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③
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③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03.2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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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리야(Sigiriya) 인근에 있는 피두랑갈라 바위산(Pidurangala Rock)은 스리랑카 마탈레 지역에 있는 높이 199m의 나지막한 야산으로써 일출과 일몰로 유명하다. 피두랑갈라를 찾은 이들로 인해 편안함을 느끼며 건너편 슬픈 시기리야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피두랑갈라(Pidurangala) 정상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임승백 기자
피두랑갈라 바위산(Pidurangala Rock) 정상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 임승백 기자

스리랑카는 신할라 족(Sinhalese)이 대부분이지만 종족 및 종교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이다. 아셀라는 자신이 신할라 족이며 지금 가는 곳이 신할라 원주민 친구가 사는 Sleeping Soldier Mt. 인근 호숫가란다. 막상 낚시하러 간다고 좋아하였지만, 갑자기 종족 이야기를 하면서 비포장 밀림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고 있으니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이 녀석이 우리를 어쩌려고… 길도 없는 곳으로 계속 가는 거지?’ 젊었을 때는 친구 녀석들이 공수 특전단과 해병대 출신이라 무서울 게 없었지만, 세월이 흐른 요즘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올 지경이니 어떻게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숲속을 지나 도착한 호숫가의 허름한 건물 앞에는 보기에도 험상궂은 원주민 세 명이 나와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곧장 강가에 있는 배에 오르자 상늙은이로 보이는 녀석(실제 나이 45세)이 다짜고짜 담배를 달라고 한다. 황당하고 초면에 인상을 쓸 수도 없어 스리랑카에서는 담배가 최고의 선물이라며 공항 면세점에서 사 온 담배를 끄집어내어 건넸다. 얼마 있지 않아 녀석이 또 담배를 달라고 한다. 옆에 가만히 보고만 있던 친구가 ‘너 몇 살이냐?’라고 물으니 녀석이 45살이란다. ‘한참 어린 녀석이 건방지게 어른한테 담배를 달라고 해.’라며 원주민 녀석에게 ‘형님’이라 말해 보라고 하자 녀석은 주저 없이 ‘형님’이라고 어눌하게 말을 한다. 녀석의 애교에 우리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만다.

Sleeping Soldier Mt. 인근 호숫가에 살고 있는 신할라(Sinhala) 원주민과 함께 낚시를 즐긴다. 임승백 기자
Sleeping Soldier Mt. 인근 호숫가에 사는 스리랑카 원주민과 함께 추억을 남긴다. 임승백 기자

낚싯대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야자수 줄기에 고래를 잡을 정도의 큰 바늘을 나일론 줄로 연결한 게 전부이다. 스피닝 릴(Spinning Reel)에 원줄과 목줄 그리고 구멍 찌로 된 낚시 도구에 익숙한 우리로선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이것으로 낚시를 하는 것이 전통방식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낚싯대를 드리운다. 한두 시간이 지났을 즘 세월을 낚으며 ‘강태공’ 놀이를 하는 것이 얄미웠는지 갑자기 강풍이 불어닥쳐 배가 뒤집히려고 한다. 원주민 친구들이 재빠르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반쯤 기울어진 배를 이끌고 인근 뭍으로 향한다. 뭍에 도착하자 원주민 녀석들은 잔뜩 겁먹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큰소리로 웃어댄다.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밀림 숲을 가로질러 가던 중 우리 앞에 코끼리가 불쑥 나타나 우리를 또다시 놀라게 한다. 아셀라는 야생 코끼리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보고 행운아라고 치켜세워준다. 신기해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 대는 우리가 이상한지 원주민 친구들은 우리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각자가 살아온 환경이나 경험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이상해하듯이 그들도 똑같이 우리가 이상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원주민들과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져 헤어질 때는 서로 안아주기까지 한다. 

호숫가 주변 숲속에서 행운의 야생 코끼리와 마주치다. 임승백 기자
호숫가 주변 숲속에서 행운의 야생 코끼리와 마주친다. 임승백 기자

원주민 친구들을 뒤로하고 도착한 피두랑갈라(Pidurangala)의 매표소 입구는 일몰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구석진 이곳까지 어떻게 알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대단들 하다.

피두랑갈라는 시기리야 북쪽에 위치한 바위산으로써 서기전부터 스님들이 동굴에 모여 살고 있었다고 한다. 서기 5세기경 왕궁을 시기리야로 옮긴 카사파 1세(Kashyapa Ⅰ)는 시기리야에 살고 있던 스님들을 이곳으로 이주하게 하고 피두랑갈라 사원과 수도원을 중창하였다. 그 이후 피두랑갈라는 바위 속에 누워있는 불상(Pidurangala Reclining Buddha)과 함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리 높지는 않은 산이지만 오늘 하루 두 번씩이나 급경사 지역을 오르려고 하니 온몸이 땀과 후들거림으로 난리다. 정상 가까이에 오르자 바위 아래에 누워 있는 불상이 ‘이보게들! 오느라 수고했네’라고 우릴 반겨 준다. 와불상을 끼고 돌아서자 사방이 탁 트인 거대하고 평평한 너럭바위의 정상이 펼쳐진다. 온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의 절경이다. 건너편 시기리야 바위산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각자의 자리에 앉아 부처가 되어 가는 사람들로 인해 멋진 광경이 연출된다. 별것 없는 삶인데 아등바등 사는 우리가 애처로웠는지 지는 해가 지긋이 내려다보며 우리들을 어루만져 준다. 흘러가는 구름이 진정 부처이며 여기가 분명 천상세계일 거다. 해가 진다. 저 산 너머로 해가 진다. 노랗게 되었다가 금세 빨갛게 물든 하늘이 힘겨워하는 붉은 해를 감싸 안고 산을 넘어간다. 장관이다.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만 본다.

해 지기 전 피두랑갈라에서 맞이하는 아름다움과 편안함에 빠지다. 임승백 기자
천상세계에서 지는 해와 오색찬란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임승백 기자

산에서 내려왔는데도 아직 천상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여러 형태의 석양을 보았지만, 이곳의 석양은 아마도 기억 속에 오래 남을 듯하다. 옆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친구 녀석이 갑자기 아셀라에게 ‘쓰메키리’ 있는지를 묻는다. 아셀라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자꾸 되묻는다. 친구 녀석은 답답하다는 듯이 ‘아니, 스시(Sushi)를 아는데 어찌 쓰메키리(Nail Clipper)를 모르냐’며 핀잔까지 준다. 우리는 그만 울고 말았다.

어둠이 내려앉을 즘 숙소에 도착하여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숙소로 돌아오면서 부탁했던 저녁상이 테라스(Terrace)에 차려지고 있었다. 몇 잔의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셀라에게 ‘거리도 가깝고 리조트 시설도 괜찮은데 손님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라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아셀라는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힘들게 이야길 끄집어낸다. 영국인 주인이 자신과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리조트를 팔려고 내놓고 갈레(Galle)에 새로운 리조트를 열었다고 한다. 급여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찾아가도 만나주질 않아 조만간 가족들이랑 캔디(Kandy)로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며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여러 궁금증이 풀렸지만, 뭔가에 꽉 막힌 듯 속이 답답해진다. 괜히 미안하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야자수를 흔들어대는 애꿎은 바람만 탓한다. 얄밉도록 밝은 달이 슬픈 담불라의 밤과 함께 우리들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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