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이야기] 임금의 자리
[생사 이야기] 임금의 자리
  • 김영조 기자
  • 승인 2023.06.15 21:41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금의 자리만큼 임금의 고민도 큰 것
권력이고 신분이고 다 부질없는 짓
소시민의 자유로운 삶이 행복한 것

버스를 탄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버스다.

기사가 반가운 듯 인사한다.

“어서오세요”

“예, 안녕하세요”

내 편한 대로 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 좋다.

제일 뒷좌석으로 가서 앉았다.

발을 마음대로 뻗을 수 있으니 편하기 그지없다.

버스 내부가 한눈에 들어오니 전망도 최고다.

기사 혼자 열심히 일을 한다.

나는 반쯤 누운 자세로 편안히 앉아 그냥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생각하니 내가 임금이 된 기분이다.

기사는 시종(侍從)이다.

시종과 임금의 앉은 거리도 신분 차이만큼 끝과 끝이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시종은 임금의 마음을 알아서 모신다.

하긴 옛날의 임금들이야 이런 큰 자동차를 타보기라도 했겠나.

기껏 가마 아니면 마차 정도였으니 지금의 나는 얼마나 대단한 존재야.

임금이 타고 있는 것을 아는지 한참을 가도 백성들이 접근을 않는다.

왠지 심심하다.

자리를 중간으로 옮겨보았다.

차창 밖으로 백성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초등학생이 힘에 겨운 큰 가방을 메고 간다.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무거운 짐이라 생각하니 대견스럽다.

임금이 지나간다고 미화원이 열심히 길을 청소하고 있다.

모두가 착한 내 나라 백성들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행복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나이 많은 한 할머니가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간다.

더운 날씨에 구부정한 몸이 불편해 보인다.

저 나이에 왜 길거리에 나와 고생하지.

돌봐줄 남편이나 자식이 없나.

그러면 나라에서라도 보살펴줘야지.

노인 취업률 세계 1위, 노인 빈곤율 세계 1위의 오명을 벗겨줄 해법은 없는가.
노인 취업률 세계 1위, 노인 빈곤율 세계 1위의 오명을 벗겨줄 해법은 없는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자기 책임이냐 나라 책임이냐.

자기가 노력하지 않아 가난한 것이니 자기 책임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도리가 없으니 나라 책임이야.

따져 물으려니 머리부터 아프다.

이걸 해결하라고 앉혀놓은 신하 놈들은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맨날 이념 싸움이나 하고 있다.

나라에서 도와주려니 반(反)자본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포퓰리즘이라 욕하고,

도와주지 않으려니 반(反)인권적이고 기득권 꼴통의 이기적 행태라고 시비를 건다.

신하는 신하고 임금이라는 나는 또 뭐냐.

나에게는 이를 해결할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다.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

차라리 임금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다음 정류소에서 조용히 내렸다.

임금의 자리는 여기까지이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권력이고 신분이고 다 부질없는 짓이다.

그냥 자유로운 소시민으로 소탈하게 살아가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