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타우(老饕) 식객
라우타우(老饕) 식객
  • 김한영 기자
  • 승인 2020.08.06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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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황제와 옛 위인들의 음식문화

중국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미식가 또는 식객을 라우타우(老饕)라고 한다. 즉 탐할 '도'자 와 오랜 경험을 나타내는 '老'자와 함께 쓴다.  그런데 이 식객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우선 좋은 시대에서 태어나야 한다. 사회가 발달되어야 좋은 음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것이 바로 송나라 시대이다. 송나라 시대를 후세대 요리발전의 시작이고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은 예다. 이 즈음에 중국 옛 위인들과 황제들은 미식가로서의 활동방면과 개인적인 성향이 어떠했는지, 후세에 남긴 기록을 통해 알아본다.

◆공자(孔子)

한 시대의 위인으로서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과 같은 유교권에서  몇 천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주고 있는 공자지만 미식가로서는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논어' 기록에 있는 "곡물은 정교할수록 좋고 고기는 얆을수록 좋다."라는 그의 이 한마디는 현대 미식의 추세를 대변하며 예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논어(향단)에서 음식을 취급하는 표준을 기록해 놓았다. "변질된 것은 먹지 아니하고 덜 익은 것은 먹지 아니하며 제철(계절)이 아닌 음식은 먹지 아니한다". 물론 요즈음 개량된 비닐하우스(生産)품들도 출시되지만 당시의 선행 품질의 조건을 제시한 게 예사롭지 않다. "부위를 구분하지 않은 고기를 먹지 아니하고 소스(양념)가 어울리지 않은 것을 먹지 아니하며 주식과 반찬의 비례가 맞지 않은 것은 먹지 아니한다." 밥을 먹을때 말을 하면 아니되고 술은 반드시 술잔에 부어 마셔야 한다. 몇 천년 전 공자가 이 세상에 ‘코로나’가 올지 예견했던 걸까. 식사할 때 말을 하면 안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논어에서는 정치와 음식이 등장하는 횟수가 비슷하다고 한다. 공자가 음식에 대한 경험을 전하려는 의지에서 중국 공씨(孔氏)가문의 요리가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중국 바이두 캡처

◆건륭황제

건륭황제는 중국 음식 평론가들이  유명인사의 이름을 빌릴 때 가장 자주 등장시키는 유명한 미식가 중 한 사람이다. 여섯 번 중국 강남지역을 다녀가면서 도착한 곳마다 그가 즐겨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강소성과 절강성의 요리사들은 황제가 갈 때마다 검열을 받았으며 볶음밥 요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양주(揚州) 지방도 건륭왕제를 맞이한 곳으로 유명하다. 황제는 도대체 무슨요리를 즐겨 먹었을까? (청나라 황궁 양주기록)에서 '건륭황제'가 마지막 3번의 강남행에서 즐긴 음식이 수록 되어 있다. 매 찬마다 오리요리를 찿았으며 수산물은 먹지 않았고, 천녕사 사찰음식을 좋아했으며, '문사두부'를 칭찬했다고 한다. 각지의 이름난 요리사들이 총 출동하였고 각 요리마다 요리사의 이름이 덧붙여져 있다. 그들중에 .'장동궁'이라는 요리사는 즉시 궁으로 특채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 뿐만 아니라 '건륭황제는 음식으로 몸 보신을 할 줄 알아서  당당한 체력이 둿받침이 되어 중국 역사에서 가장 긴 재위를 누린 황제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원매(袁枚/1716~ 1797)

청나라 시인으로 유명한 원매(袁枚)는 '수원식단'이란 기록을 통해 보면 매우 고풍적이다. 상세히 열어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현대에도 당장에 사용 될 수 있을법한 레시피가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작가 원매는 시인이며 정치인이다. 그는 33세에 관직을 사작하고 남경에 있는 고택을 구입해서 원림저택을 꾸려 수원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수원식선'의 홍보를 위해 담을 허물고 원내 경치를 보게 하였다. 이 책은 14세기부터 18세기 까지 300여가지 요리와 디저트 그리고 술(酒)과다(茶)의 방법과 요령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책으로 인해 그는 관직에 있을 때보다 명성이 더욱 높아져 그야말로 자유업의 본보기라 할 수있다.

소동파(苏东坡)선생

소동파 선생의 살아온 생을 보면 아주 활달하고 도량이 넓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 관료사회의 부침으로 동서남북으로 많이 이전하면서 섬세하고 고급진 음식은 아니지만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이 있다. 비롯 변변치 못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 진미를 맛본다. 어디에서든 식자재를 찿아 만들수 있는게 진장한 발명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요리 '동파육'은 제일 유명하다. 소동파선생의 '猪肉颂 주러우쑹'이란 저작에 동파육의 레시피가 기재되어 있다. 항주(杭州)의 동파육 외 과거 수도인 '개봉'에도 탕국 요리가 있었는데 동파선생이 황주로 유배되는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살고기만 먹고 대게는 얼음지기 전에 살많은 두 다리만 먹고 체리는 솥에 끓여 쨈으로 달콤하게 만들어 아몬드랑 쩌서 떡을 만들고 바지락은 약간 익혀 슬을 넣어 먹고 게는 주조와 함께 쪄서 반숙으로 먹는다. 이 기록은 소동파선생의 老饕이란 작품에 기재된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 많이 다니고 많이 보고 많은걸 만들어 식탁에 올라 가게끔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맛보이는게 진정한 미식가 동파(东坡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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