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억새 예찬
[시골 꽃 이야기] 억새 예찬
  • 장성희 기자
  • 승인 2021.12.0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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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보다는 억새

따뜻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마을길을 산책했다. 요즘 상사리는 겨울의 초입에 들어섰다.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들도 사라지고 황량한 모습만 남았다. 그래도 언덕배기의 수수한 억새만은 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싶은 듯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다. 곳곳에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억새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하다.

억새가 아름다움을 더하는 상사리의 골짜기. 장성희 기자
억새가 아름다움을 더하는 상사리의 골짜기. 장성희 기자

길을 가다가 문득 억새와 갈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졌다. 산에 있는 것은 억새이고 하천에 사는 것은 갈대라고 하는데, 그 모양이 비슷해서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물가에 사는 억새도 있다고 하니 더 헷갈린다. 스마트폰을 켜고 부리나케 차이를 알아보았다.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을 띤다고 한다. 그리고 갈대에 비해 줄기가 가늘기 때문에 약한 바람에도 쉽게 한들거리고, 잘 손질된 머리카락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갈대는 줄기가 뻣뻣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고동색에 가까운 갈색을 띠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갈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은 자연 가운데에서 가장 나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하며 갈대의 나약함을 이야기했다. 혹시 파스칼이 억새를 보고 갈대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실제 갈대보다는 억새를 더 쉽게 보고, 파스칼이 살았던 지방에도 억새가 많았다고 한다. 아무튼 억새와 갈대를 구분 못한다고 해서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 크게 따질 일은 아닌 듯하다.

황량한 산등성이를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 억새. 장성희 기자
황량한 산등성이를 운치 있게 만들어 주는 억새. 장성희 기자

용등밭 위에 핀 억새 군락을 보니, 지금은 억새의 계절이라 불러도 한 치의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햇빛에 반사된 은빛의 억새가 바람 따라 춤을 춘다.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이 억새꽃도 겨울 내내 북풍에 시달리며 다 날아가겠지. 용등밭에서 내려다 본 상사리의 들판은 추수를 끝낸 스산한 풍경이다. 인생은 채운 것을 비우고, 비운 것을 다시 채우는 과정의 반복이라 하니 자연의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런 세상 진리를 진작 깨달았다면 훨씬 이전부터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