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산뉘하이Kit '산이 좋아졌어'
[장서 산책] 산뉘하이Kit '산이 좋아졌어'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11.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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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에서 산 덕후가 된 등산 러버의 산행 에세이

저자 산뉘하이Kit는 타이베이 사람, 낮은 산 중독자. 필명 산뉘하이는 '산의 아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사찰이 많은 지역에서 자랐다. 수영장이 아니면 도서관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아서 늘 둘 중 한 곳에서 어머니에게 발견되곤 했다. 직장인이 되면서부터는 걷기를 즐기게 되었고, 하루키를 쫓아 하와이까지 가서 인생 첫 마라톤을 완주했다. 산에 오르면서부터는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매일 아침 7시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걷고 쓰는 삶을 살고 있으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산과 사랑에 빠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소중한 순간을 나누고 있다.

옮긴이 이지희는 건국대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육대학원에서 중국어교육을 전공했다. 베이징, 상하이, 다렌 등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번역집단 실크로드에서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차례는 '여는 글: 산으로 걸어가 보기를, 01. 첫 일출을 본 순간부터, 02. 조금 괴로워도 무리가 되더라도, 03. 함께 오르는 산, 04. 산과 나 사이, 닫는 글: 오래도록 산과 함께할 수 있기를'로 되어 있다.

저자는 2014년 이전에는 풀코스 마라톤 선수였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2015년 9월에 생애 처음으로 산으로 향했다. 이 책은 그 후 4년 동안 저자가 산을 오르면서 겪은 일과, 만난 사람, 산길을 걷거나 캠핑을 하면서 느낀 생각 등을 기록한 에세이다.

 

1. 타이완의 산

저자가 사는 타이완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이 있고, 3,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 268개나 자리하고 있다. 타이완의 100대 명산을 '백악'이라고 부르며, 위산, 쉐산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아리산, 단란고도, 황진스렁, 위안쭈이산, 하펀고도, 구관치슝 같은 하루에 왕복 가능한 하이킹 코스나 소백악(작은 백악)은 혼자 걷기에 제격인 산이다. 타이베이에서 1시간만 운전하면 이런 산들의 입구에 닿을 수 있어서 저자는 주말이면 마치 친한 친구들을 만나러 가듯 산으로 향했다.

 

2. 중양젠

트레커들 사이에서 난이도 9.5로 분류되는 중양젠의 해발고도는 3,705미터로, 타이완 3대 뾰족산 중 으뜸이다. 남쪽은 무너져 내리는 험준한 절벽에, 북쪽 역시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이다. 칼날처럼 뾰족한 원뿔 형태이며, 타이완 '백악' 중에서도 11위에 해당한다. 숲길, 계곡 길, 암벽, 자갈 비탈길 등 각종 지형을 한 번에 모두 체험해 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그야말로 중양산맥에서 최고로 험난한, 가장 눈에 띄는 산이라고 할 수 있다.(059쪽) 저자는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서 중양젠의 전모를 엿본다.

 

3. 포카라행 비행기

포카라는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안나푸르나 산맥을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집결해 머무는 도시로, 웅장한 히말라야 산맥과 아름다운 산중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도착한 다음 날, 기상 악화로 시야 확보가 어려운 탓에 아침 7시에 포카라로 향하는 비행기부터 줄줄이 연발되었다. (...) 그러다 결국 비행기가 취소될까? 걱정 마시라. 네팔 공항은 곧 모든 번거로운 절차 따위는 단번에 건너뛰니까. 우리는 그저 카운터에서 '포카라, 포카라 탑승합니다.'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모든 여행객이 그게 몇 시 비행기든 또 손에 쥐고 있는 땀에 절은 종잇조각의 항공편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모두 함께 타고 포카라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낭만이 가득한 한 편의 시 같은 출발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085~086쪽)

 

4. 존 뮤어 트레일

타이완에서는 일년 내내 거의 눈을 볼 수 없다. 2019년 폭설이 내린 그해에 존 뮤어 트레일(미국 요세미티 산맥에서 시작해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거쳐 미국 최고봉인 휘트니 산에 이르는, '걷는 자의 꿈'이라고 불리는 358킬로미터의 하이킹 코스)의 모든 구간에도 눈이 내렸다. (...) 장기간에 걸쳐 눈길을 걸으며 과거에 익숙한 시선처리법과 보행법, 호흡법을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꿔야 했다. 몸의 효율은 최대한 높이고 신경은 바싹 곤두세워야 했다. 그렇게 야영지에 도착하자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하루12시간이 넘는 행군이 드디어 끝이 났다. (...) 나는 존 뮤어 트레일의 폐를 찌르는 듯한 얼어붙은 공기와 숨을 쉴 때마다 침낭에 맺히는 얇은 서리,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배낭의 무게가 사무치게 그립다.(103~106쪽)

 

5. 자밍호수

해발 3,300미터의 자밍호수는 중양산맥 남쪽 두 번째 구간의 남쪽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타이둥과 가오슝, 화렌이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자밍호수는 직경이 200미터에서 330미터까지 변화하며, 깊이는 35미터에 이르는 타원형의 고산호수다.(210쪽) (...)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자밍호수에서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당신을 잃은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당신은 예전 그대로 내 곁에 나타났다. 내가 '엄마'라고 부르기만 하면 당신은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의 존재를 느끼게 만들었다.(216~217쪽)

 

6. 산을 찾는 이유

비록 말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인터뷰를 할 때면 내가 왜 배낭을 메고 산으로 걸어 들어갔는지 최선을 다해 나누곤 한다. 맨 처음 산에 오른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나처럼 평범한 직장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도 아니고, 정확한 방향 감각을 갖추어야만 검은 숲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산과 함께 걷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산은 언제든 당신을 산에 머물게 할 것이다.(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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