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를 대상으로 한 어느 강의 시간, 교수가 한 여성에게 칠판에 아주 절친한 사람 20명의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그녀는 가족, 이웃, 친구, 친척 등 20명의 이름을 적었다. 이어서 교수는 이 중 덜 친한 사람의 이름을 지우라고 했다. 가장 먼저 그녀는 이웃의 이름을 지웠고 교수는 다시 한 사람씩 이름을 지우라고 했다. 그렇게 회사 동료, 친구, 이웃 등 많은 사람의 이름이 지워졌고 드디어 부모와 남편 그리고 아이 네 사람만 남았다. 교수는 다시 한 명을 지우라고 했는데 그녀는 망설이다가 부모의 이름을 지웠다. 또다시 지워야 할 때, 그녀는 한참을 고민 끝에 각오한 듯이 아이의 이름을 지웠다. 그리곤 펑펑 울기 시작했고 교수가 그녀에게 "남편을 지우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시간이 흐르면 부모님은 세상을 떠날 것이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가정을 만들어서 나를 떠날 것입니다. 일생을 함께 지낼 사람은 남편뿐입니다."
떠도는 인터넷의 이야기를 옮겨 보았다. 흔히들 진정한 친구 1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하는데 부부는 친구 이상의 의미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먼 미래를 향해 여정을 떠나는 배와 같다. ‘인생이란 강물 위에 부부란 배 띄워놓고 두 마음 하나로 꽁꽁 묶어서 세월을 저어갑니다 ...’가수 나훈아의 ‘천생연분’이란 노랫말의 일부분이다. 때로는 등대가 되어주고, 돛도 되어주며 그렇게 의지하며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것이 부부 관계다. ‘탈무드’에서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젊을 때 결혼하여 살아온 배우자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사회는 너무 변했다. 유교문화의 두꺼운 그늘 속에서 우리나라 전통적 가부장문화는 사라졌다.
고분고분하고 순박하며 시어머니, 시누이를 무서워하고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던 효부, 효녀시대는 옛 전설이 되었다. 노령 인구의 비율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이웃나라 일본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더니 여성은 남편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사망률이 두 배 더 높았고 남성은 부인 있는 쪽이 더 오래 살았다는 조사 결과를 보았다. 이는 늙은 남편이 아내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여성의 72%가 늙은 남편이 부담스럽다는 여론조사 발표를 보았다. 이제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중년, 노부부의 이혼이 해를 더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황혼이혼은 100세 시대를 맞은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부부로 처음 만날 때는 누구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서로간의 노력 없이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사회의 변화로 자식들 다 떠나고 빈 둥지에 노부부만이 아니면 홀로 살고 있는 현실 가정의 모습이다. 옛날 말에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도 했지만 이제 노년세대는 바깥노인들의 수난시대다. 지금의 시니어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남자는 바깥에 나가 일하고 돈 벌어들여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로, 여자는 자식 돌보며 집안에서 하는 일로 분담되어 있었다. 지금은 남자들이 은퇴란 이름으로 바깥에서 집안으로 들어왔고 여자들의 집안일은 그대로여서 무척 힘들지만 남자는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딱한 실정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남녀의 하는 일이 다를 수 없다.
여자도 바깥활동이 많아졌고 남자도 육아휴직에 장바구니 들고 다니는 세월이다. 평생을 함께할 부부는 서로 간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부부는 가사를 분담하면서 의지하고 보호하는 관계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한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