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92) 조밥(황금 밥)을 먹었다.
[꽃 피어날 추억] (92) 조밥(황금 밥)을 먹었다.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4.01.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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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으로 모를 못 심는 논에 조를 파종하고 재배 수확하여 좁쌀을 찧어 노란 조밥을 지어 먹었다.
조밥(황금 밥)의 모습. 유병길 기자

1950~60년대 하늘의 비만 바라보며 가뭄에도 농사를 지었다. 마을 앞에 냇가가 있으나 비가 많이 내리면 황토물 홍수로 제방이 무너져 논밭이 유실되고 3~4일만 지나면 냇물이 마르는 건천이었다. 새마 동네 앞 논은 모래 논이라 많은 비가 내려야 모를 심을 수 있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모를 심을 수 있는 골짝 논도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모는 못 심고, 먼지만 푸석푸석 나는 메마른 논에 쟁기로 골을 타고 조를 파종하였다.

가을이 되면 논에 모를 심은 논은 벼 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루지만, 새마 동네 앞은 방망이 같은 조 이삭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배가 고파 꽁보리밥, 시래기죽, 감자, 고구마 등 무엇이든 배불리만 먹을 수 있다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벼와 조를 수확한 논과 밭에는 가을보리와 밀을 파종하였다. 일이 끝나면 무 배추를 뽑아 김장김치를 겨울에 먹을 양식으로 100포기 이상 많이 담았다. 남은 무는 구덩이를 파고 땅에 묻어 두고 겨우내 꺼내어 먹었다. 다듬을 때 나온 무 잎이나 늙은 배추잎은 짚으로 길게 엮은 시래기를 그늘진 헛간이나 창고 기둥에 걸어 말렸다.

겨울이면 새마 사람들은 디딜방아에 조를 찧어 좁쌀을 만들었다. 흰쌀밥 대신 노란 황금 밥인 조밥을 먹으며 살았다.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가면 황금 밥 먹는다고 놀림도 당하였다.

조밥은 쌀 대신 조를 주재료로 하여 지은 밥이다. 조밥은 옛날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곡물 밥으로, 쌀이 귀하던 시절에는 주식으로 많이 먹었다.

조밥은 주로 조만으로 지어 먹지만, 쌀과 조를 섞어지어 먹기도 하였다. 쌀이 없는 집은 보리쌀과 썩어서 밥을 지어 먹었다.

좁쌀의 모습. 유병길 기자

 정부 보조를 받아 1950년대 후반 술도가 앞 냇가 바닥를 파고 석축을 쌓고 굵은 소나무를 베어다 위를 덮고 자갈로 매워 보머리를 만들고, 그물이 새마앞을 지나 기말기까지 내려가는 도수로를 만들었다. 일하는 노임은 잉여농산물인 밀가루를 받아 국수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그 보가 완성되어 물이 내려오면서 새마앞 논에도 제때 모내기하였고, 공동 빨래터를 만들어 편리하였다.

요즘은 조밥에 영양가가 풍부하다고 별미로 먹는 사람이 많다. 조는 쌀보다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 등이 풍부하다. 특히, 조에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 예방에 도움이 된다. 또한, 조에는 비타민 E가 풍부하여 항산화 효과가 있다. 조밥은 대표적인 곡물밥으로, 영양가도 풍부하여 건강식으로도 좋은 음식이다.

조 이삭의 모습. 유병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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