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따라 맛 따라] 국산 허브, ‘방아’
[이야기 따라 맛 따라] 국산 허브, ‘방아’
  • 노정희 기자
  • 승인 2023.04.21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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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Korean Mint’
자체의 향기가 다른 향기를 밀어내는 ‘배초향(排草香)’
미생물 번식 억제, 위 신경 진정작용
방아 부침개. 노정희 기자
방아 부침개. 노정희 기자

잃은 게 있으면 분명 얻는 것도 있다. 물질적인 얻음이 아니라면 깨우침이라도 얻을 것이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에 잠시 주택에 짐을 들였다. 화분을 실내에 다 들여놓지 못해 나름 부직포로 싸서 월동을 대비했다. 대략 조치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겨우내 한파를 이기지 못해 스러지는 화초를 보며 마음이 쓰라렸다. 빈 화분을 쟁여두었다가 시골로 짐을 옮겼다. 그런데 빈 화분에서 싹이 돋아오른다. 풀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깻잎도 아닌 것이 몸집을 부풀렸다. 아하, 주택 대문간 옆에 보랏빛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던 마는 그 씨앗이 날아왔구나. 꽃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뒤란 쪽으로 옮겨심었다.

시골에 온 지 2년 차, 지난해에는 방아꽃 향연에 빠져 황홀한 비명을 질러댔다. 번식이 목적이었기에 채취하지는 않았다. 오롯이 꽃을 즐기겠다는 이념뿐이었다. 꽃이 피자 벌떼가 날아들었다. 그 틈으로 붕붕붕~몸집이 벌의 네댓 배는 되고 배가 볼록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처음 마주하는 낯선 손님에 빠져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눌렀다. 이건 새야, 자그마한 새. 그러면 벌새일 거야. SNS에 올렸더니 ‘붕붕이’라고 한다.

방아(배초향). 노정희 기자
방아(배초향). 노정희 기자

집 둘레에 방아를 번식시켰다. 올해는 적잖이 식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된장국, 전, 쌈, 무침 등으로 식탁을 차린다. 방아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며 꿀풀과 배초향 속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밀어낼 배(排), 풀 초(草), 향기 향(香)을 써서 배초향(排草香)으로 불린다. 자체의 향기가 다른 향기를 밀어낼 정도로 강하다는 뜻이다. 방아잎, 방아풀, 깨나물이라고도 하고 북한에서는 내기풀, 민간에서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효능이 있는 연명초(延命草), 생약명은 곽향(藿香)이다. 잎이 콩잎을 닮고 향기가 좋아서 콩의 뜻인 곽(藿), 향기의 뜻인 향(香)을 합해 불렀다. 향기와 쓰임새가 서양의 허브와 유사하며 영어권에서는 Korean Mint라고 부른다.

<본초강목>에 곽향이 언급되었다. ‘藿香. 辛, 微溫, 無毒. 風水毒腫, 去惡氣, 止霍亂心腹痛. 脾胃吐逆爲要藥. 助胃氣, 開胃口, 進飮食.’ 곽향. 맛은 맵고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독이 없다. 풍독이나 수독으로 인한 종기를 치료하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곽란으로 인한 심복통을 멎게 한다. 비위를 다스리고, 구토와 구역감에 요약으로 여긴다. 위기를 돕고 위를 열어 주며 음식을 먹게 한다.

방아는 36종의 향기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은 유해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는 항균 능력이 있어서 고추장, 된장 등에 잎을 말려서 가루를 내어 넣어 두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방아의 대표적 함유물질인 로즈마린산은 항산화 활성을 통해 해독 효과는 물론 인체의 노화와 동맥경화 등 질병을 예방해준다. 위 신경에 대한 진정작용이 있어서 구토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달인 물로 입안을 헹구면 구취 해소에 도움을 주고, 발한력이 강하지 않으며 약하게 땀을 내게 해서 여름 감기에도 사용한다.

된장국에 넣어 숨만 죽여서 먹는다. 노정희 기자
된장국에 넣어 숨만 죽여서 먹는다. 노정희 기자

방아는 우리 집안의 역사에 속한다. 올케언니와 나의 음식문화를 엮어주는 가교역할을 하였다. 예전 오뉴월, 엄마 생신이라 시골에 들렀더니 올케언니가 부침개를 만들고 있었다. 촐촐한 터에 맛을 보았더니 낯선 냄새와 맛이다. 하지만 거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입맛을 당겼다. 부산에서 살았던 언니는 그쪽 지방에서 즐기는 식재료라고 했다. 추어탕에는 제피만 넣어 먹는 줄 알았는데 방아 잎을 넣어서 먹는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언니는 추어탕을 끓여서 우리 집에 가져온 적이 있는데, 아마 그때도 방아를 넣었을 것이다. 방아 모종을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다는 언니에게 방아 심은 화분을 전달했다. 잘만 번식하면 그곳에도 붕붕이가 날아들 것이다.

방아는 자체 향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재료의 맛을 감할 수 있다. 방아 맛만을 즐기는 게 좋다. 멸치와 다시마 우린 물에 된장을 심심하게 풀고 끓기 시작하면 방아를 넣는다. 오래 끓이면 향이 날아가기에 바로 건져 먹었더니 그 맛이 달고 향그럽다. 방아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다. 특히 여린 줄기에서 배어 나오는 단맛은 생선 찌개 끓일 때 유용하다. 비린내 제거뿐만 아니라 단맛까지 보태준다.

방아의 꽃말은 ‘향수’, ‘정화’이다. 이렇게 재료와 꽃말이 찰떡인 경우도 드물지 않은가. 물 건너온 향신료만 찾을 게 아니라 우리나라 원산지인, Korean Mint를 적절히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