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가득 제철 음식] 미나리 뜯으러 가자
[영양 가득 제철 음식] 미나리 뜯으러 가자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4.02.25 16: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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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먹는 미나리 유래
‘미+나리’는 ‘물에서 자라는 나물’
미나리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
라면에 넣어 먹는 미나리. 노정희 기자
라면에 넣어 먹는 미나리. 노정희 기자

이른 봄철 채소로는 미나리를 손꼽는다. 사시사철 푸른 채소가 넘치지만, 입맛 돋우는 데는 미나리만 한 게 없다. 가을에 파종하여 12월에 수확하는 ‘가을 미나리’는 향이 미약하다. 겨울에 파종하여 설 전후에 나오는 ‘겨울 미나리’가 특유의 향을 지닌다.

‘처가 세배는 미나리강회 먹을 때나 간다’는 속담이 있다. 처가에 미나리 먹으러 간다는 말로 들릴 수 있으나, 핵심은 봄 미나리가 맛이 좋다는 의미이다. 겨우내 묵나물과 김장만 먹다 보니 얼음 속에서 채취한 푸릇한 미나리 맛이 별미 아니었겠는가. 미나리는 봄을 알리는 첫 손님이었다.

미나리 초대. 노정희 기자

미나리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대까지 궁중과 제례 상에서 귀히 대접받은 음식이었다. ‘제사 지낼 때는 미나리 김치를 두 번째로 진열해야 한다’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미나리는 그만큼 주요 채소 중 하나였다. 미나리가 대접받는 다른 이유로는 미나리 상징성 때문이다. 얼음장 아래에서 살아남는 끈질김, 사철 푸른 기운은 사대부들에게 충성과 정성의 표상이고 학문의 상징이었다.

‘시경’에 ‘반수(泮水)에서 미나리를 뜯는다’고 했다. 많은 사람 중에서 훌륭한 인재를 뽑아 학생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조선 시대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채근(采芹)이라고 했다. ‘미나리를 뜯는다[采芹]’라는 이 말이 시경 내용과 상통하는 것이다. 성균관 주변에 유생들이 먹을 미나리를 많이 재배했는데, 미나리 궁이라는 뜻으로 ‘근궁(芹宮)’이라고 불렀다.
요즘은 청도 한재 미나리가 유명하나, 예전에는 왕십리 미나리를 최고로 쳤다. 동대문 밖 왕십리 일대가 온통 미나리꽝이었다. 서대문구 미근동(渼芹洞)은 미나리꽝이 있던 동네라 붙은 이름이다. ‘미나리 근’ 자가 지명에 남아 있다. ‘미+나리’는 ‘물에서 자라는 나리/나물’이다. ‘미’는 본래 ‘물’을 말한다.

미나리 꼬막무침. 노정희 기자

조선 후기 역사에 ‘민(閔) 나리’라는 말이 나온다. 민 씨 왕비의 친지들인 ‘민 씨 나리’가 설칠수록 백성들은 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민 나리’가 ‘미나리’로 빗대어 불렸다. 서포의 ‘사씨남정기’에 나오는 미나리는 그와 반대이다. ‘장다리는 한철이고 미나리는 사철일세 / 철을 잊은 호랑나비 오락가락 노닐으니 / 제철 가면 어이 놀거나’ 이 노래에서 장다리는 장희빈, 미나리는 폐비 민 씨를 가리킨다. 권력은 잠시이니 자중하라는 비유가 아니겠는가.

미나리의 본초명은 ‘수근(水芹)’이다. 효능을 살펴보면 수분이 몸속에서 잘 활용하도록 돕고 불필요한 수분은 배출시키는 ‘이수’와 몸의 열을 내리는 ‘청열’ 작용을 한다. 동의보감에 ‘미나리는 갈증을 풀어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며, 주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대소장을 잘 통하게 하고~’ 기록되어 있다. 미나리는 탕ㆍ전ㆍ김치ㆍ무침ㆍ강회로도 먹는다. 이른 봄의 미나리는 독특한 향기와 풍미가 있어 식욕을 당긴다. 각종 비타민,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으로 피로 해소에 좋으며, 면역 시스템을 강화하고 춘곤증을 예방해 준다.

미나리와 궁합이 맞는 식품으로는 쑥갓과 돼지고기가 있다. 미나리의 칼륨은 나트륨을 배출하고 쑥갓의 칼륨 역시 나트륨 축적을 방지해 고혈압을 조절해 준다. 또한, 돼지고기는 중금속을 배출하고, 미나리는 중금속 독성을 완화해 효과를 상승시킨다.

미나리와 궁합이 맞지 않는 것으로는 오이가 있다. 오이에 있는 아스코르비아나제는 미나리에 풍부한 비타민 C를 파괴한다. 미나리가 간에 좋다고 녹즙으로 섭취하는데, 자칫 간 수치를 높일 수 있으니 환자들은 주의한다.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을 해독할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 다만 맛과 영양 면에서는 복어와 잘 어울린다. 위장 질환이 있는 환자는 섭취에 주의가 필요하며, 또한 미나리는 몸이 차가운 사람은 과하게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미나리는 간질(Fasciola hepatica)이라는 기생충의 중간 숙주가 되는 식물이므로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반드시 익혀 먹도록 한다.

미나리와 돼지고기. 노정희 기자

향긋한 봄 미나리에 달걀을 풀어 적을 굽는다. 고명으로 사용하는 미나리초대이다. 요즘 꼬막이 한창이라 꼬막 미나리무침, 쌀쌀한 날씨에 라면이 당길 때 미나리를 듬뿍 넣으면 별미이다. 미나리와 돼지고기구이도 그만이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임 계신 곳에 비추고자 / 봄 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옛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