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이야기】 IC와 AC의 싸움
【생사이야기】 IC와 AC의 싸움
  • 김영조 기자
  • 승인 2023.07.01 08:5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영웅이냐 황영웅이냐 의견 충돌
차이를 서로 수용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
나이 들수록 자존심은 죽이고 자존감은 살리자

아내와 함께 자동차를 몰고 근교로 나들이 간다.

경치도 즐기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시골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기분이 좋아진 아내가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튼다,

아내는 최근 부쩍 황영웅 노래에 빠져 있다.

그의 노래 모음곡만 듣는가 하면 ‘미운사랑’은 반복 모드로 듣는다.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 것을~”

이 부분이 너무 멋있고 가슴이 찡하다며 너스레를 뜬다.

“나훈아 이후 최고의 가수야. 완전 나의 짱이야.”

괜히 질투심과 반감이 일어난다.

“그건 아닌데. 당신, 어제같이 임영웅이 최고라고 하더니 그새 변심했네. 황영웅보다는 임영웅이 더 낫지. 임영웅 노래로 틀어줘.”

아내가 기분 나쁜 듯 한마디 쏜다.

“아이씨(IC), 임영웅보다는 황영웅이 훨씬 낫단 말이야, 임영웅은 이제 싫어.”

이에 질세라 나도 맞대응하여 한마디 내뱉는다.

“에이씨(AC), 황영웅은 학폭 가해자야. 임영웅은 선행하는 친구고.”

아이씨, 에이씨가 욕인지 불평 표시인지를 두고 시비가 벌어지고,

이어 인격과 자존심 관련 얘기가 대두되고,

과거사 문제까지 동원되면서 전선은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되었다.

임영웅(좌측)과 황영웅(우측)의 등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팬덤으로 만들면서 트로트 가요계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임영웅(좌측)과 황영웅(우측)의 등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팬덤으로 만들면서 트로트 가요계에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 항몽유적지를 돌아보며 김통정, 김방경이라는 두 영웅에 관해 시비를 벌인 적이 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여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를 결정하였을 때이다.

삼별초 지휘관 김통정은 이에 불복하고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후퇴하여 성을 쌓고 저항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자결했다.

반대로 김방경은 여몽연합군을 이끌고 삼별초군을 토벌한 고려의 명장이다.

두 장수 중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

독립·자주를 외치며 외세의 압력에 죽음으로 저항한 김통정이냐.

국가에 충성하고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시대의 충신 김방경이냐.

나는 김통정에 한 표, 아내는 김방경에 한 표를 던지면서 시비가 벌어졌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 때 삼별초의 호국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웠다(전면의 제자(題字)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그렇다고 김방경 장군의 애국 충정의 정신이 경시될 수는 없다. 사진 김영조 기자
1977년 박정희 대통령 때 삼별초의 호국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항몽순의비(抗蒙殉義碑)를 세웠다(전면의 제자(題字)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그렇다고 김방경 장군의 애국 충정의 정신이 경시될 수는 없다. 사진 김영조 기자

조그마한 의견 차이가 시비가 되고, 시비가 다시 싸움으로 발전하며, 싸움이 커지면 돌이킬 수 없는 극한 형국으로까지 번진다.

취향이나 의견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고음에 달콤한 목소리의 임영웅을 좋아하든 저음에 애잔한 목소리의 황영웅을 좋아하든 그건 취향의 문제이다.

시비 걸지 말고 그냥 두 영웅 다 노래 잘하는 가수라고 수용하고 넘어갔어야 했다.

김통정을 추앙하던 김방경을 존경하던 그건 의견의 차이이다.

다투지 말고 두 분 다 훌륭한 일을 한 분들이라고 인정하고 끝냈어야 했다.

자존심을 앞세워 끝까지 자기 의견이 옳다고 우기면 시비는 더 큰 싸움으로 번진다.

가장이고 남편인데 감히 반대하다니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다.

남자로서의 체면과 품격을 지키기 위해 참아야지 하는 것은 자존감의 문제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존심은 죽이고 자존감은 살려야겠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