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김하연 '시간을 건너는 집'
[장서 산책] 김하연 '시간을 건너는 집'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12.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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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간을 지우고 다른 시간으로 갈 수 있다면,
당신은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느 시간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 책은 '특별한서재'에서 발행하는 '특서 청소년문학' 17번째 책이다. 지은이 김하연은 프랑스 리옹3대학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장편동화를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능력자들>시리즈, <똥 학교는 싫어요!> 등이 있다.

이 소설은 고등학생 선미가 학교에 가기 위해 신발장에 든 하얀 운동화를 신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파란색 대문이 있는 집 앞에서 이상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그 집에 잠깐 들어갔다가 가라고 하지만 선미는 거절한다. 할머니는 금요일 다섯 시에 꼭 오라고 하면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금요일 오후에 선미는 이상한 집에 가서 먼저 와 있던 강민, 자영, 이수를 만난다. 강민은 고등학생, 자영과 이수는 중학생이다. 할머니와 함께 그 집을 관리하는 오십 대 후반의 남자가 나타나서 4명의 아이들을 이상한 집에 부른 이유와 지켜야 할 일을 말해준다.

"이 집은 하얀 운동화를 신은 아이에게만 보이고, 당연히 그 운동화를 신은 아이만 들어올 수 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오후 다섯 시, 너희는 한 명씩 2층으로 올라가서 세 개의 문 앞에 선다. 하나는 과거의 문, 하나는 미래의 문, 하나는 현재의 문이야. 문을 선택하면 그 시간대로 갈 수 있다. 미래의 문이나 과거의 문을 선택하면 5년 이내의 과거나 미래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너희가 지켜야 할 규칙이 몇 가지 있다. 첫째, 그 누구에게도 이 집과 하얀 운동화에 대해 말해서는 안 돼. 둘째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 집에 나와야 해. 셋째, 미래로 가든 과거로 가든 '죽음'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 12월 31일에 너희가 문 하나를 선택해 들어가는 순간, 이 집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진다."(43~46쪽)

아이들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상한 집(시간의 집)에 모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선미는 췌장암 말기인 어머니를 살리기를 원하고, 자영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다. 이수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안고 어머니와 살고 있고, 강민은 두 번째로 초대되었다.

기댈 곳이 없어 홀로 버텨왔던 아이들은 시간의 집에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 간다. 그러나 선택의 날을 앞둔 어느 날, 이수는 학교 폭력을 당하는 자영을 도우려 나섰다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예기치 못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야기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과연 아이들은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선택의 날, 각자 어떤 문을 선택하게 될까?

저자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낡은 구두 한 켤레를 그린 그림 밑에 적힌 '이 구두를 신으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중 한 곳을 선택해 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시겠습니까?'라는 글을 보고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 여행에 관한 소설은 많지만, 이 소설은 시간 여행 그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지는 않다. 4명의 아이들이 시간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8월부터 문을 선택하는 12월까지 서로가 겪고 있는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간의 집이 4명의 아이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었던 것은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가 아니라 같이 지내면서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행복'이었다.

인생길은 한 길이 아니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의 연속으로 이어진 외길이다. 외길은 어떤 길이 더 나은지, 돌아가 비교해 볼 다른 삶이란 애초에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한계에 묶여 있어도 인간은 '다시 한번만'이라는 꿈을 꾼다. 그것은 주로 공상, 몽상, 상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책은 '다시 한번만'이라는 문학의 꿈, 꿈의 문학, 인간의 꿈에 대한 소설이다.(뒷표지, 문학평론가 박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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