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의 추억] 여학교에서 겪은 해프닝
[만우절의 추억] 여학교에서 겪은 해프닝
  • 이동백 기자
  • 승인 2020.03.31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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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이 준 생크림 과자엔 치약이...찻잔에는 맹물만

 

오랫동안 남학교에 근무하다가 여학교로 전근한 해에 겪은 일이다. 부임 첫날부터 보여준 여학생들의 사근사근한 붙임성은 적이 당혹스러운 데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 닭 보듯 데면데면하기에 십상인 남학생에게 십여 년 넘게 길들였으니 말이다. 한 달이 지날 즈음에 이르도록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러나 목련의 꽃봉오리를 열어젖힌 봄볕을 어깨로 받아내며, 휴식의 한때를 누리는 여유도 지니게 되었다.

그날이었다. 학생 몇이 청설모에게 빵부스러기를 먹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눈길에 이끌리어 다가가 보니, 빵이 아니었다. 먹이가 아닌 걸 왜 먹이려 드느냐하니까, 오늘이 만우절이라며 까르륵 웃어댔다. 교정의 소나무에 청설모 몇 마리가 서식했다. 학생들이 그 녀석들에게 빵부스러기를 주어 버릇하여, 쉬는 시간이면 녀석들이 먹이를 기다리는 일이 잦았다. 그날도 그런 까닭으로 한 녀석이 먹이를 얻으러 왔다가 된통 당하는 중이었다. 그때 첫 교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서둘러 수업하러 교실로 들어섰다. 교탁 위에 차와 과자가 놓여 있었다. 남학교에 없는 풍경이 여학교에는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수업 시간에 선생에게 차 한 잔을 건네는 일이었다. 그날은 특별히 차에 과자가 곁들여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물으니, 누구 생일이란다. 저희 책상 위에도 과자가 놓였다. 나누어 먹는 시간을 잠시 갖자며, 녀석들은 애교 비슷한 것까지 섞어 성화를 부렸다.

그 과자에 마음이 꽂혀 이미 수업을 까맣게 잊은 지경에 이르렀다. 생크림을 사이 넣어 만든 과자였다. 군침이 흥건하게 고인 입 안으로 얼른 과자를 집어넣고, 이에 힘을 주었다. 과자가 이에 부서지는 찰나, 입 안으로 뭔가 특이한 향이 퍼져나갔다. 몇 녀석이 키득거렸다. 그중 한 녀석이 시치미를 떼고 찻잔을 내밀었다.

“한 모금 드시죠?”

입을 헹구라는 눈치였다. 차가 아닌 물이었다. 약 주고 병 주는 격이라 괘씸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좀 전에 청설모에게 종이를 먹이던 녀석들의 모습이 얼핏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물을 사양하고, 그 과자를 꼭꼭 씹어 삼켰다.

“선생님, 그걸 드시면 어떡해요. 치약 과잔데….”

너희 성의를 봐서 먹었노라고 말하려다 말고, 참고 넘겼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오니, 간장 콜라를 얻어먹었다느니, 학급이 바뀐 줄도 모르고 수업을 시작했다느니, ‘愚東’ 선생은 학생들과 우동을 나누어 먹었다느니, 해프닝이 많았다. 이 해프닝들이 그해 만우절에 일어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학교에서 겪은 일임은 틀림없다.

그 당시 학생들은 늦은 밤까지 학교에 붙잡혀 야간 자율학습을 해야 할 만큼, 여유 없는 삶에 내몰려 있었다. 만우절의 일탈은 꽉 짜인 생활에서 잠시나마 헤어나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그날 속힌 일이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지금껏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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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이 추위를 피하고자 하늘을 날아 남미까지 여행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 전 세계 인터넷에 유포되었다. 이 영상에는 유명 코미디언 테리 존스가 직접 남극을 찾아 펭귄의 비행 장면을 목격하는 모습까지 들어 있었다. 2008년 영국 BBC가 제작해서 만우절에 유포한 가짜 뉴스였다. 비록 가짜 뉴스였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끈 영상이었다.

만우절에 행해지는 이러한 가짜 뉴스는 거짓말이되 악의가 없고, 기발해서 재미가 있다. 사람들은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걸 받아들여 즐긴다. 결국 이것은 찌든 일상의 삶에 여유를 주는 구실을 한다.

코로나19로 나라가 온통 혼돈에 빠져 있다. 이 바이러스를 훅 날려버릴 획기적인 일이 당장 일어나면 좋겠다. 그럼으로써 깜찍하면서도 재치 있는 속임과 속음으로 올해 만우절을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BBC가 제작해서 만우절에 유포한 가짜 뉴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9dfWzp7rY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