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꽃밭에는 가을꽃들이 피고 있고 봄과 여름의 꽃들은 씨앗을 맺고 있다. 지난여름 무더울 때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가을이 벌써 우리 곁에 머무른 지 오래다. 온 들녘은 수확을 기다리는 농작물로 가득하고, 농부들의 손길도 바빠진다. 우리 농원에도 풍요로운 가을이 깊어간다.
여름 내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 즐거움을 주었던 범부채도 새 생명을 품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씨방을 맺었다가 따뜻한 가을 햇살에 스스로 꼬투리를 벗고 까만 씨앗을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조그마한 씨앗이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범부채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씨앗으로 데려왔는데, 작년에는 잎만 나오고 올해 처음으로 꽃이 피었다. 올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에 핀 범부채꽃은 가녀린 것 같으면서 강해 보이고, 화려한 듯 단아해 보였다. 잎과 줄기가 부챗살을 펴 놓은 모양을 하고 꽃의 무늬가 호피 모양을 닮아서 범부채라고 불린다.
꽃도 예쁘지만 씨앗이 무척 매력적이다. 새까맣고 반짝반짝 빛이 나서 마치 보석 같다. 가을햇살과 너무 잘 어울린다. 다른 꽃들은 피었다 지면 아쉽고 섭섭하지만 범부채는 그렇지 않다. 꼬투리도 멋스럽고, 꼬투리가 벌어져 잘 깎아 놓은 보석구슬 같은 것이 튀어 나올 때는 여름에 보았던 꽃을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답다. 바람 살랑살랑 부는 가을날, 범부채의 꼬투리와 씨앗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구름이 지나갈 때에는 담담하고 차분하다가도 햇살이 나오면 초롱초롱 영롱해진다.
꽃 자체만으로도 예쁘지만 씨앗으로도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범부채를 내년에는 좀 더 늘여보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알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새로운 꼬투리를 벌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가을은 지는 계절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품는 계절이다. 봄부터 시작된 생명의 여정이 마무리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이것이 야생화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