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의 추억] 그 사람 지금 어디에
[만우절의 추억] 그 사람 지금 어디에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0.03.31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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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꽃다발 받았는데 마지막이 될 줄이야…

 

4월 첫 날, 만우절이 다가오면 아련한 추억 한 자락이 나를 미소를 짓게 한다.

오늘날 만우절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으로 웃을 수 있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간혹 일부 사람들이 불이 났다느니, 사람이 다쳤다느니, 지나친 장난 전화로 경찰이나 119 대원들을 당황하게 하는 사례도 없지 않다. 서양에서 만우절 장난에 넘어간 사람을 ‘4월 바보’(April fool) 또는 4월의 물고기 ‘푸아송 다브릴’(poisson d'avrill)이라고도 한다는데, 지난시절 나 역시 4월 바보는 아니었을까.

미혼시절, 나는 책을 좋아하여 수시로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그와의 첫 만남도 그곳이었다. 서로 마주치는 날들이 많아지면서 좋은 도서를 추천하고, 토론까지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도 많은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주말이면 영화를 보고 다방에서 커피도 마셨다. 대구의 유명한 성당못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자주 앉는 벤치에 서로의 이름을 새겼다.

어느 주말이었다. 도시락을 만들어 나들이를 갔다. 밥 위에 사랑표 하트까지 새겼건만 그는 김밥만 주섬주섬 먹을 뿐 말이 없었다. 새벽잠을 설치며 몰래 만들어 온 도시락이었는데, 확 뺏고 싶었다. 그때는 유머 없고 눈치 없는 그 사람이 진짜인 줄 알았다.

만우절이 다가왔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손목 한 번 잡지 않는 그 사람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만우절을 핑계 삼아 멀리 이민간다고 거짓을 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애써 나의 눈길을 피하며 허공만 바라보았다.

뒤돌아서려는데 팔을 낚아채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기대는 빗나갔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가끔씩 편지 하실 거죠?”

실망이 컸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속내를 들킬 것 같아 오늘이 만우절이라고 말 한마디 못 한 채 줄행랑 쳤다. 나는 우리가 놀던 성당못 벤치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괜스레 눈물이 났다.

어둠이 내리고 투덜투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 앞 으스름 가로등 불빛 아래 꽃을 든 그 사람이 서 있었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만우절이지만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면 어떻게 해요?”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것도 잠시, 설레던 마음이 참담하게 무너졌다. 그는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자신이 유부남이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받은 꽃다발이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 더 애틋하다고 했던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궁금하다. 그는 정말 유부남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마음에 없었던 것일까. 해마다 만우절이면 문득문득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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