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도 대구다] 군위에 이런 곳이....② 부계 한밤 돌담마을
[군위도 대구다] 군위에 이런 곳이....② 부계 한밤 돌담마을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3.07.26 14: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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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처럼 이어진 돌담 ‘육지 속 제주도’
수백 년 된 전통가옥 수두룩, 집터에서 나온 돌로 담 쌓아
팔공산이 품은 성안 숲 ‘힐링’
국보 109호 ‘삼존석굴’ 볼 만

군위가 대구로 편입이 되었다. 천 년 세월을 살아온 군위 한밤 돌담마을을 보러 갔다.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굽이돌아 넘던 고갯길이 터널개통으로 단숨에 만날 수 있었다.

군위 부계 돌담마을 정경
군위 부계 돌담마을 정경

군위 부계 한밤 돌담마을

대구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은 집마다 야트막한 돌담들이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나누듯 정겨운 모습으로 둘려져 있다. 영남의 명산인 팔공산 북쪽 사면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부계면 대율리. 우리말로는 한밤마을로 불린다. 이 마을은 정겨운 돌담이 미로처럼 연장 6km나 이어져 있어 ‘돌담마을’로 부르고 있다.

분지가 형성된 지질시대부터 이어진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육지의 제주도’라 부를 정도로 많은 돌이 마을에 남아있다. 밭이든 마당이든 땅을 파면 돌이 나오기에 그 돌로 자연스럽게 돌담이 조성되었다. 한밤마을의 역사는 군위삼존석굴(국보 109호·속칭 제2석굴암)의 조성 시기로 보아 7세기 후반 통일신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니 천 년이 넘는 것으로 짐작된다.

부림 홍 씨 유래

‘대율리 한밤마을’은 고려 중기 재상을 지낸 부림홍씨 입향조 홍란 선비가 이주해 오면서 부르게 되었다. 마을 이름은 원래 ‘대야리’라 불렸으나 밤 야(夜) 대신 밤 율(栗)로 고쳐 대율(大栗)리 한밤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마을이 형성되면서 집터와 농토를 닦을 때 땅 밑에서 파낸 돌을 처리하기 위해 그 돌로 땅의 경계를 삼은 것이 돌담의 시초이다. 수백 년 된 전통가옥이 수두룩한 가운데 집집마다 온통 돌담으로 되어 있어, 마치 아주 옛날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으로 마을 이곳저곳을 산책하듯 돌아본다.

한밤마을에 입향시조인 홍란과 9세손인 경재 홍로는 이 마을의 터를 닦았다. 홍로의 우국충정 정신은 후손에게 이어진다. 후손 중의 10세 홍귀달(대제학), 11세 홍언충(이조 좌랑), 15세 홍 여하(통정대부 추증), 23세 홍영수(통정대부) 등 걸출한 인물이 배출됐다. 현재 28세 종손 홍구헌 씨가 종택을 지키고 있고 학계에도 홍우흠(영남대), 홍대일(계명대), 홍원식(계명대) 등 많은 학자가 부림 홍문을 빛내고 있다.

의병대장 홍천뢰 장군 추모비
의병대장 홍천뢰 장군 추모비

성안 숲

대율리에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공간, 성안 숲이 있다. 성안 숲은 팔공산 자락이 마을의 동ㆍ서ㆍ남 방면을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홍천뢰 장군이 의병을 훈련 시켰던 곳이기도 하고, 마을을 보호하는 신성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깊다. 도로 양쪽으로 각각 만들어진 성안 숲에 몸을 이리저리 뒤튼 소나무들이 마을의 모습을 보일락말락 감추어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겨울 찬 바람을 막아 주는 것이 주(主)고, 여름에는 솔바람이 휘도는 시원한 쉼터 역할을 한다. 현재는 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908번 도로로 인해 숲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다.

마을이 팔공산 북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경치가 대단히 수려하고 마을 전체의 집들이 북향으로 배치된 점이 특징이다. 한밤마을은 고려 전기 이래 천 년을 이어온 부림홍씨가 터를 잡으면서 형성된 돌담과 유교문화의 흔적인 고택과 서당 및 서원, 불교문화의 흔적인 석불입상과 삼존석굴 등 다양한 문화재의 향기가 공존하는 유서 깊은 민속 마을로 요즘 전국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이 날로 늘어나는 명소이다.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

한밤마을의 경관과 문화재

한밤마을은 팔공산이 감싸고 있는 넓은 분지로 하늘 위의 마을처럼 보이니 무릉도원이 연상되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두 물줄기가 합류하듯이 팔자 형의 동문이 나그네를 맞이한다. 팔공산에서 팔자를 취한 이 조형물 꼭대기에는 오리를 올려놓았다. 과거 수해가 잦아 동제를 지낼 때 오리조형물을 두어 수해를 막고자 하였다. 어느 해 대홍수로 92명이 사망한 수해를 입어 마을 동쪽이 쓸려가는 바람에 물길을 돌려막기 위해 호박돌로 1km 가까이 방천을 쌓고 이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유적과 유물은 대율리에 군위대율리대청· 남천고택· 백원첩이 있고, 남산리에 휘찬여사목판· 경재실기목판· 포은 경재 간찰 유묵, 양산 서원이 있다.

녹음이 짙어가는 계절에 팔공산 산세에 감싸인 한밤마을을 찾아 돌담을 거닐며 불교와 유교 문화재까지 덤으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보시길 권한다.

찾아가는 길

팔공산 능선 한티재를 넘어 굽이굽이 돌아 넘던 길을 4km의 터널이 뚫리면서 직선의 도로를 달리게 되었다. 빠르게 흐른 시간만큼, 마을을 찾아가는 길도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