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60주년] 4.19, 경북 안동에서도 있었다
[4.19 60주년] 4.19, 경북 안동에서도 있었다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0.04.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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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하야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 시민들. 4.19혁명 제40주년 기념사진전 도록

 

4.19혁명은 1960년 서울의 대학생들과 교수,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도 시위가 있었고 유혈사태로 번지며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경북 안동지역에서도 4.19혁명을 전후하여 학생, 시민, 노동자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안동은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유교문화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양반고을로 조선후기 300여 년을 통해 권력의 외곽에서 성현, 열사, 효부가 많이 나고 근세에 와서는 애국지사를 가장 많이 낸 곳이다.

유교문화의 가족주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으면서도 항일투쟁으로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360여 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진보적 사회주의의 바람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히 일어난 곳이다.

부정과 불의에 시민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합심해 항거하는 안동지역의 문화적 배경에 이러한 정신적 토대가 있었다. 4.19혁명이 안동지역에서도 불붙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안동지역 학생과 시민들이 함께한 4.19

안동은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전까지는 비교적 조용했다. 하야 다음날인 4월27일 오전 안동고등학교를 비롯한 시내 남녀 중고등학생들과 시민들이 안동역 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학생과 시민들은 당시 자유당 국회의원이었던 김익기의 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내 중심가까지 행진했다.

많은 시민들이 도로 연변에 나와서 박수를 치며 일부는 대열에 합류를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1만여 명 정도까지 이르렀다. 시위대는 이날 저녁 김익기의 집을 불태우고 해산했다.

4.19혁명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활동도 안동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다. 5월4일 안동 읍내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농림고등학교에 모여 4.19 희생자 합동 추모식을 열었고,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한 위문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4.19로 잉태된 민주화 운동 각계 번져

이후 안동지역에서는 4.19를 넘어 학생, 노동자들의 민주화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게 되었다. 안동사범학교에서는 4.19를 비하한 학교장을 사퇴하게 했고, 안동고등학교에서는 부패한 교직원을 몰아냈다. 노동운동도 활발하게 펼쳐졌다. 운수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는가 하면, 초중고 교사들의 교원노조 설립도 추진되었다.

▷안동사범학교에서의 학생운동=안동의 초등교원 양성기관인 안동사범학교에서 4.19와 관련한 교내 시위가 있었다. 오◯◯ 교장이 아침 조회 자리에서 훈화를 하던 도중 김주열 학생의 죽음을 비하하고 서울의 고려대학생시위(4월 18일)와 전국 교수 시위(4월 25일)에 대해 비하발언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3학년 학생회가 주관해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학생들은 "학교장 물러가라"는 시위을 벌였다. 당시 문교부 장학관의 진상조사가 있었고 학교장과 서무과장이 물러났다.

▷안동고등학교 횡령 교사 추방=안동고등학교에서는 교직원과 학교운영위원회가 모의하여 학생들의 교복비 일부를 횡령한 사건이 문제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안 학생들이 해명을 요구하자 교사가 주동학생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해당교사를 쫒아내고 동맹휴학에 들어가게 된다.

▷운수노조와 교원노조 활동=노동자들도 권리 획득을 위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5월 17일 운수노동자들은 안동시장 주유소 앞 광장에서 자동차 지입제도 폐지, 자동차 운수조합폐지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4월 28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교원노동조합 발기회가 발족하자 안동에서는 5월 4일 안동읍의 초중고 교사들의 대표가 모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원노조 설립운동에 들어갔다. 이렇게 결성된 교원노조는 조합원 수 680여 명에 이르렀으며 교원의 자주성 확보, 학원의 민주화, 정당 및 관권으로부터 독립, 교육자의 신분보장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향상을 강령으로 내세우고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