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의 추억] 소설가 송일호가 본 풍속도
[만우절의 추억] 소설가 송일호가 본 풍속도
  • 시니어每日
  • 승인 2020.03.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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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무슨 날? 맞히면 선물 준다” 라디오 방송
“선물 왜 안주냐” 시민 항의에 아나운서 사표

 

지금은 만우절에 별 의미가 없고 잊혀져가고 있지만 한때는 세계를 강타하듯 유행한 적도 있었다. 시니어 세대들은 예전 만우절에 속고 속히는 추억을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나라마다 다르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속이고 속는 풍습이 대유행을 했다. 이것이 우리나라까지 전파되어 해마다 4월 1일이 오면 어떻게 하면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속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거짓말 기사를 내어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뒤에 만우절 거짓말임을 알고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우리나라도 한때 만우절이 유행을 했고, 시니어 세대들은 만우절의 추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주로 친구나 선생님에게 악의 없는 간단한 거짓말로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놀이다.

쉽고 간단한 거짓말이 나중에는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불이 났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강도를 당했다, 폭탄을 발견했다 등 장난전화로 큰 혼란을 빚기도 했다. 급기야 당국에서는 벌금 등 형사처벌까지 하게 되었다.

옛날 학생들은 시내 풍년당이나 런던제과 같은 곳에서 먹고 싶은 고급 빵을 실컷 먹는 것이 꿈이었다.

“동식이 형이 서울에서 내려왔다. 우리들에게 빵을 사주겠다고 했다. 5시에 풍년당으로 온나. 다른 친구에게는 비밀로 해야 한다.” 5시가 넘어 아무리 기다려도 동식이 형은 나타나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본다. 답변은 간단했다. “풍년당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통화중이더라. 형은 급한 일이 있어 서울로 올라갔다. 빵은 다음에 사준다 카드라.”

속은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복수를 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명절에 식구끼리 모여 일류극장 구경 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서부영화. 존 웨인, 개리 쿠퍼, 엘리자베스 테일러, 매릴린 먼로를 모르면 축에 끼지도 못했다. 제일극장, 한일극장 같은 일류극장 구경시켜 주겠다고 하면 백발백중 속일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보릿고개를 면한 것은 서울대 허만회 교수가 기존 벼보다 3배나 수확을 많이 하는 통일벼를 개발한 70년대 말이었다. 농촌에는 화장실 뒤처리를 볏짚으로 했고, 종이는 동장 집에 무료로 배부해주는 서울신문과 새마을 잡지뿐이었다. 라디오는 한 동네 한 대가 있을 둥 말 둥 하던 시절, 라디오 대신 기둥에 매달아 놓은 스피커가 대신했다. 삯은 보리타작 때 보리 한 말, 벼 타작 때 벼 한 말이었다. ‘전설 따라 삼천리’를 할 때는 저녁밥 일찍 해 먹고 동네 아낙들이 스피커 앞에 모여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천사의 목소리와 같았다.

아나운서 인기 또한 대단했다. 대구에는 지금의 시민회관 자리에 일본사람이 지어놓은 빨간 벽돌의 공회당 3층에 HLKG 대구방송국이 있었다. 4월 1일 만우절 날 이교석 아나운서는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십니까? 이 방송을 들으신 분께 선착순으로 트랜지스터라디오 한 대를 드리겠습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말로만 들은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너무 큰 상품 때문이었을까? 아직 만우절이 국민들에게 깊이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만우절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방송국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내놓으라고 항의했다. 이 방송은 전국 신문을 타며 사회문제가 되었고, 마침내 이교석 아나운서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이것이 우리나라 만우절 1위의 자리를 지금까지 차지하고 있다.

유머는 약간의 거짓말과 위트가 있어야 한다. 지금의 시니어 세대들은 일은 열심히 했는데 노는 것은 모르고 살았다. 야외 놀러가서도 하루 종일 부처같이 앉아 차만 타다가 오는 사람이 많다. 앞에 나가서 Y담이나 하고 촐랑거리면 하루아침에 인격이 떨어진다. 지금 세대는 유머가 결혼조건에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웃음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웃음을 잃은 이때 만우절이 다시 활성화되어 생활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한다. 시니어 세대들이여 점잔 빼지 말고,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웃으며 삽시다.

송일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