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오세진 '흔들리는 나를 위한 1일 1철학'
[장서 산책] 오세진 '흔들리는 나를 위한 1일 1철학'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10.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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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하루 한 마디 지혜의 말

저자 오세진은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전 다산학사전팀 보조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한국고등교육재단 한학 연수 과정을 수료했다. 조선과 중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관련 서적을 번역하고 강의하고 있다.

이 책은 동양철학의 진수를 담은 문헌에서 추려낸 365개의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동양고전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뽑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의 출전과 원문, 역사적 배경과 해설을 엮어 누구라도 쉽게 그 배경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동양철학의 심오한 세계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굵직한 이름을 남긴 영웅호걸은 물론이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체험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될 것이다. 각 장에서 처음 나오는 어구와 그 해설을 살펴보기로 한다.

 

1장; 시작 - 내 인생은 나의 것

천리지행 시어족하(千里之行 始於足下) :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과 같다.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며 작은 것이 쌓여야 큰 것을 이루게 된다는 뜻.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싹에서부터 생겨나고, 높은 누대도 흙을 쌓아올려야 세워지며,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법이다(千里之行 始於足下). 억지로 하려는 자는 실패할 것이고 집착하는 자는 잃게 될 것이다. 성인은 억지로 하지 않기에 실패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기에 잃을 것이 없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2장; 난관 - 모든 실패는 경험이다

백절불요(百折不撓) : 백 번을 꺾여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는다는 뜻. 후한의 학자 채옹(蔡邕)이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 교현의 비문에 '백번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았고(百折不撓), 큰 절개에 임해서는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다'고 쓴 데서 유래된 말이다. <태위교공비(太尉橋公碑)>

 

3장; 도전 - 원하면 간절해져라

건곤일척(乾坤一擲) : 흥망과 성패를 걸고 마지막으로 벌이는 단판 싸움. 당나라 때의 문장가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가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벌인 홍구에서의 최후 결전을 회상하면서 지은 시에 등장하는 말이다. "용은 지치고 범도 피곤하여 강과 들을 나누어 가지니, 그로 인해 억조창생의 목숨이 살아남게 되었네. 누가 임금에게 말머리를 돌리게 하여 진정한 건곤일척(乾坤一擲) 승부를 겨루게 했나." <과홍구(過鴻溝)>

 

4장; 인내 - 치열하게 버티는 당신에게

사이후이(死而後已) : 죽어야 멈춘다. 죽을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라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말했다. "선비의 뜻은 크고 의지가 강인해야 하니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을 자신의 평생의 임무로 삼으니 또한 책임이 무겁지 않은가. 이 모든 일은 죽은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니(死而後已), 또한 갈 길이 멀지 않은가." <논어(論語)>

 

5장; 성장 - 마침내 해낸 당신에게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끈기 있게 노력하면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 이백이 소년시절에 중도에 학문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물가에 있는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는데, 연유를 물어보니 바늘을 만들기 위해 그런다는 것이었다. 노파의 끈기와 노력에 감명을 받은 이백은 그길로 다시 산으로 돌아가 학문에 매진하게 되었다. <방여승람(方與勝覽)>

 

6장; 내일 - 또 다른 시작을 위해

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는다. 군자는 도량이 넓어 무엇이든 두루 포용한다는 뜻. 진나라의 이사는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진나라 승상 여불위의 가신으로 있다가 임금의 눈에 들어 객경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당시 진나라에는 타국 출신 빈객이나 관리들이 작은 세력을 얻고 함부로 설쳐 부작용이 많았는데, 이에 진나라 출신 신하들이 이들을 축출하자는 의견이 분분해졌고, 여기에 이사도 포함되었다. 그러자 이사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높을 수 있으며(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하해는 작은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았으므로 그 깊음에 이른 것입니다(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진나라가 아무 제한 없이 타국 출신 인재들을 품어야 더 큰 대국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담은 상소문을 읽고 임금은 전처럼 누구라도 진나라에서 살도록 했다.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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