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장서 산책] 김영민 '공부란 무엇인가?'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4.02.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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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는가?

저자 김영민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다.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린모어대 교수를 지냈다. 동아시아 정치사상사, 비교정치사상사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영문 저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가 있다. 2018년에는 첫 산문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2019년에는 논어 에세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을 펴냈다. 이 책(공부란 무엇인가)은 2020년에 출간되었고, 2022년에 초판 7쇄가 발간되었다.

이 책은 먼저 공부하며 살아가는 자로서 인생의 화양연화를 낭비할지도 모를 이들을 염려하며 쓴 글의 모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더 나은 인간으로 살기 위한 공부의 필요성과 삶의 태도, 공부의 과정 속에서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목차는 ‘1부 공부의 길, 2부 공부하는 삶, 3부 공부의 기초, 4부 공부의 심화, 5부 공부에 대한 대화’로 되어 있다. 2부~4부의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한다.

1. 공부의 기대 효과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지식 탐구를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가? 지식이 깊어지면, 좀 더 섬세한 인식을 하게 된다. 아시아 사람들을 얼마 만나보지 않은 서양인의 눈에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몽골인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다 비슷하게들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좀 더 많은 아시아 사람들을 만나본 끝에 인식의 깊이가 깊어지고 나면, 처음보다 더 섬세하게 대상을 구별하게 된다.

섬세함은 사회적 삶에서도 중요하다. 섬세한 언어를 매개로 하여 자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고 또 타인을 이해하고자 하는 훈련을 할 때, 비로소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다. 거칠게 일반화해도 좋을 만큼 인간의 삶이 단순하지는 않다. 거친 안목과 언어로 상대를 대하다 보면, 상대를 부수거나 난도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식의 거친 공부라면, 편견을 강화해줄 뿐, 편견을 교정해주지는 않는다. 섬세한 언어야말로 자신의 정신을 진전시킬 정교한 쇄빙선이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다면, 다른 세계를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 만남에는 섬세한 언어가 필수적이다. 언어라는 쇄빙선을 잘 운용할 수 있다면, 물리적인 의미의 세계는 불변하더라도 자신이 체험하는 우주는 확장할 수 있다. 그 과정 전체에 대해 메타적인 이해마저 더한다면, 그 우주는 입체적으로 변할 것이다. 언어는 이 사회의 혐오 시설이 아니다. 섬세한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공부를 고무하지 않는 사회에서 명철함과 공동체 의식을 갖춘 시민을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수재민을 찾는 것과 다를 바 없다.(82~85쪽)

2. 공부와 체력

매사에 체력은 기본이지만, 학문의 길에서 체력은 특별히 중요하다. 학문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열정을 오래 유지할 체력이 없으면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없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기어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장기전에 필수적인 체력을 길러야 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도 체력이 좋아야 할 수 있다.

체력이 이토록 중요한데도 두뇌의 중요성에 비해 체력의 중요성은 그간 충분히 강조되어온 것 같지 않다. 일단 중고교 교육에서부터 체력 단련은 저평가되어 왔다. 한국의 학교에서 일주일에 체육 시간이 몇 번이나 되는가? 그리고 그 시간은 정말 학생들의 체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가? 그나마도 고3이 되면 체육 시간을 없애거나 줄이지 않나?

젊은 시절에는 체력 단련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할 수 있다. 젊은 혈기에, 카페인 음료에만 의존해가며 책을 읽어도 그럭저럭 자기 앞가림을 해나갈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음은 유한하고, 육신은 퇴화하며, 체력은 한정된 자원이었음이 판명난다.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고 나면 결국 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공부를 그만두어도, 사람들은 왜 그가 공부를 그만두었는지조차 모른다. 너무 지친 나머지 왜 공부를 그만두는지 말할 기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들이 유서를 남기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기운이 없어서라고,(98~100쪽)

3. 공부와 능동성

나를 포함한 적지 않은 선생들은 요즘 학생들이 점점 수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현상은 선생들에게서도 발견된다. 학생 시절로부터의 습관인지, 평교수들은 회의할 때 대개 학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는다. 외부 강연의 청중들도 마찬가지다. 팬클럽 회동이 아닌 다음에야 앞에서부터 앉는 경우는 드물다.

소극적인 혹은 수동적인 자세는 어쩌면 사려 깊은 태도의 한 측면일 수도 있다. 잘 익지 않은 주장을 섣불리 공개적으로 개진하기보다는 차분하게 남의 의견을 경청하겠다는 태도의 일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에는 두뇌와 체력에 못지않게 배우고자 하는 적극성 혹은 자발성이 중요하다. 똑같이 노력했어도 자발적인 자세로 공부에 임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는 실로 크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일을 몸에 익히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의견을 잘 표현하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체질 같은 건 없을지 몰라도, 공부해도 지식이 잘 안 찌는 체질은 있다. 자발성이 장착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렇다. 아무리 지식을 파먹어도 머리에 많은 것이 남지 않고 다시 밖으로 빠져 나간다.

자발성이 있는 사람, 스스로 동기부여를 잘하는 사람은 아무리 힘든 일도 거뜬히 해내곤 한다. 반면, 강요받으면 하고 싶은 일도 하기 싫어지는 법이다.(123~125쪽)

4. 독서란 무엇인가

책은 다른 매체보다 훨씬 더 독자에게 집중력과 몰입을 요구한다. 숨죽여 책에 집중해 있노라면, 세상이 고요해지고 독서가는 참평화를 얻는다.

책은 사회와 자아의 중간에 있다. 사회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독서에 몰입할 수도 있고, 자아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책의 내용은 언어로 되어 있고, 언어는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한다. 사회로부터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다가 거꾸로 소통을 위한 언어가 풍부해지는 역설이 독서 행위에 있다.

언어가 풍부해지면, 사회에 나가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더라도 작은 축제와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것저것 머리에 넣어두면, 그것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부딪히고 발효되어, 다채로운 상상을 일으킨다. 이처럼 지식과 정보가 자기들끼리 애정 행각을 하게 하려면, 일단 다독을 해야 한다. 다량의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풍부한 상상을 누리기는 어렵다.

다독을 한다는 것이 책을 대충 읽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독서가 마음속에 얼어붙어 있는 바다를 깨는 일이라고 했는데, 책을 대충 읽어서 얼음이 깨질 리가 있겠는가. 얼음을 가르려면, 정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책이 과연 제대로 날이 선 도끼란 말인가? 그것을 알려면 일단 어느 정도 다독을 할 수밖에 없다. 공 점유율이 높아야 골도 넣는 법. 책을 이것저것 오래 점유하고 있어야 정신의 날 선 도끼를 발견할 수 있다.

다독도 해야 하고 정독도 해야 한다니, 그걸 언제 다해요? 정독할 부분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만의 질문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문장들이 바로 정독할 부분들이다.

정독은 적어도 세 가지 종류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첫째, 그 책의 저자가 침묵하는 내용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책 내용을 근저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가정과 전제들을 재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셋째, 비판적 독해를 할 수 있어야 한다.(139~144쪽)

5. 자료 정리

한 개인이 공부할 때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잘 정리해두고, 자기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책상 앞에 앉는다고 필요한 자료가 생기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분석적 방법에만 의존하는 분야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공부 분야에서는 늘 관련 자료를 모으는 자세, 그리고 필요할 때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끔 정리해두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미 목록화되어 있고 인덱스로 정리되어 있는 자료의 경우에도 해당 자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려면 자기만의 목록과 인덱스를 만들 필요가 있다. 심지어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책 말미에 이미 제공된 인덱스가 있어도 실제 책을 읽어가며 자기만의 인덱스를 따로 만드는 것이 좋다.

이제 적지 않은 자료들이 물리적인 책이 아니라 파일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물리적인 자료를 축적할 필요가 있으며, 모은 물리적인 자료를 간수할 공간이 필요하다. 책을 사야 한다는 것은 그것을 간수할 공간까지 사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이 모은 자료를 물리적으로 잘 정리해서 비치할 수 있다면, 마치 자신의 뇌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서 효과적일 텐데, 그 정도 공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료와 책을 모아야 하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 자료의 구입이나 확보를 미루었다가 나중에 그 자료를 구할 수 없어 낭패를 본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자료를 모으게 된다. 모은 자료가 늘어나다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같은 책을 또 사는 일이 생긴다. 한 번 더 사는 정도야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자료를 효과적으로 정리하지 못해서 같은 책을 세 번 구하는 지경에 이르면, 깊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 뿐이랴. 분명히 구해놓은 자료인데도 찾을 수 없을 때의 그 괴로움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159~162쪽)

6. 비판의 덕성

활력 있는 학술의 장을 유지하려면 비판을 하는 사람이나 비판을 받는 사람 모두 일정한 덕성이 필요하다.

비판을 받는 사람의 경우 어떤 덕성이 필요할까? 일단 정당한 비판을 감내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그것은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의 표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비판을 감내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비판을 접하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비판을 수용하면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억지를 부려서라도 반론에 나서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 자체보다도 주장에 대한 비판에 대처하는 자세야말로 자신이 용렬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만천하에 드러낼 기회다. 결함으로 인해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그 결함을 인정할 때뿐이다.

비판을 하는 사람은 어떤 덕성이 필요한가. 첫째, 상대 주장의 약점보다는 강점과 마주하여 비판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상대의 핵심 주장에 강점이 있음에도 상대가 보인 약점에 탐닉한 나머지 그것을 상대의 ‘본질’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하수들일수록 상대의 하찮은 약점에 탐닉한다.

둘째, 비판을 불필요하게 길게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자신의 평소 입장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것은 금물이다. 주인공은 당신의 비판이 아니라 상대의 발표다. 특히 시간이 한정된 발표회장에서는 간명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셋째,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언사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작업에 대한 평가와 작업자에 대한 평가를 가능한 한 구분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도 건설적인 비판과 인신공격적인 비판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자신의 주장이나 비판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 활자화된 주장은 똑똑함이나 멍청함을 대대로 홍보하는 최고의 수단이니, 언젠가는 자신의 똑똑함이나 멍청함을 제대로 이해해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209~214쪽)

이 책에는 공부에 임하는 자세, 책 읽는 법, 서평쓰는 법, 자료 정리법, 질문하는 법, 주제 설정, 연구 계획서 쓰는 법, 비판하는 법, 토론의 기술, 사회의 기술, 발제하는 법, 세미나를 즐기는 법 등 공부에 필요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공부 방법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