면서 연탄 아궁이가 설치되고 연탄 화덕이 보급되면서 나무 걱정없이 쉽게 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리 없이 방안에 스며든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70년대 중반 TV 냉장고가 보급되었고, 후반 대도시에 전기밥솥 보급이 확대되었다.

80년대 입식 부엌 개량이 시작되면서 싱크대를 설치한 부엌 개량을 하면서 서서 음식을 만들었다. 주방에 LPG 가스가 보급되었고,  연탄보일러,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 난방을 하였다.

오래된 전기밥솥의 모습. 유병길 기자

전기밥솥은 70년대 일본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밥을 하는 기능만 있는 제품이었다. 그 이후 보온기능이 추가된 ‘타이거밥솥’, ‘코끼리밥솥’이 호평을 받았다.

80년대에는 일본 갔다 오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의 쇼핑대상이 되어 밥솥 한 개씩은 다 들고 들어왔다.

농촌에도 전기밥솥이 부잣집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전기밥솥을 사면 동네에서 자랑거리가 되었다. 스위치를 눌러 밥을 짓고 스위치를 눌러 보온하며 들일 갔다 와서 따뜻한 밥을 먹게 되어 좋아하였다.

전기밥솥은 냉장고, 세탁기 등과 일등 혼수품이 되었다. 처음에는 혼수용 밥솥도 크면 좋다고 10인용, 5~6인용을 많이 구입 하였다.

왼쪽은 '요즘 사용하는 압력 전기밥솥', 오른쪽은 '10여 년전에 사용하였던 압력 전기밥솥'의 모습.   유병길 기자

요즘은 우리 제품의 ‘압력 전기밥솥’ 품질이 우수하여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의 쇼핑대상이 되었다. "말" 하는 우리나라 '압력 전기밥솥'은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제품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쌀로 밥을 지어 먹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300여 년으로 추정한다. 곡물을 이용한 최초의 조리 형태는 볶은 쌀 형태로 본다. 그 후 죽의 형태, 떡의 형태로 추정된다. 서기 4~5세기경 불을 때 곡물을 끓여 짓는 밥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밥의 형태를 주식으로 하고 장, 젓갈 등을 반찬으로 하는 일상식의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일찍부터 발달한 떡은 의례 음식의 자리로 옮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쌀과 식생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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