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⑦
스리랑카(Sri Lanka), 찬란한 문화의 도시에 가다⑦
  • 임승백 기자
  • 승인 2020.04.20 11: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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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섬’이라 극찬한 섬
남쪽 끝자락 미리사는 아름다운 해변과 장대 낚시로 유명
초승달 모양의 미리사 해변(Mirissa Beach) 전경 ⓒunsplash.com(by Nawartha Nirmal)
초승달 모양의 미리사 해변(Mirissa Beach) 전경. ⓒunsplash.com(by Nawartha Nirmal)

 

반다라웰라(Bandarawela)에서 마타라(Matara)까지 오는 버스 여행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여행 첫날 콜롬보(Colombo)에서 담불라(Dambulla)까지 가면서 탔던 에어컨 버스를 생각하며 기다리던 우리는 에어컨 버스와는 거리가 한참 먼 시골 버스가 우리의 버스임을 알고선 적잖게 놀랐다. '아니, 저걸 타고 6시간을 가야 한다고?' 입을 쩍 벌린 채 어이없어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동남아 여행에서 흔한 일인데 뭘 그렇게 놀라냐! 이런 게 자유여행의 맛이지”라며 핀잔까지 준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올라탄 버스는 가는 내내 우리의 애간장을 태웠다.

버스 상태를 볼 양이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다. 버스 안은 무사고를 기원하는 오만 가지 장식들로 무당집을 연상케 하고 장식품에 불과한 계기판과 옆 사람 이야기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 시끄러운 인도풍의 노래는 애당초 안전 운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참을 기다려 승객이 어느 정도 탔는지 버스는 마을 어귀에 있는 불상 앞에 세워지고 안전 운전 기원 의식을 치른다. 의식을 마친 기사는 부처님에게 난폭 운전에 대한 허락이라도 받았는지 실실 웃으며 미친 곡예 쇼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반다라웰라(Bandarawela)에서 마타라(Matara)까지 운행하는 버스. 임승백 기자
반다라웰라(Bandarawela)에서 마타라(Matara)까지 운행하는 버스. 임승백 기자

버스의 앞문을 활짝 열어놓고 달리는 것도 모자라 승객이 내려야 하는 곳에 이르면 차를 세우지도 않은 채 승객이 알아서 뛰어내리게 한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휴대전화를 끄집어내어 전화질이고, 경적은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기 일쑤다. 이 나라는 운전면허시험에 중앙선 침범하는 과목이 따로 있는지 중앙선을 예사로 넘나든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좁은 2차로 도로에 차 3대가 자동차 경주하듯 나란히 달리지를 않나, 긴 경적과 함께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으면 어느새 마주 오던 트럭이 스쳐 지나가 버리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선 뜨내기 구걸꾼이 올라와 콜롬보에서 유명한 드러머(Drummer) 출신이라고 소개한 뒤 배에 난 수술 자국을 젖혀 보이며 드러머답게 탬버린을 신나게 흔들고 사라져 버리는 것은 살 떨리는 여행의 코미디 양념이었다. 짐짝 취급당하지 않고 앉아서 온 것만으로도 고맙고, 목숨을 살려준 곡예사에게 무조건 감사해하며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부처님을 찾아다녔던 정성 덕택이라고 여기며 버스를 향해 합장까지 하였다.

전날의 아찔함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새벽녘에 리조트 주인의 추천으로 갔다 온 고래 투어(Watching Whale)에서도 반나절을 인도양의 거친 파도와 싸우느라 생고생을 하였다. 고래를 찾아다니느라 바다 위 롤러코스터를 탔던 여행자 대부분은 뱃멀미로 초주검이 되어 버렸고, 가이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뱃멀미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여행자에게 샌드위치와 우유까지 나눠주는 친절(?)의 수모까지 겪었다. 인도양과는 두 번 다시 맞짱을 뜨지 않겠다고 신께 맹세하며 배에서 내리는 여행자는 전쟁터에서 다친 패잔병의 모습 그대로였다.

거친 인도양에서 펼쳐지는 고래 구경(Whale Watching). 임승백 기자
다양한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거친 인도양에서 펼쳐지는 고래 투어(Watching Whale)를 즐기고 있다. 임승백 기자

처참해진 몸을 이끌고 들어선 리조트는 십여 년 전 한국에서 일하였다는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전날 밤 만찬을 즐기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알게 된 리조트 사장은 경기도 안산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호텔과 버스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사장의 한국 생활 무용담을 들으며 술잔을 주고 받던 중 그의 리조트에 머물기로 약속하고 숙소를 옮긴 것이다.

이틀 동안 스릴 넘치는 경험을 한 후 바닷가 수영장에 누워 게으름을 만끽하고 있을 때 사장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는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사장님! 심심하지 않아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혹시 해변이나 방파제에서 낚시를 할 수 있나요?”

“글쎄 관광객한테는 선상낚시만 소개했는데 해변에서 낚시는 잘 안 하는데... 조금 기다려 보세요. 친구에게 물어볼 게요.”

미리사 해변(Mirissa Beach)에서의 낚시는 여행의 멋을 더해준다. 임승백 기자
미리사 해변(Mirissa Beach)에서의 낚시는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임승백 기자

그리고는 친구에게 전화하더니 얼마 있지 않아 야자수 줄기에 나일론 줄과 낚싯바늘만 달린 낚싯대를 가져다준다. 술안줏감을 잡아 오겠다며 미끼 한 줌과 멋진 낚싯대를 들고 바닷가로 나가 몇 시간을 인도양과 싸워보지만, 고기 얼굴도 보지 못하고 새카맣게 탄 얼굴만 남는다. 더위에 지쳐 숙소로 터벅터벅 걸어오자 사장이 빙그레 웃으며 엄청난 위로의 말을 던진다.

“고기 못 잡았어요? 그러면 장대 낚시(Stilt Fishing)하는 곳에 갈래요?”

그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귀를 의심하며 몇 번을 되묻는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장대 낚시? 진짜야? 너 장난하는 거 아니지? 입장료 주고 들어가서 사진 찍을 때마다 돈을 달라고 하는 그런 곳은 아니지?” 

‘이게 웬 떡이냐’ 그 유명한 장대 낚시를 볼 수 있다니 말이다. 장대 낚시에 관한 여행 후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사장이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주니 고맙기 이를 데가 없다.

요즘 웰리가마(Weligama)를 중심으로 아항가마(Ahangama), 갈레(Galle) 등 마을마다 낚시는 뒷전이고 낚시하는 흉내만 내면서 관광객과 사진 찍고 돈을 받는 행태가 대부분이다 보니 여행 후기에 실망스럽다는 글이 수두룩하다. 어부의 행동을 어찌 나무랄 수야 있겠냐마는 그들의 순수한 삶을 돈으로 팔아버린 듯하여 못내 아쉽기만 하다.

세계적인 풍물을 구경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선 숙소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조그만 어촌에 도착한다. 바닷가에는 동네 어부 10여 명이 바다에 박아놓은 장대 위에 앉아 낚시에 여념이 없다. 보는 순간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여행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보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냥 작은 바늘만 달린 야자수 작대기를 드리우면 고기가 물려 올라온다. 프로 낚시꾼이 따로 없다.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에서는 자연스러움이 묻어 있는 베테랑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인도양의 거친 파도가 장대를 연신 때리지만, 터번(Turban)을 한 왜소한 몸집의 어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바닷속 세상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을 따라 흉내를 내어보지만, 장대에 오르는 것조차 만만찮다. 가까스로 장대 위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몸을 지탱하기 쉽지 않아 몇 번이고 바다로 떨어진다. 장대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피라미라도 한 마리 잡으면 해변이 떠나갈 정도로 호들갑을 떠는 우리가 가소로운지 어부는 힐끗 쳐다보고는 무표정하게 다시 바다를 바라본다. 관광객에게는 구경거리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이며,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장면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또 다른 힘든 삶일 수도 있는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낚시 놀이에 빠져 있을 무렵 수평선 너머로 붉은 기운이 드리우며 어부들은 한둘씩 고기 바구니를 챙겨 장대에서 내려온다. 대형 레스토랑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보는 민속공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연의 대서사시를 본 듯한 감동이 쉽사리 가시질 않아 멋진 무대가 펼쳐진 바다를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미리사(Mirissa) 인근 어촌 마을에서 펼쳐지는 장대 낚시(Stilt Fishing) 풍경. 임승백 기자
미리사(Mirissa) 인근 어촌 마을에서 펼쳐지는 장대 낚시(Stilt Fishing) 풍경. 임승백 기자

아름다운 미리사 해변에 어둠이 찾아들면 비추는 달빛과 함께 오색 찬란한 빛으로 물든 수영장은 노란 머리 여자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숙소 옆 구멍가게에 앉아 인도양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즘 서너 명의 동네 청년들이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한국인인지를 물어보고는 한참 동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댄다.

그중 가장 어려 보이는 청년이 한국 산업연수생으로 가기 위해 다음 달 한국어 시험을 보게 되었다며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다. 산업연수생으로 가는 게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보니 불법으로도 가고 싶어 하는 곳이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에 갔다만 오면 번 돈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어떻게 하든지 한국에 가려고 애를 쓴다며 비장한 각오까지 보인다. 그들의 눈동자 위에 사막으로 돈을 벌러 갔던 우리네 아버지가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아려온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흘릴 눈물이 많을 텐데 그것이 이들의 꿈이라고 하니 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들의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들은 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선 사라진다.

사장이 지역에 돈을 좀 뿌렸나 보다. 숙소 입구에 흔치 않은 ATM(현금자동입출금기) 뿐만 아니라 경찰 초소까지 있다. 이런 모습들이 이 나라 청춘의 눈에는 다른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고 있으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인도양의 파도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밤을 향해 소리 내어 울부짖고 있다.

한국 생활을 한 부부가 운영하는 리조트는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다. 임승백 기자
한국 생활을 한 부부가 운영하는 리조트는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다. 임승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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