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삼아 없는 허물을 만들어 고자질했다며 용서를 빌어 나부죽이 엎어진다.
저승 갈 식량으로 쌀 한 숟갈에, 노잣돈으로 엽전도 한 닢 입에 물려주고 아니 그러한가?
고모는 병석에 누웠을 때 감골댁으로부터 얼핏 들은 양나라의 여인을 생각해 내고는 향후 그녀를 본받고자 한 것이다. 고모의 결연한 의지를 알아들었는지 뱃속 아기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위험한 시기도 넘긴 그해 늦가을의 어느 날 시어머니가 고모를 찾았다.
고모가 시어머니의 방에 들어보니 행랑어멈이 다과상을 내려놓고는 막 허리를 펴고 있었다. 고부간에 긴히 나눌 이야기인가 싶어 자리를 피하려는 몸짓이 완연해 보였다. 허리를 펴고 몸을 돌리는 행랑어멈을 두고 시어머니가
“자네는 어딜 가려고 그러는가? 어디 바쁜 일이라도 있는 겐가? 자네도 어차피 알아야 할 일, 그리로 앉게나!” 손짓으로 재촉이다. 행랑어멈이 의외라는 듯 엉거주춤 자리하고 앉자 시어머니는 다탁 아래로부터 쇳대(’열쇠‘의 방언)꾸러미를 꺼내 올려놓고는
“애야~ 며늘아가 내 초가을부터 혼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으로 너는 군말 말고 따라야 하느니라! 해서 오늘 이후부터 이 집 살림은 네가 알아서 꾸려 가려무나!” 넘겨다 본다. 시어머니의 뜻밖의 말에 깜짝 놀란 고모가
“저가 감히, 어찌 그러한 중임을! 당치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어머님에 비해 한참이나 멀었습니다. 하와 말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아직은 어머니께서도 정정하시고!” 사양하는데 시어머니는
“오냐! 내 너를 처음 맞아들일 때 벌레를 들인 것처럼 미워했던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하나 이제는 과거지사로 더 없이 귀하고도 미더운 내 맏며느리가 아니더냐? 어떻게 보면 네가 나에게 온 그 자체가!, 이 또한 관세음보살님의 오늘을 위한 안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해서 이제부터는 네가 맡아야만 될 것 같구나! 내 진즉부터 너를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느니라!” 가만히 바라보더니
“한데 여기에는 몇 가지 부탁이 있다. 이후 이 집의 재산을 다 들어먹고 알거지로 거리에 나 앉는다고 새아가 너를 원망하지 않겠다. 물론 현재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하등 괜찮다. 하지만 재산을 이 이상 불리지는 말아라! 내 창고에서 쥐들에게 내어주는 곡식, 썩어서 두엄으로 들어가는 양식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구나! 그런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니라, 하니 너는 결단코 사양치 말아라!” 고모를 보고는 손을 달라 청하는데 너무 뜻밖이라 얼떨결에 양손을 시어머니께 내맡기는데
“오냐~ 고맙다. 향후 뜻이 있거든 우리가 실없이 거느린 저 많은 전답일랑은 실제 농사를 짓는 농군들에게 돌려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내 너에게 거는 꿈이자 이 늙은이의 진실한 마음으로 희망이니라!” 할 때
“어머님! 어머님께서도 못하시는 일을 저라고 달리 방도가 있겠습니까? 하오니 계속 어머님께 관리하다가 먼 훗날에!” 말끝을 흐려 무안을 감추는데
“애~야 나라고 천년만년 살 것 같으냐! 자신의 병은 자신이 더 잘 안다고 내 느낌에 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 그리고 지금도 이 시어미가 못하는 일을 척척 잘 해내질 않느냐? 내 너의 고운 심성이라면 이리저리 휘둘려서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내 그 일로 네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어서 그러느라! 나 눈감기 전에 그 집이 재산만 많은 집이 아니라는 소문을 진정으로 듣고 싶구나!”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데 옆에 앉았던 행랑어멈이
“작은 마님! 이제는 그냥 못 이기는 척 큰 마님의 짐을 덜어주세요! 근자에 이르러 큰 마님께서 밤잠을 설쳐가며 몇 달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인가 봅니다” 쐐기를 박는다.
“이런 이 사람이 아직도 마님이야! 내 동식이 어미라 부르라며 그만큼 당부했건만! 친구 간에 허물없이 그렇게 부르는 게야!” 눈을 흘겨 나무라더니 고모를 보고는
“애 새아가야 행랑어멈이 말한 그대로다. 내 짐 좀 덜어다오!” 하는 것으로 재산관리의 일체가 고모의 수중으로 넘어왔다. 그날로부터 시어머니의 고민이 고모의 고민으로 몇 날, 며칠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고모가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어느 날 행랑어멈이 마님을 찾아왔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행랑어멈은 죄의식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는 듯 윗목으로 뻘쭘하게 섰다.
“시방 자네는 무슨 일인데 그러는가? 대들보 안 내려앉네! 이리 내려앉아서 소상하게 말해보게! 그래야만 조언하든, 방법을 찾아서 강구 하든 할 게 아닌가?”
“예~ 그것이, 저~ 마님! 못나고 천한 이년이 마님과 작은 마님께 커다란 죄업을 지었나이다”
“아니 그 무슨 말인고? 자네가 내게, 그리고 새아가에게 죄를 짓다니! 도대체 법 없이도 살 자네가 무슨 죄를 언제 어떻게?”
“그러니까 그게요!” 기어드는 목소리에 행랑어멈은 과거 고모가 시집을 온 이튿날부터 부엌에 들었을 적에 모함했다며 이실직고다. 고모가 솜씨가 없는 것도, 밥을 태우지도 않았는데도 일삼아 없는 허물을 만들어 고자질했다며 용서를 빌어 나부죽이 엎어진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흐느낀다. 당시 고모의 솜씨로 보아 머잖은 어느 날에는 살림살이를 도맡아 쫓겨날까 싶은 두려움에 그랬노라며 고모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빌고 싶단다. 가늘게 떨고 있는 행랑어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마님이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이보게 금당실댁, 그러니까 그때 내가 팔은 안으로 굽어 며느리에게 부엌을 맡기고는 불문곡직 내칠까 두려워서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못난 사람 같으니! 어찌 지난날 철석같이 했던 약속을 못 믿고선!”
“예~ 천한 이년이~ 그러게나 말입니다. 예~ 마님 그럼 이년은 이제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때 그 일로 작은 마님께 노여움을 산다면, 차후 그 일로 해서 집을 나가야 한다면 그러면!”
“...!”
“바람처럼 정처 없이 떠돌다 어느 마을의 나지막한 언덕-빼기를 베개로 베고, 길섶에 동그랗게 누워 까마귀밥 신세가 된다면!”
“사람하고는 어떻게 그런 흉측한 생각을! 결단코 그런 일은 없을 거네! 염려 말게! 내 지금껏 겪어본 그 애의 심성은 그리 모질지가 못하네! 분명 대수롭지 않게 없던 일로 할 것이야!”
“정말 그럴까요?”
“그 애라면 분명 그렇게 할 것이야! 하지만 그전에 자네가 성심으로 용서를 빌어야 할 게야!”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이네만! 자네는 참으로 심성이 고우니!”
“아~ 아닙니다. 마님! 이런 모진 마음을 먹은 이년이 심성이 곱기는요!”
“아닐세 이로써 자네는 이쯤에서 더는 죄를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네! 큰 죄가 어디 처음부터 큰 죄라던가? 작은 죄를 덮고자 다른 죄를 짓고, 그 죄를 덮고자 키우는 데서 비롯한 것이지! 그러다가 감당이 불감당이면 자기 합리화에 빠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거지!”
“예~ 마님! 저도 가끔 그런 유혹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도 마님이네! 그건 그렇고 혹 일이 틀어지면 넌지시 언질을 주게! 하지만 자네가 진심을 가진다면 아무 일도 없을 거네! 내 장담하네! 그리고 내가 먼저 죽으면 자네가 내 수의를 곱게 지어 입혀줘야 할 것 아닌가? 또 저승 갈 식량으로 쌀 한 숟갈에, 노잣돈으로 엽전도 한 닢 입에 물려주고 아니 그러한가? 그런 일이야 없어야겠지만 세월이 무심하여, 가는 데는 순서가 없어 나이 어린 자네가 나를 앞장이면 그때는 내가 자네 수의를 곱게 지어서 입혀줌세! 식량으로 쌀 한 숟갈에 엽전 한 닢을 노잣돈으로 아낌없이 내놓겠네! 그래 우리 그렇게 저승길을 남은 사람이 배웅하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