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母子)의 꿍꿍이 뒤편으로 저승사자와도 같은 행랑어멈이 빤히 내려다보고 섰다
힘 잃은 눈동자로 멀거니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세상 슬픔을 홀로 짊어진 듯하다
“빌어먹을 지주 놈 같으니라고!”
그런 와중에 아무 날 점심때에 즈음하여 소작인 전원은 지주댁으로 모이라는 전갈을 받고 보니 속은 터질 듯 답답하다. 이는 전래에 비추어 모이는 족족 이현령비현령으로 늘 푼돈이나마 손해만 보아 온 때문에 절로 걱정이 태산이다. 마님이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작은 마님조차 어째 그럴 수가 있냐며 배신감이 더해 얼굴은 휴짓조각으로 일그러진다. 그런 한편으로 지난 시간의 모든 선행이 오늘을 위한 가식만 같아 보였다. 손자병법에 입각한 치밀한 전락 같다. 이유를 불문 모이라는 기별이 이와 무관치 않다고 생각하니 한마디로 미쳐버릴 지경이다. 작은 마님의 임신은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뱃속 아이를 구실로 또 얼마나 손해를 보아야 할까?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근심으로 입맛마저 떨어 진지가 오래다. 화려한 색으로 물든 오색단풍이 피눈물 범벅 인양 싶다. 이 절박한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까? 잠시 짬이나 모이는 소작인마다 대폿잔을 기울이며 궁리라 해보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도 아니고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대를 이은 독자로 귀하고도 귀하게 뱃속으로 들어선 아이를 두고 알밤 떨어지듯 떨어지라 저주를 퍼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에 피 같은 양식이나 덜 축나고 소작으로 붙이던 전답이나 그냥저냥 했으면 속으로 바랄 뿐이다.
오라는 날은 더디기만 한데 아예 없었으면, 오지 말라는 날은 잠을 깨고 눈을 뜨니 당장에 코앞이라더니! 발등의 불로 모이라는 날을 맞아 음식 장만을 위해 조반상을 물리기 무섭게 달려온 소작인들의 아낙네마다 입이 퉁퉁 불었다. 마당은 가득 엄나무 가지를 입에 문 듯 뾰족한 입방아로 시끌시끌하다. 저마다 내키지 않은 자리를 하나씩 얻어 엉거주춤하게 앉았는데 종로에서 뺨을 맞고 왔는지 심통이 얼굴마다 뒤룩뒤룩 붉어졌다.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가진 재산이 또 얼마간 축난다고 생각하니 복장이 터져 못 살겠다는 표정이다. 있는 놈이 더 하다고 창고마다 양식이 썩어나는데 삼일 피죽도 못 먹는 사람들의 코 묻은 재물을 탐한다 여겨 여차하면 불문곡직 주먹다짐이라도 할 요량이다. 문디(‘문둥이’의 방언) 콧구멍의 마늘을 탐하듯, 젖먹이 계집아이 잠지에 붙은 밥풀을 탐하듯 손을 내민다고 생각하니 손에 일이 잡힐 까닭이 없다. 죄수 딜레마처럼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듯 입을 굳게 닫고는 일에 열중인데 대문간으로 얼굴이라 영양실조가 도져 황달기로 싯누렇고, 광대뼈는 툭툭 불어지고, 아래 뱃구레는 헛배로 불룩한 아들이, 딸내미의 얼굴이 복장 터지게 빠끔히 보인다. 금방 감자가 듬성듬성 박힌 꽁보리밥 한 공기를 뚝딱이지만 돌아서면 배가 고픈 아이들이라 음식 냄새에 흘린 탓인지 입가로는 진즉에 침을 잔뜩 묻혔다. 꼭지딴[예전에, 거지나 딴꾼(포도청에서 포교의 심부름 등을 하며 도둑을 잡는 일을 거들던 사람)의 우두머리를 이르던 말]을 따르는 패거리 모양, 작년에 왔던 각설이 모양, 삼 일을 내리 굶은 비렁뱅이 모양, 동냥 나온 거지새끼 모양 대문간이 비좁다며 기웃거린다. 모래 알갱이를 반찬으로 돌자갈을 밥처럼 씹어 삼켜도 능히 소화를 시킬 나이다 보니 모처럼 만의 별미를 놓칠 까닭이 없다.
너나없이 삭정이 모양 비쩍 마른 팔다리로 어미가 보란 듯 눈앞에서 알짱거리는데 애처롭기 짝이 없다. 살점이라곤 어디로 시집보내고 뼈다귀에 가죽만 입힌 격으로 저리도 말랐단 말인가? 푸짐한 음식 앞이라 그런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다. 눈치껏, 어떻게든 한 점이라도 먹여 볼까 싶은 마음에 은밀하게 치마 밑으로 묻은 손짓에 급히 불러들인다. 안채를 힐끔거리다간 솥뚜껑에서 지글지글 끓는 지짐이 한 장을 손에다 급하게 쥐여준다. 하지만 이 녀석도 먹는 것에는 산전수전, 공중전에 애어른이다. 눈치는 구단이라! 한입 베문 입안에서는 불이 일지라도 ‘우우’ 거릴 뿐 뜨겁다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벙어리처럼 ‘어~어!’할 뿐이다. 이손 저 손으로 옮겨 가며 훌훌 부는데 언제 어디에서 귀신처럼 왔을까? 모자(母子)의 꿍꿍이 뒤편으로 저승사자와도 같은 행랑어멈이 빤히 내려다보고 섰다. 무안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한껏 상한 어미는 엉겁결에 아이의 등 짝을 힘닿는 대로 후려치는 것으로는 분에 안 차는지 자신도 모르게 앙칼진 발길질이다.
“야~ 이놈의 새끼야! 어째 그런다냐! 뱃속에 사흘 굶은 거러지(‘거지’의 방언)가 들어앉았나? 밥버리지가 들어앉았나? 식충이도 아니고 아침 밥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배가 고프기는 어째서 고프다냐!” 벼락같은 호통에 부지불식간 저만치로 벌러덩 나뒹구는 아이다. 그 바람에 손에 든 지짐이도, 목구멍을 막 넘으려던 물컹한 지짐이가 질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와 땅바닥으로 구르고 또 구른다. 콩고물을 뒤집어쓴 인절미처럼 벌겋게 흙 범벅이다.
“어이구 아파라! 어~ 어~메 나~죽네! 아~ 엄마는 어째서 죽자사자 아프게 때리기는 왜 때리고 그래 쌌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라고 이캐 모질게 때릴라치면 부르지나 말지! 지짐이나 주지 말지!” 등을 슬슬 쓸어서 어기적어기적 긴다, 저만치에서 흙을 고물로 뒤집어쓴 채 널브러진 지짐이 쪼가리를 기어이 집어 든다. 일일이 집어 들고는 툭툭 털고 섰다. 모자간의 때아닌 소란에 사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멀찍이서 보고선 또래들조차 지레 겁을 먹고는 갈팡질팡 대문간으로 얼굴만 삐죽하다.
“야~ 이놈의 새끼가 흙 범벅에, 네가 걸뱅이 새끼냐? 그걸 어떻게 먹어, 빨리 안 버려!” 고함인데 속에서 천 갈래 만 갈래의 불길이 풀썩인다. 그러게나 말게나 아이는 어미의 눈치를 보아가며 냉큼 입으로 가져갈 태세다.
“야 이놈아 그 더러운 것일랑 동네 똥개나 줘라!” 호통에 당장에 나가라며 손짓이다. 그런 한편으로 행랑어멈을 보고는 애써 비굴한 표정으로
“아 글쎄 저게 전에는 안 그러더니만 오늘따라 이상스럽게 그러네요!” 은근슬쩍 눈을 감아달라는 시늉으로 어설프게 웃는다.
그즈음 아이의 눈길은 여전히 손에 쥔 지짐에 고정으로 애가 타는 표정이다. 혼자 생각에 흙먼지와 모래, 검불 등을 털어내면 먹는데 무난하다 여기는 모양이다. 간간이 입맛을 다시는 모양이 고소한 기름 냄새에 매료되고 노릇하게 익은 밀가루가 유혹하는 감칠맛에 단단히 정신 줄을 놓은 표정이다. 재차 지짐이가 풍겨내는 달콤한 유혹을 못 참아 바짓가랑이에 쓱쓱 문질러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이번에는 행랑어멈이 질겁으로 저지다.
“애~ 튀튀! 그래 그것 일랑은 먹으면 아니 된다. 어머니 말씀대로 동네 똥개나 주거라!”
“...”
“애야 착하지! 옳지 그렇지! 그럼 이 할머니가 맛있는 것으로 더 많이 줄게! 응~ 그래 그건~ 그건!” 말끝을 흐리는 데 힘 잃은 눈동자로 멀거니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이 세상 슬픔을 홀로 짊어진 듯 한없이 서러워 보인다. 먹을 수 있는데 왜 못 먹게 할까? 설움이 한껏 복받치는 듯 아이의 어깨가 들썩거리더니 급기야 울먹거린다. 그도 잠시 땅을 향해 힘없이 떨군 아이의 고개가 갸웃한다.
평소 음식을 남기거나 흘리면 배때기에 기름기 차서 불렀구먼, 눈알을 부라려 천하의 죄인 취급으로, 수채에 쌀알 한 알만 굴러도 쌀 귀한 줄 모른다는 타박으로, 헤프다며 지겟작대기를 휘둘러 나무라던 때가 어제인데! 그런데 오늘은 왜 이럴까? 느릿느릿, 마지못한 걸음으로 아이가 대문께로 걷는다, 곧장 대문 밖에서 행복에 겨운 똥개의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도 잠시 뒤 초연한 걸음으로 아이가 대문을 들어선다.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고개를 떨궜다. 콧구멍과 입꼬리에 걸쳐 완행열차를 타는 싯누런 코를 힘껏 들이키다가 소맷자락으로 시부저기 훔치는 아이는 애당초 어머니도 또 행랑어멈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한결같이 어른들에게 속아 온 아이에게 꿈처럼 왔다가 바람으로 가버린 지짐이의 환영만 눈에 아른하여 밟힐 뿐이다. 언제나 다시 먹어 볼까? 손가락이 번들번들하게 지짐이가 남긴 기름기를 눈치껏 입으로 핥는데 늘어뜨린 어깨가 파리하게 여위어 눈물겹다. 아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멍청하게 서는데 이번에는 어머니의 인중 가득하게 눈물인지 콧물인지도 모를, 알 수 없는 찐득한 물기로 흥건하다. 아이처럼 훌쩍거리더니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울먹여 푸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