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신달자의 '핸드백'
[시를 느끼다] 신달자의 '핸드백'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4.06.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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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핸드백
여자의 핸드백

 

핸드백 / 신달자

 

나의 핸드백은

내 가슴속의 숨은 방과 같습니다

남들은 잘 열지 못하고

열지 못해서 남들이 조금은 궁금한 내 핸드백은

때때로 나도 궁금해 손을 넣어 뒤적거리곤 합니다

열쇠와 지갑만 잡히면 안심이지만

그 두 가지가 정확히 보이는데도

무엇이 없어진 느낌으로 여기저기 마음의 주머니를

더듬다가 덜컹 가슴이 내려앉곤 합니다

무엇인가 밀물져왔다가

썰물처럼 밀려갔는지

황톳빛 뻘이 아프게 펼쳐져있습니다

오늘은 찾아도 찾는 것이 없어서

속을 확 뒤집어 쏟아 버렸지만

알량한 내 품위가

남루한 알몸으로 햇살에 드러나

쑥밭 같은 마음들을 재빠르게 주워 담습니다

내 핸드백 속에서는

내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북촌[2016년 서정시학]

 

신달자 시인은 1943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났다. 학력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이다. 1964년 詩 환상으로 데뷔했으며 경력은 2016년부터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를 역임했고 2012년~2014년 제38대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수상은 2016년 정지용 문학상, 2012년 은관문화훈장, 2011년 제19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2011년 제8회 김성준문학상 시 부문, 2009년 제17회 공초문학상, 2008년 제6회 영랑 시 문학상 본상 등 굵직한 상을 다수 받았다.

이 詩를 읽고 있노라면 역시 신달자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의 소품인 흔한 핸드백이라는 시제 하나를 갖고 이렇게 많은 사유 속에서 긴 호흡으로 끌고 나가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막힘도 끊김도 없이 조근 조근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비록 핸드백이란 사물 하나를 두고 시종일관 풀어 나가지만 핸드백에 관한 이야기이기만 하겠는가. 핸드백을 여자의 마음, 아니 시인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은 중의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처음 시작이 그러하다. 나의 핸드백은 내 가슴속의 숨은 방과 같다고 피력하고 있다. 또 8행에서 마음의 주머니란 표현도 쓰고 있다. 남들이 조금은 궁금해 하지만 내 자신도 내 마음이 궁금해 뒤적거려본다고 한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라고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남의 마음을 알 수 없듯이 내 마음,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열쇠와 지갑만 잡히면 안심이지만 그래도 뭔가 미진해 더듬다가 덜컹,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했다. 그렇다. 일상적인 것만 추구하다 정작 가슴 한편에 남몰래 묻어둔 소중한 것에 대한 자각이 불현 듯 일어나는 것이다. 그때는 많이도 아리고 서러웠던, 보물 같던 상처들이 보푸라기처럼 일제히 일어나 무심한 나를 질책하는 듯하다.

무엇인가 밀물져왔다가 썰물처럼 밀려갔는지 황톳빛 뻘이 아프게 펼쳐져 있다고 하는 이 부분이 시인의 살아온 삶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수 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져간 아픈 고통의 시간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었을까.

때로는 찾아도 찾는 것이 없어서 속을 확 뒤집어 쏟아 버리면 알량한 내 품위가 남루한 햇살에 드러나 쑥밭 같은 마음들을 재빠르게 주워 담는다고 한다. 그것은 가슴속 번뇌들을 누군가에게 쏟아 놓으면 후련해지려나 하는 마음에 이야기하고 나면 번뇌는 후회와 함께 쑥밭이 된다. 가슴 속에 존재할 때는 스스로 아름답게 포장되는 추억도 햇살에 고스란히 드러나면 그저 그렇고 그런 가십거리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내 핸드백 속에서는 내 심장의 박동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것은 내 가슴 속의 수많은 기억들은 내가 살아온 흔적이며 내가 살아가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다른 나이기에 심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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