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69)
[정월 대보름 이야기]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16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4.05.27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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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에~ 고 모진 세월 같으니!” 고개를 돌려 양쪽 검지로 좌우를 향해 코를 팽팽 풀더니 허벅지살이 희멀겋게 드러나든 말든 치맛자락을 걷어 인중을 훔치고는

“아이고 모질고도 모진 것, 싫다고, 싫다는 이놈의 연기는 화적 때 모양 오늘따라 어쩌자고 이토록 모질고도 맵단 말인고! 저리 가라고, 저리로 가라 손짓으로 좇아도 기어이 눈에 들어서는 독사 이빨로 콕콕 쑤셔가며 모삽게도 구네! 아이고 지겹고 지겨운 이내 신세야!” 하소연에 젖무덤이 허옇게 비치든 말든 속적삼까지 훌러덩 걷어 눈시울을 닦으며 행랑어멈을 희멀건 눈동자로 쳐다보며

“어~이구 이넘의 연기처럼 모질고도 모진 세월 같으니! 배고픈 저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나! 아비 어미 잘못 만난 죄이지! 그저 가난이 원수지! 한데 나는, 나는! 대책 없는 아비 어미는! 저 작은 뱃구레 하나 제대로 못 채워 배불리 건사를 못하는 주제에 뭣이 좋아 밤이면 밤마다 지랄발광에 싸지르기는 왜 싸질렀던고!” ‘칵칵’ 거리더니 냅다 가래침 한 덩이를 마당 저 멀리 뱉는다. 그때까지도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고 섰던 행랑어멈이 의식적으로 눈을 피하는데 낭패한 표정이 역력하다. 게다가 못 들은 것인지 아니면 귀머거리 흉내로 외면인지 굳게 닫힌 마님의 방을 향한 눈길에서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한 모양이다. 지난날 같으면 치밀어 오르는 부화를 못 참아

“이게 당최 뭣들 하는 짓들인가? 상도 차리기 전에, 굽기도 전에 이 핑계 저 핑계로 야금야금 먹어치우면 어쩌잔 말인가? 사람들이 양심이 없어 양심이! 양심이 없으면 염치라도 있어야지! 누구는 뭐 논밭 팔아가며 장사하는 줄 아는감! 아 일들 안 할거여!” 앙칼진 소리에 물고기 몰 듯 억세게 몰아붙이고도 남을 일인데, 한데 오늘은 어찌 된 일인가? 생각과는 달리

“이 보시게들! 나를 두고 얼굴에다 철판을 깔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비치는 비정한 인간말종이라고, 이후는 제발 그런 소릴랑 마시게! 나라고 뭐! 이러는 이 세월이 마냥 좋은 줄로만 아는감! 아~ 이 사람들아 그런 인정머리 없다는, 그런 소릴랑 아예 마시게, 에~고 무정한 사람 같으니! 그런 모진 소릴랑 애당초 하지 마시게!” 혼잣말인데 아이는 여전히 바람처럼 왔다가 연기처럼 사라져간 지짐이에 대한 미련이 남는지, 이제는 침인지도 기름인지도 모르게 번들번들한 손가락 끝만 뚫어지도록 내려다보고 섰다. 그 모습을 초점 잃은 흐린 눈으로 아스라이 바라다보던 행랑어멈이

“아~ 이 사람아 그게 뭐가 어때서 그러나! 그렇다고 어미가 돼서 어째 아이를 때려잡을 듯 때려 쌌고 그래 쌌노! 배고픈 아들이 어미를 찾아 음식 앞에 칭얼거리기 예사지! 동네, 아니지 부잣집 잔칫날을 맞아, 그래 맞아 잔칫날이지! 기왕에 펼쳐진 잔칫날에 어미를 찾아 지짐이 한 조각 얻어먹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예삿일이지! 그것이 인심이고 어미 된 모정이지!” 혼잣말에 저만치에 서 있는 행랑아범을 불러 마당의 한쪽, 빈 구석에 덕석을 깔고는 상을 펴란다. 이윽고 덕석이 펴지고 상이 등장하자 행랑어멈은 이것저것 음식을 가려서 보기에도 푸짐하게 차린 뒤 대문간을 기웃거리던 아이들을 있는 대로 불러들여 마음껏 먹으란다. 멍하게 서 있는 아이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으며

“오냐 그래~! 그래 너도 어서, 어서 가서 배부르게 먹어야지 응~! 이 할머니가 조금 전에 그렇게 약속했잖아! 어머니 말씀 잘 들으면 맛있는 것 많이, 이만큼 많이 주겠다고!”

“예~ 예~” 상위로 널린 듯 푸짐한 음식들에서 시선을 거두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가

“예~ 예 할머니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인사다. 그와 동시에 음식상 앞으로 자리 잡아 막 먹으려던 아이들까지 몽땅 일어나 떼-창으로 고맙습니다. 다. 한데 감사 인사가 끝나도 제자리에 앉기는커녕 우물쭈물 망설인다. 하나같이 손짓으로 아이가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짜식들이~ 고마워~ 꼴에 의리는 있어서는!” 흐린 눈동자가 비좁도록 늘어선 동무들이 올망졸망하다. 그런 가운데 문득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가슴이 벅차 설렌다. 그건 전혀 뜻밖으로 고만고만한 얼굴 중에서 미향(美香)이가 화사하게 웃고 있다. 어째서일까? 전에 없이 빨리 오라고 손짓까지 더해 팔랑거린다. 평소 말이라도 붙일라치면 까대기(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구애하는 행동을 의하는 부산 및 경남지역의 방언) 짓을 말라며 손가락을 매 발톱으로 구부리고, 손톱이라 치켜뜬 눈초리처럼 새파랗게 날을 세워가며 위협하질 않았던가? 한데 어째서일까? 미향이가 웃는 모습에서 더럭 겁부터 난다. 또 무어라 윽박질러서 타박일까? 거짓말 같은 현실 앞에 발걸음이 무겁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미향이 큼지막한 고구마전을 냉큼 손에 올려준다. 이게 모두가 네 덕이라는 듯, 어서 먹으라며 눈을 깜박깜박, 빤히 올려다본다. 한데 금방 솥뚜껑에 날아왔을까? 삶은 빨래를 떡 주무르듯 한다는 행랑어멈의 손끝이라서 그런가? 흡사 불에라도 데인 듯 손바닥이 화끈화끈하다. 그러게나 말게나 두 눈 질끈 감아 크게 한입 베어 무는데 입안으로 잉걸불이 불이 이는 듯 화끈하다. 입천장이 홀라당 벗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맛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질끔 돈다. 왼손 소매로 시부저기 눈가를 훔치며 미향의 얼굴을 보는데 절로 웃음이다.

“애~ 애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할라! 식혀 먹든가 안 하고! 안 뜨거워? 내가 입으로 호~ 불어줄까?” 근심스럽게 쳐다보는데 마음은 고무풍선 모양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마냥 고개만 가로저어 앉았는데 미향이 얼굴이 보름달로 둥실 떠오른다는 기분이다. 여기가 구름 위인가? 눈앞으로 단풍 비가 울긋불긋 휘날린다. 금풍(金風)을 따라서 노란 국화꽃 향기가 코끝에서 짜릿하다.

세상에서 보기 좋은 몇 장면을 손가락으로 꼽으라면 제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으로 음식 들어가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그때까지 사태의 추이를 살펴 가며 눈치껏 일을 하는 아낙네들의 눈에서 힘이 풀어진다. 동냥 나온 거지새끼 모양 대문께서 쭈뼛거리던 자식새끼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잔칫상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은 모습에서 힐끔힐끔 웃는다. 저마다 좋아라고 참새처럼 쫑알쫑알 먹는 모습을 보는데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모습에 아낙네들 손으로 때아니게 신바람이 인다. 내남없이 퉁퉁 부었던 얼굴은 어디로 떠나가고 일이 손에 착착 감기는데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음식을 총괄하는 행랑어멈을 보고는 어느 마음씨 고운 보살님이 하강이라도 한 듯 보일 때마다 눈웃음을 지어가며 저마다 굽신거린다. 전에 없이 후덕한 행랑어멈이라며 칭찬이 자자하다. 지난날 마귀할멈 같다고 내남없이 삿대처럼 내지르던 손가락이 지금은 한없이 부끄럽단다. 이와는 달리 행랑어멈은 속으로 생각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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