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출산 줄며 해체 가속화
정서적 안정 찾는 중요 공간
사회 전체가 가족 지원 절실
MBC ‘전원일기’는 우리나라에서 최장수 방영 기록을 세운 TV 드라마다. 1980년 10월 첫 방송을 시작해 2002년 12월까지 22년 2개월 동안 1천88회가 방영됐다. 농촌을 배경으로 변화하는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줬다. 최불암·김혜자 부부의 김 회장 집을 중심으로 가족과 이웃 간의 이야기를 훈훈하게 풀어냈다. 이 드라마는 농촌을 떠나 도시민이 된 사람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산업화로 핵가족 중심이 된 현대 생활의 헛헛함을 달래주었다.
최근 드라마 속 가족은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삼대가 함께 생활하는 대가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편모·편부 가족이나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가족 관계는 ‘따뜻한 유대’보다 ‘차가운 반목’으로 그려진다. 그야말로 우리는 가족 소멸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의 ‘요람’인 가족의 소중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가족의 달’인 5월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결혼과 아이가 사라지는 시대
가족의 시작은 결혼과 출산에서 비롯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남녀가 한 쌍을 이뤄 가정을 꾸리고, 둘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면 두 세대가 함께 생활하는 가족이 된다. 여기에 조부모까지 더해 대가족이라고 한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시작해 산업화와 정보화를 거치면서 가족은 대가족이서 핵가족으로, 이제는 1인 가구로 점점 가족이 축소되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혼인건수는 1981년 통계 조사 이후 1996년 2만1천537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감했다. 지난해는 7천497건에 불과했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경북은 1981년 3만7천569건에서 지난해 8천180건으로 더 큰 폭으로 줄었다.
대구의 1천 명당 혼인율은 대구의 경우 2000년 6.4에서 지난해 3.7로 급감했고, 같은 기간 경북은 6.1에서 3.1로 반 토막이 났다.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결혼하는 비율도 낮아지면서 갈수록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는 흐름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태어나는 아이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구의 출생아 수는 1995년 3만8천779명까지 늘었다가 지난해1만100명까지 줄었다. 경북은 더 심각하다. 1981년 7만718명이 태어나다가, 지난해는 1만1천300명까지 감소했다. 대구와 경북을 다 합쳐도 출생아가 한 해 3만 명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전국 통계에 따르며 2021년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는 2.3명인데, 이는 2000년 3.1명에서 1명가량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3인 이상 가구 비중은 65.4%에서 38.2%로 축소됐다. 반면 1인 가구 비중은 15.5%에서 33.4%로 확대됐다. 가족과 함께 어울려서 사는 사람은 줄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비율은 2010년 64.7%에서 지난해 50%로 감소했다. 2명 중 1명은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결과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2018년 69.6%에서 지난해 65.3%로 낮아졌다. 1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자녀 필요성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가족, 그래도 다시 한 번
가족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은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래서 대화형 인공지능(AI)인 ‘ChatGPT’에서 가족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요청했다. ChatGPT는 다음과 같은 단어를 제시했다. 바로 보호, 사랑, 성장, 소중함, 소통, 신뢰, 안전, 안정, 애정, 유대감, 이해, 지지, 책임, 평화, 협력, 환대, 희열 등이다. 책임과 부담이 있지만 보호와 안정, 지지와 이해처럼 정신·물질적으로 얻는 것이 많다.
사회학적 가족의 기능으로 사회화와 안정성, 발전과 성장, 문화 전달, 경제적 지원 등이 손꼽힌다. 가족은 청소년이 사회적 역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디딤돌이 된다. 또 정서적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마지막까지 자기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인 것이다. 또 문화적으로 그 시대의 가치관과 전통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학업과 취업 등 성인으로 거듭나기까지 경제적인 뒷받침과 보호를 제공한다.
아프리카 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가족의 근간인 결혼과 출산, 육아를 위해 지역 사회 전체가 나서야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 정부와 지방자체단체는 각종 정책을 통해 가족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난임 부부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기존에는 소득에 따라 지원을 했지만, 이제는 소득에 관계없이 체외수정과 인공수정 시술비 등 본인부담금을 지원한다. 또 산모와 신생아 건강관리를 위해 소득이나 출생 순위와 무관하게 방문 산후조리와 신생아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미혼남녀 만남 이벤트를 열고, 또 실속형 결혼 문화 확산을 위해 작은 결혼식을 지원한다. 신혼부부에겐 전세자금 대출이자를 지원해 주거비 부담을 낮춘다. 결혼과 출산, 양육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유아차 걷기 캠페인과 출산장려 사진 공모전, 새 생명 축제 등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한다.
이규호 대구대 아동가정복지학과 교수는 가족 해체가 가져올 여러 사회·정서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족 해체는 좁게는 이혼부터 넓게는 만혼과 비혼 등 가족 형성이 지체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는 저출산과 노인 부양문제뿐만 아니라 가족 내에서 개인이 겪는 심리적 문제까지 유발한다.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정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비롯해 가족이 돌봄 기능을 하도록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나아가 청소년은 물론 홀몸노인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 등 경제적 지원뿐만이 아니라 취미활동과 사회적 교류, 심리 상담 등 전반적인 사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광호 기자 kozm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