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꽃보다 매혹적인 씨앗을 품은 범부채
[시골 꽃 이야기] 꽃보다 매혹적인 씨앗을 품은 범부채
  • 장성희 기자
  • 승인 2021.11.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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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나오면 더 영롱해지다

시골의 꽃밭에는 가을꽃들이 피고 있고 봄과 여름의 꽃들은 씨앗을 맺고 있다. 지난여름 무더울 때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가을이 벌써 우리 곁에 머무른 지 오래다. 온 들녘은 수확을 기다리는 농작물로 가득하고, 농부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우리 농원에도 풍요로운 가을이 깊어간다.

여름 내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즐거움을 주었던 범부채도 새 생명을 품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씨방을 맺었다가 따뜻한 가을 햇살에 스스로 꼬투리를 벗고 까만 씨앗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조그마한 씨앗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범부채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씨앗으로 데려왔는데, 작년에는 잎만 나오고 올해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올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에 핀 범부채꽃은 가녀린 것 같으면서 강해 보이고, 화려한 듯 단아해 보였다. 잎과 줄기가 부챗살을 펴 놓은 모양을 하고 꽃의 무늬가 호피 모양을 닮아서 범부채라고 불린다.

영롱하게 빛나는 범부채 씨앗. 장성희 기자
영롱하게 빛나는 범부채 씨앗. 장성희 기자

 

꽃도 예쁘지만 씨앗이 무척 매력적이다. 새까맣고 반짝반짝 빛이 나서 마치 보석 같다. 가을햇살과 너무 잘 어울린다. 다른 꽃들은 피었다 지면 아쉽고 섭섭하지만 범부채는 그렇지 않다. 꼬투리도 멋스럽고, 꼬투리가 벌어져 잘 깎아 놓은 보석구슬 같은 것이 튀어 나올 때는 여름에 보았던 꽃을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답다. 바람 살랑살랑 부는 가을날, 범부채의 꼬투리와 씨앗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구름이 지나갈 때에는 담담하고 차분하다가도 햇살이 나오면 초롱초롱 영롱해진다.

지난 여름, 호피 모양을 하고 피어 난 범부채꽃. 장성희 기자
지난 여름, 호피 모양을 하고 피어 난 범부채꽃. 장성희 기자

꽃 자체만으로도 예쁘지만 씨앗으로도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범부채를 내년에는 좀 더 늘여보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새로운 꼬투리를 벌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가을은 지는 계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품는 계절이다. 봄부터 시작된 생명의 여정이 마무리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이것이 야생화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범부채가 꼬투리를 맺고 있다. 장성희 기자
범부채가 꼬투리를 맺고 있다. 장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