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의 추억] 3학년 여중생들의 연두빛 추억
[만우절의 추억] 3학년 여중생들의 연두빛 추억
  • 이수이 기자
  • 승인 2020.03.31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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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탁 칠판 문손잡이 따라 물풀 칠...선생님 알고도 속은 척
1981년 원화여자중학교 3학년8반 담임 김종찬 선생님.  이수이 기자

 

띠리리리릭 띠리리리.

“야! 빨리 빨리 치워. 종 쳤어.”

“앉아라. 빨리 빨리.”

“얘들아, 알제? 절대 웃으면 돼. 도저히 못 참겠거든 엎드려.”

반장은 당부에 또 당부를 하곤 제자리에 앉았다. 맨 뒷자리 끝에 앉았던 친구는 고개만 내밀어 망을 보고, 67명의 반 친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업준비를 해놓고 앉았다. “야! 야! 야! 선생님 오신다.”

조용~ 일순간 교실엔 정적이 흐르고 계단 오르는 선생님의 슬리퍼 소리만 날 뿐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교실엔 따스한 봄볕 대신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 같은 콩닥거림이 가득할 뿐이었다.

드르륵.

어?

국어 선생님이자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이 미닫이 교실 문을 열다 말고 멈칫 하시더니 모른 척 그냥 들어오셨다. 낡은 교탁 위에 출석부와 책을 내려놓고 서자, 여느 때처럼 반장의 차려 경례에 맞춰 인사를 했다. 선생님께서 교탁의 양 모서리 끝을 부여잡는 순간, 피식 입가에 미소를 흘리셨다. 쿡 쿡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두 손으로 꽉 누르며 고개를 숙이는 친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늘 ‘청산별곡’할 차례이지?”

‘어머나? 선생님이 왜 아무 말씀을 안 하시지? 그새 말랐나? 아닐 텐데.’

친구들은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어찌된 일인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책 펴라. 청산별곡이다.”

떠어억~~

선생님께서 교탁모서리 짚었던 손을 떼셨다. 물풀이 실처럼 쩌억 당겨옴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풀을 몇 통이나 썼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분필을 잡아 칠판에 청산별곡(靑山別曲) 네 글자를 한자로 쓰시고는 칠판 가장자리로 다시 등을 쓰윽 기대는 순간, 멈칫 하시더니 홱 돌아보셨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놈들, 내가 또 속을 줄 알았지?”

“누가 이랬어?”

“하하하, 하하하”

교실에는 일순간 책상을 두드리며 까르르 넘어가는 친구들, 하하하 웃겨 죽겠다며 배를 잡고 웃는 친구들….

“이눔들, 선생님 양복이 이거 한 벌 밖에 없는데 큰일 날 뻔했잖아. 다시 동복 입을 뻔했다.”

소풍날 선생님과 사진 한 장.  이수이 기자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우리 반 친구들은 작전 모의를 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서 단체 대화방에서 의견을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다. 매일 점심시간에 모이고, 수업 마치고 모여서 어떻게 하면 혼나지 않고 재미있게 만우절을 보낼까 고민을 했다.

거짓말은 하지 말자. 택도 아닌 일로 속상하게도 하지 말자. 잘 생긴 우리 담임 선생님 곤란하게도 하지 말자. 오래오래 추억되게 조금만 장난질 치자.

그랬다. 우리 담임 선생님. 노총각 훈남 선생님.

전교생뿐만 아니라 옆 고등학교 언니들까지 우리 선생님의 인기는 끝이 없었다. 잘생긴 건 기본이다. 키도 훤칠하지, 멋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치 후광이 번쩍이신 분이었다. 그 인기는 지금의 BTS급이었다. 그런 선생님께 상처가 되거나 거짓말을 해서 만우절을 흐리게 할 수 없다 하여 생각한 게 바로 물풀 칠이었다. 물풀은 물로 씻고 닦으면 그만이기에 교실 출입문 손잡이, 교탁 모서리, 칠판 앞 등 평소 선생님이 잘 만지고 기대는 곳에 물풀을 얼마나 칠해놓았는지 모른다.

체육대회 퍼레이드 할 때의 선생님 모습.   이수이 기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선생님은 해마다 당하는 일이라 각오를 하고 오셨다고 하셨다. 교실 문을 열 때는 몰랐고, 교탁이나 칠판 가장자리는 이미 눈치를 채셨단다. 교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번들거리더라고 하셨다. 우리가 실망할까 봐 모른 척 당하는 것처럼 하셨다고 한다.

“이눔들아, 평소처럼 해야지. 종 치고 선생님이 와야 후다닥 제자리 찾아가던 놈들이 종 치기도 전에 조용하고 모두들 숨죽여 쌕쌕거리고 있는데 모르냐?”

“그래도 고맙다. 선생님 한 벌 밖에 없는 양복인데 요 정도로만 해줘서….”

혹시 지금도 기억을 하실까? 그 시절 어린 제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