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장서 산책]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10.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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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침내 재건하는 사람들의 마음

<지구 끝의 온실>은 2017년에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초엽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한 '더스트 시대'와 '재건 후의 지구'다.

1-1. 더스트생태연구센터 연구원 정아영은 서기 2129년 3월 2일, 강원도 해월 폐기 구역에서 이상 증식하고 있는 유해 잡초 모스바나를 분석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윤재와 함께 해월에 간 아영은 모스바나가 밤에 푸른 빛을 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 시절 온유에서 만난 이희수의 정원에서 자라던 덩굴식물에서 푸른 빛을 본 기억을 떠올린다.

'스트레인지 테일즈'에 악마의 식물(모스바나)에 대한 글을 올린 아영은 재건 60주년 기념 생태학 국제 심포지엄이 열린 아디스아바바에서 '푸른 빛이 나는 덩굴'의 제보자 루단을 만난다. 아영은 루단의 소개로 '랑가노의 마녀들'인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를 만난다.

1-2. 아내와 함께 매일 산책하는 금호강 산책로 옆에는 귀화한 덩굴식물인 '가시박'이 강언덕과 단애를 온통 뒤덮고 있다. 성장 속도는 '칡'보다 더 빠른 것 같다. 넓은 면적에 걸쳐 빽빽이 자라고 거의 10미터 가까이 되는 단애를 기어올라 관목과 교목, 다른 잡초를 뒤덮는다.

50년 혹은 100년 후의 식물 생태계를 상상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가시박이 진화를 계속하면 모스바나처럼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자가 증식하는 더스트를 무력화시킬 정도라면 혹독한 기후 변화에 적응했을 것이고, 사람이나 동물이 접근할 수 없도록 가시와 갈퀴를 가진 식물로 진화했을 것이다. 화학을 전공한 작가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식물의 생태를 실감있게 표현하여 100년 후의 세상을 눈 앞에 보는 것처럼 그리고 있다.

2-1. 내성종 사냥꾼들에게 쫓기던 나오미와 아마라는 호버카와 맞바꾼 좌표를 찾아 숲속을 헤매다가 프림 빌리지를 만난다. 프림 빌리지는 마을을 지키는 지수와 온실에서 새로운 식물을 개발하는 레이첼에 의해 운영되는 마을공동체로 돔 없는 자연 상태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생활한다.

다가오는 더스트 폭풍에서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지수는 레이첼이 재배한 모스바나를 숲 주위에 심고, 무서운 속도로 자란 모스바나는 더스트로부터 마을을 구한다. 그러나 계속 성장하는 모스바나가 마을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외부의 침입자들이 늘어나면서 지수는 마을공동체를 해체한다. 마을 사람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가는 곳마다 모스바나를 심을 것을 약속한다.

2-2. 작가는 인류의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그리고 있다.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7편의 단편 중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도 지구를 디스토피아로 그리고 있어서, 작가는 인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기후 이변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의 지구를 생각하면 서기 2050년 경에는 공기 중의 먼지가 자가 증식하여 인류를 공격하는 더스트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지구를 황폐화 시키기보다는 지구를 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작가가 그리고 있는 끔찍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3-1. 아영은 이희수가 지낸 마지막 요양원에서 이희수가 남긴 다목적 기억칩을 건네 받는다. 다목적 기억칩에는 프림 빌리지에서 생활한 기계정비사 이지수와 사이보그 레이첼의 생활, 둘 사이의 갈등과 지수에 대한 레이첼의 감정 변화가 담겨 있었다. 서로 사랑했지만 사소한 오해로 헤어진 지수와 레이첼은 끝내 만나지 못하고, 아영은 문명 재건 육십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에서 레이첼을 만난다.

아영은 나오미와 레이첼의 연구를 종합하여 더스트 종식의 원인을 밝힌다. 더스트는 '더스트대응협의회'에 의해 2064년에 시작되어 2070년 5월에 완전 종식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보다 앞선 2060년부터 더스트 농도 1차 감소가 있었다. 이 1차 감소의 원인은 프림 빌리지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모스바나를 심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프림 빌리지에서의 작은 약속이 인류의 멸망을 구한 계기가 되었다.

3-2. 지구의 종말에서 인류를 구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대개 영웅의 뛰어난 능력이나 첨단 무기, 과학의 힘에 의해서다. 그에 반해 이 소설은 지구의 멸망을 구하는 식물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남다른 상상력으로 영웅이 아닌 식물학자와 소시민들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이름 모를 식물이 인류 구원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산림교육원에서 4박 5일간 연수를 받으면서 식물의 생태와 우리 생활에서 식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 지금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열대 식물을 기르고, 시골 고향집 마당에서도 꽃나무를 기른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기르는 식물이 인류의 멸망을 구해 줄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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