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족] 한지붕 아래 3代, 한궁 즐기며 가족 화합
[그래도 가족] 한지붕 아래 3代, 한궁 즐기며 가족 화합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3.04.27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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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양옥에 삼대 모여 생활
역할 분담 통해 존중하며 배려
한 달에 한 번 외식과 한궁대회가 큰 자랑
가족회의 통해 대화 나누며 갈등 해소

 

한궁 심판 자격증을 가진 권 씨의 지도로 진행하는 가족한궁대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봉정사 자락에 자리 잡은 권점덕(77) 씨네 가족을 찾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여덟 명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천년고찰로 잘 알려진 봉정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조립식 2층 양옥이 보인다. 들어가는 길모퉁이에는 알록달록 봄꽃이 잘 가꿔져 있다. ‘그녀의 홈 카페’란 이름으로 자리한 찻집. 삼대가 함께 모여 사는 곳. 권 씨의 아들이 운영하는 ‘예선아빠농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옹기종기 삼대가 살기까지

마을 경로당 회장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권점덕 씨는 여기가 고향이다. 월남참전용사로 결혼하며 대구로 나가서, 장사를 통해 수입을 올리고 제법 생활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35살에 갑자기 위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당시 너무 막막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고 권 씨는 얘기한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후유증을 견디며 떠오른 것이 ‘귀향’이었다.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최 씨의 아내는 직업간병인으로 나섰다. 남편을 돌보며 익힌 경험으로 틈틈이 시내병원에서 활동하다, 아예 자격증을 따서 전문 요양보호사로 자리 잡았다. 요양원에서도 세심하게 배려하는 요양보호사로 평판이 좋았다. 그렇게 다시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찾아온 아들이 갑자기 ‘귀촌 선언’을 했다. 권 씨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취업하기도 힘들다는데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것도 승진을 눈앞에 두고. 더군다나 따린 식솔이 얼마인가. 처음엔 간곡히 만류도 하고 으름장을 놓고 달래기도 했지만, 끝내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밀고 당기는 삼 년의 시간이 흐르고, 권 씨도 마침내 아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때가 10년 전이라며, 이렇게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았으면 진작 허락할 걸 그랬다면 권 씨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삼대가 사는 이야기

아들이 정착할 당시 손자가 넷이었다. 막내가 3살, 맏이가 9살. 아들은 4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더 좋은 환경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정해진 월급만으로는 네 아이를 키우기에 빠듯하고, 무엇보다 도시의 번잡한 환경보다 아버지가 계시는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고 한다.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오면서 우선 조립식 2층 양옥을 지었다. 2층에는 부모님이 거주하고 아래층엔 여섯 식구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한집이지만 1층과 2층의 분리를 통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도록 배려하였다. 그것이 한 지붕 두 가구의 시작이었다.

아들은 그동안 구상한 사업을 시작했다. 벌초 대행업과 비옥한 토양에로 생강 농사를 시작하고, 생산된 생강으로 생강청을 만들기 위해 공장을 세웠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아들은 점차 사업가로서 자리 잡아 나갔다. 이제 아들은 지역에서 서로 모셔 가려 하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성공한 모범 귀농인으로 농민후계자들과 귀농인들을 상대로 강의와 스마트 폰 교육, 농산물 판로를 위한 직거래 소개, 거기에 대학 강의까지 맡고 한다. 포털에 ‘예선아빠농장’을 검색하면 된다고 은근히 권 씨는 아들 자랑이다.

 

삼대가 모여 살아 더 행복하다고 하는 권점덕 씨 가족
삼대가 모여 살아 더 행복하다고 하는 권점덕 씨 가족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손자들은 낯선 시골생활에 정을 붙이기 힘들어했다. 또 떨어져 살던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온 가족이 모여 회의했다. 그리고 지켜야 할 일을 정했다.

우선 가족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다. 또 며느리에게도 자기 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작은 찻집을 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그녀의 홈 카페’다. 며느리는 “찻집은 자신의 일터”라며, “아이들 학교 보내고 찻집의 문을 여는 그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권 씨의 아내와 아들은 아침이면 생강 가공 공장으로 출근하고, 이제 초·중·고에 다니는 네 명의 손자도 제각기 분담한 집안일을 한다. 큰아이들은 어머니의 찻집에서 빵 만드는 일을 거들기도 한다. 첫째는 빵 만드는 솜씨가 제법이다. 주말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가족 놀이를 하고 이어서 가족회의를 연다. 한 달에 한 번은 가까운 곳으로 나가 외식을 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기자가 방문한 토요일은 ‘가족 한궁대회’가 열렸다. 한궁 2급 심판과 지도자 자격을 소지한 권 씨의 지도로 3대가 함께하는 한궁을 통해 웃음꽃이 만발했다. 핀이 한궁 판에 꽂힐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작은 손자는 “한궁을 하면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얘기한다. 찻집 사장인 권 씨의 며느리는 “한궁이 집중을 필요로 하므로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가족 화합 스포츠로 제격이라”고 한다.

며느리의 일터인 ‘그녀의 홈 카페’
며느리의 일터인 ‘그녀의 홈 카페’

이어지는 가족회의에서는 한 주 동안 있었던 이야기와 설거지가 깨끗하지 못했다는 얘기부터 누구는 ‘자기 밥그릇 치우기’가 잘 안되었다는 지적까지. 서로 감정을 털어놓고 구김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에서 삼대가 함께 사는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가정은 ‘작은 사회’라 한다.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 한 사람마다 인격체로 존중받고 건강할 때 우리 사회도 건강해진다. 삼대가 사는 권 씨 대가족은 현대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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