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⑤
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⑤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04.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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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Sri Lanka)의 대표적 유적지인 불치사(The Temple Of The Sacred Tooth Relic)는 부처 치아 유물이 안치되어 있어 세계 불교도의 순례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스리랑카 마지막 왕실의 수도였던 칸디(The Sacred City Of Kandy)는 수많은 슬픈 이야기와 함께 1988년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부처 치아 유물이 안치되어 있는 불치사(The Temple Of The Sacred Tooth Relic) 전경. 임승백 기자
스리랑카 칸디(Kandy)에 있는 불치사(The Temple Of The Sacred Tooth Relic) 전경. 임승백 기자

어느 날 허름한 선술집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부처님 치아 보러 가자’는 말 한마디에 부랴부랴 항공권을 끊어 달려 온 곳이 스리랑카이다. 며칠 동안 몇몇 도시를 구경하면서 부처님 치아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갈 무렵 칸디(Kandy)에 볼 일이 있다는 아셀라를 따라 불치사(The Temple Of The Sacred Tooth Relic)로 향한다.

탁 트인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지방도로와 같은 시골길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열대 나무는 이국적인 멋을 더해주고 먼지 나는 길을 걸어가는 룽기(Lungi, 남자 치마) 입은 남정네와 바구니를 머리에 얹은 여인네는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담불라(Dambulla)를 떠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향신료 단지로 접어들며 ‘Spice Garden Ranweli No 99’라고 쓰인 향신료 정원으로 들어선다.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남자 안내원은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하여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 식물에 관해서 설명도 하고 중간중간 '약'까지 팔아댄다. 미덥지 않은 설명이 계속되자 만물박사 친구는 참다못해 향신료 뿐만 아니라 중세 역사까지 곁들여 안내원에게 장황하게 설명을 해버린다. 해박한 지식에 놀란 안내원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더니 발걸음까지 재촉한다. 아마도 패키지 관광객 대하듯 대충 설명하고 시간을 때우려고 했던 모양이다. 설명하는 태도도 그렇고 물건만 팔려는 안내원이 얄미워 “영어를 모르니 한국어로 계속하라”고 했더니 삐쳤는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안내원을 다시 만난 곳은 각종 향신료를 파는 가게 안이었다. 놀린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향신료 제품을 넉넉하게 사고선 거스름돈을 팁으로 건네주었더니 함박웃음을 보이며 주차장까지 따라 나와 인사를 한다. 옆에 있던 친구가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대충 살면 안 된다"라고 혼잣말을 하자 우리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만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마탈레(Matale) 향신료 단지내에 있는 Ranweli Garden. 임승백 기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마탈레(Matale) 향신료 단지 내에 있는 Ranweli Garden. 임승백 기자

칸디에 가까워졌는지 차가 많아지고 길가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산마루를 돌아 중심가로 접어들자 잊고 있었던 경적이 정신없이 울려대고, 혼잡해진 도로는 교통 체증까지 일으키며 낯선 외국인에게 큰 도시라는 생색을 어김없이 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흥미로운 모습의 도시 풍경과 함께 차는 숙소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 함께한 아셀라와 작별을 한다. 항상 웃으며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셀라에게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게 미안할 뿐이다.

지금 직장을 잃게 될 형편이니 그의 머릿속이야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친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위로의 말을 전하며 생활에 보탬이 될까 싶어 몇 푼의 돈을 건네자 아셀라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눈시울을 붉힌다. 정을 뗀다는 것은 아픔을 동반하게 된다. 짧은 시간의 만남인데도 헤어지기가 이렇게 힘든데 가족이나 친구와 헤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신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 아닐까 한다. ‘힘내라! 인생은 다 그런 거다.’

칸디는 스리랑카의 제2 도시답게 사람과 건물의 모습에서 도시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니는 교복 입은 학생과 잔뜩 멋을 부린 젊은이의 발랄함이 시골 분위기와는 다르다. 식민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중세 유럽풍의 흰색 건물은 화려함으로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저런 도시의 광경을 바라보며 칸디 호수(Kandy Lake)를 따라 걷다 보면 우뚝 솟은 하얀색의 불치사가 눈앞에 나타난다.

불치사 앞 칸디 호수(kandy lake)는 도시의 랜드마크(Landmark)로서 도시의 품격을 더해준다. 임승백 기자
불치사 앞 칸디 호수(kandy lake)는 랜드마크(Landmark)로서 도시의 품격을 더해준다. 임승백 기자

불치사는 왕궁 단지 내에 있는 사원으로 부처 치아 유물이 보관된 곳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유물을 가진 자가 나라의 통치권을 쥐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어 대통령 선서를 이곳에서 할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부처 치아 유물은 원래 인도의 칼링가(Kalinga)라는 나라에 있었으나 전쟁이 일어나자 구하시바(Guhasiva) 왕은 헤마말리(Hemamali) 공주에게 유물을 안전한 스리랑카로 옮기라고 명령을 내린다. 공주는 남편과 함께 머리카락 속에 유물을 숨기고 섬으로 건너가 신할라 왕에게 유물을 전한다. 유물을 받아든 왕은 당시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Anuradhapuar)로 유물을 옮겨 안치한다. 이때의 행렬을 기리기 위해 매년 3월이면 코끼리 등에 유물을 싣고 이동하는 모습이 재현된다고 한다.

유물은 수많은 곤경을 겪으며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다 16세기경 비말라다르 마수리야 1세(VimaladharmasuriyaⅠ)에 의해 왕궁 가까이에 있는 오늘날의 사원으로 모셔졌다. 사원에서는 매일 새벽, 정오, 저녁 세 번의 공양 의식이 거행되며 수요일에는 목욕하는 의식이 치러진다고 한다.

불치사 매표소에 들어서자 호객꾼이 다가와 자신이 ‘최고의 가이드’라며 팔을 잡아당긴다. 주변을 돌아보니 단체 관광객뿐만 아니라 개별 관광객조차 가이드를 동행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불교에 대해 조예가 깊은 친구가 있으니 뭔 걱정일까 싶어 그냥 사원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입장권을 사는 것부터 신발 맡기기, 사원 입구 찾기까지 일일이 묻고 헤맨 후에야 겨우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울긋불긋한 불교 문양의 벽화로 장식된 입구를 지나 부처님 치아가 있다는 2층으로 올라가자 관광객과 참배객들로 인해 혼잡스럽다. 견학을 온 듯한 학생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고 합장도 하며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외국인의 행동이 기이했는지 주변의 학생과 현지인들은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수줍은 웃음을 보인다.

부처 치아 유물이 안치되어 있는 2층 법당안은 엄숙하기 그지없다.. 임승백 기자
부처 치아 유물이 안치된 사원 안은 엄숙하기 그지없다. 임승백 기자

사원 안은 금세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자리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세계의 불상이 모여 있다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 안에는 각 나라에서 건너온 불상이 층별로 자리를 하고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자태의 우리나라 불상은 최고의 예술미와 함께 얇은 미소까지 보여준다.

박물관 밖의 넓은 회랑은 자리만 펴면 멋진 잠자리가 될 정도로 시원하다. 회랑 기둥에 기대어 깊은 명상에 잠기며 한낮의 꿈 속으로 빠져든다. 회랑 옆 궁전에서 칸디 왕조의 마지막 왕과 가족들이 화려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나같이 슬픈 눈을 하고 있다. 눈꼬리를 위로 쭉 째지게 하던지 작은 눈을 가졌더라면 수많은 외세로부터 침략당하는 고통도 적었을 텐데 어찌하여 사슴과 같은 큰 눈망울을 하고 있어 슬픈 이야기 속에서만 살아야만 했는지 보는 이의 마음만 아프다. 낯선 이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수줍은 웃음을 보이며 부처님 품에 안긴다.

불치사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회랑은 명상하기 최적지이다. 임승백 기자
불치사 박물관 건너편에 있는 회랑은 명상하는 이에게 최적지이다. 임승백 기자

망상으로 깊이 빠져들어 갈 무렵 한 무리의 중국 관광객들로 인해 정신을 다시금 가다듬는다. 불치사가 어리는 호숫가에 앉아 사원을 몇 번이고 다시 쳐다보며 유물을 지키려 했던 그들의 역사를 떠올린다. 이들은 유물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을까? 부처님의 영혼이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했을까? 아마도 부처님도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답도 없는 궁금증만 가득 안은 채 호숫가 가로등은 서서히 붉을 밝히며 도시의 고즈넉함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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