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로 돌아간 시골분교 어른들의 운동회
어린애로 돌아간 시골분교 어른들의 운동회
  • 이배현 기자
  • 승인 2023.10.10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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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항초등학교 지방분교장 졸업생 체육대회
75회 3,669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시골학교
올해로 35회째 총동창회 체육대회 이어져
강달수 총동회장(오른쪽)이 경품 대상을 받은 동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강달수 총동회장(오른쪽)이 경품 대상을 받은 동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지난 9일, 전교생 수가 14명인 지방초등학교 총동창회(회장 강달수, 23회 졸업) 운동회가 모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경북 성주군 월항초등학교 지방분교장에서 열린 35번째 졸업생 체육대회다.

높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노병들은 열심히 뛰고 뒹굴고 고함치며 운동장을 누볐다. 어릴 때 운동회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이들의 까까머리가 백발로 변했을 뿐 운동장의 고운 모래, 청군 백군, 줄다리기 함성은 옛 그대로였다.

강달수 지방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학교가 비록 분교장이 되었지만 83년의 전통은 우리 사회 곳곳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운을 떼고 “앞으로도 우리 졸업생들은 모교를 사랑하고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지방인이 되자”고 역설하였다.

졸업생들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졸업생들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개회식 후 전통에 따라, 칠순을 맞은 19회 선배 졸업생들이 칠순 잔치상 앞에서 후배들로부터 큰절을 받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지만 선배들은 허허 웃으며 후배들에게 덕담을 건네고 후배들은 칠순 축하 술잔을 올리는 모습이 무척 정겨워 보였다.

이어서 줄다리기, 홀인원, 코믹 이어달리기 등 재미있는 경기가 이어졌다.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 졸업생들은 어린아이가 되어 열심히 달리고 웃고 떠들었다. 노래자랑이 이어지고 경품 추첨을 마지막으로 운동회는 끝났다. 어둑발이 내리고 졸업생들은 기수별로 흩어져 삼삼오오 운동장을 떠났다.

지방초등학교는 1943년 4월 1일 개교하였다. 2015년 75회 졸업식을 마치고 2016년 3월 월항초등학교 분교장으로 편입되었다. 75회 3,66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문을 닫은 것이다. 그나마 분교장이라도 남아 있으니 졸업생들이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모교를 기리고 있다.

노병들이 떠난 운동장엔 만국기만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월항초등학교 지방분교장의 가을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착한 마음, 튼튼한 몸, 의로운 힘'이라는 옛 지방초등학교 교훈이 돌비석에서 빛나고 있다.

19회 졸업생들이 칠순 생일상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19회 졸업생들이 칠순 생일상을 받고 즐거워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