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이 시를 쓰고 이름을 짓다, 양산 임경대(臨鏡臺)
최치원이 시를 쓰고 이름을 짓다, 양산 임경대(臨鏡臺)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0.10.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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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대에서 바람을 싣다
임경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은 한반도 지형을 닮았으며, 강 우측편으로 저멀리 토곡산 아래 화제들판이 펼쳐져 있다. 장희자 기자

안개 낀 봉우리 빽빽하고 물은 넓고 넓은데
물속에 비친 인가(人家) 푸른 봉우리에 마주 섰네
어느 곳 외로운 돛배 바람 싣고 가노니 
아득히 나는 저 새 날아간 자취 없네 (임경대 고운 최치원)

신라시대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낙동강을 유람하다가 임경대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면서 위 내용의 시를 짓고, 천하제일의 거울을 대함과 같다 하여 임경대(臨鏡臺)라는 세 글자를 바위에 새겼다.

임경대는 물금읍과 원동면 경계를 이룬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있는 암벽봉우리로 경남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 산 72-4번지에 위치한다.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을 이어 가는 영남알프스는 영축산 시살등으로 솟구치며 남으로 달리다가 양산시 어곡리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능선은 남서로 뻗어 원동면 토곡산 줄기를 이루고, 나머지 한 능선은 동남으로 달리다가 매바위를 지나 화제고개에서 남서로 뒤틀어 오봉산 줄기를 이루고는 낙동강에 닿는다.

 

오봉산은 5개의 봉우리로 이뤄진 능선이다. 제 1봉(530.8m)이 낙동강 바로 동쪽에 자리 잡았고, 그 반대편 북동쪽 부근 화제고개 못 미쳐 제 5봉(449.9m)이 있어 산줄기의 흐름과는 반대로 낮은 봉우리에서 점차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다. 오봉산 북쪽에는 토곡산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그 사이에 낙동강에 연한 화제들판이 펼쳐져 있다.

임경대 너럭바위에 지어진 정자에서 여행객들이 낙동강 풍광을 즐기고 있다. 장희자 기자

임경대는 이 산 마루턱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정자로 일명 고운대, 최치원이 놀고 즐기던 곳이라고 해서 최공대(崔公臺)라고도 불린다. 고운대라는 이름도 고운 최치원이 돌을 직접 쌓아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낙동강과 그 건너편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주변 풍광을 한눈에 조망하며 즐길수 있는  명소 중 하나로 양산 팔경중 7경에 속한다.

최치원(857~)은 6두품 출신으로 868년(경문왕 8) 12세의 젊은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새때 빈공과 장원으로 급제해, 876년(헌강왕 2)에 표수현위로 임명됐다. 이때 군무에 종사하면서 지은 글들이 뒤에 「계원필경」 20권으로 엮였으며, 「격황소서」는 명문(名文)으로 손꼽힌다. 당나라에서 17년 동안 머무르며 나은() 등의 문인들과 친교를 맺으며 문명()을 크게 떨쳤다. 885년 신라로 돌아온 고운 선생은 시독 겸 한림학사 등 여러 벼슬을 받았으나이때 조정의 기강이 어지러워 외직을 자청하여 지방 태수로 봉직하면서 백성들을 돌봤다.

894년 나라는 계속 혼란하고 백성들이 도탄에 허덕이자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를 상소하였으나, 국정은 날로 어지러워지고 상소한 국책론도 시행되지 않자,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갔다. 자연을 벗삼아 정자를 짓고, 풍월에 심취하며 경주 남산합천 청량사, 해인사, 지리산의 쌍계사, 해운대 등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사상은 유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신라의 고유 사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나아가 유교·불교·도교의 가르침을 하나로 통합해서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난랑(鸞朗)이라는 화랑을 기리는 난랑비서(鸞朗碑序)라는 글에서 유교와 도교, 불교를 포용하고 조화시키는 풍류도를 한국 사상의 고유한 전통으로 제시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임경대까지 걸어가는 소나무숲에는 테크로드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장희자 기자

임경대 제영’이란 한시는 최치원의 문집인 ‘고운집 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 선집인 ‘동문선 권19’에 ‘황산강 임경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최치원은 임경대의 원경을 읊다가 시선을 외로운 돛배와 아득히 멀어지는 새로 옮김으로써 외로움의 정서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최치원이 임경대 제영을 읊은 이후 고려 시대 김극기는 최치원의 시에 차운했고, 조선시대에는 김순룡, 안효필이 칠언율시를 남겼다.

가는길은 대구에서는 대구부산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삼랑진IC에서 내려 1022번 지방도를 따라  천태산과 원동면 화제평야를 지나면 오봉산에 접어 든다. 물금과 원동의 경계 지점에 이르면 오른편에 기와담장으로 사방을 둘러싼 임경대 역사공원 주차장이 나타난다. 임경대는 이곳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숲속 산책길을 따라 걸어 임경대 전망대에 오르면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2017년 김해 상동에서 양산 유산동을 잇는 국가 지원 지방도 60호선 건설공사로 임경대앞으로 낙동대교(1503m)가 완공을 앞두고 있어 또 하나의 주변 풍광을 더해 주고 있다.
좌상) 김해-양산 낙동대교와 상동마을, 우상) 뒷편에서 바라본 임경대 정자, 좌하) 임경대를 주제로한 시비를 토담으로 둘러쌈, 우하) 임경대 주변 산책길에 낙락장송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