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여름 생활] 아름다운 섬 제주도
[슬기로운 여름 생활] 아름다운 섬 제주도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6.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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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풍경에 넉넉한 인심, 힐링 장소로 안성맞춤
해 질 녘에 즐기는 한치 낚시, 저녁 노을과 어우러져 장관
항구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항구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대부분 사람이 그러하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에 쫓기듯 살아왔던 내게, 어느 순간 서울을 잠시 떠나 조용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지치고 여러 힘든 상황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숨 막히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10여 년 전, 잠시 한두 달만이라도 쉬어 가기로 결심하고 이곳저곳 전국 여러 곳을 탐색하며 장소를 고르고 골라, 결국 제주를 힐링의 장소로 정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겼다. 제주 조천읍. 처음엔 이곳에 와서 그냥 일 년에 한두 달이라도 쉬어 가야지 생각했는데, 여기 사람들과 바다 풍경에 반해 하루 이틀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아예 여기에 집을 짓고 자리 잡게 되었다.

이국적 풍경과 마을 어른들의 넉넉한 인심. 거기에 내가 키우는 강아지들까지 대도시를 떠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이곳에 잘 적응하며,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에 젖어 오랜 쉼의 순간을 지금까지 즐기고 있다.

내가 있는 이 마을은 지금은 많이 발전하여, 집을 나서면 걸어서 식당과 편의점, 카페, 대형 슈퍼, 약국 등 주변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여긴 고요하고 자그마한 어촌마을이었다.

제주 전체를 6개월이나 돌아다녀 선택한 이곳은 바다가 깨끗하고, 어촌이지만 냄새도 없고 소박하며 노을이 어마어마하게 예쁜 곳이었다. 저녁 무렵 우리 강아지들을 데리고 집 앞 항구를 산책하면, 돌아오는 배들과 그 배를 감싸는 기명색 긴 노을은 감동의 물결로 찰랑대며 다가온다.

집 앞 항구에는 여름이면 가족 단위 낚시객으로 붐빈다.
집 앞 항구에는 여름이면 가족 단위 낚시객으로 붐빈다.

집 앞 바다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가장 유명하고 또 모두가 좋아하는 낚시가 ‘한치 낚시’이다. 한치는 성격이 매우 급하여 조금만 있으면 죽어 버린다. 여기와 처음 맛본 ‘한치 통 찜’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 한치 철을 늘 손꼽아 기다렸다 맛보곤 한다. 입 안을 유혹하는 그 맛 때문에 한치 철이 되면 이곳 항구는 늘 사람들로 가득 찬다.

자연이 주는 특별함 때문인지 여기서 수확되는 과일, 채소 등 모든 식재료는 너무나 맛있다. 소고기보다 더 비싼 그 유명한 돼지고기는 물론이고 봄이 되면 여기 주민들이 꺾어 오는 고사리 맛도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탱탱하면서 깊은 향을 선사한다. 제주의 무, 당근, 비트 등 모든 생산물이 ‘제주’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풍성하고 달콤한 맛을 안겨준다.

아버지는 서울에서의 삶을 접고 낯선 제주에 와서 정착하는 걸 탐탁지 않아 하셨다. 돌아가시기 두어 해 전 제주에 와서 머물고 바닷가를 산책하시며, 비로소 네가 여기에 내려온 이유를 알겠다고 하던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생신인 아버지를 위해 상을 차렸다. 고사리며 한치, 싱싱하고 소박한 제주만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차려 성묘도 하고 제도 지냈다. 비록 전 세계를 여행하며 맛보셨던 음식보다 화려하진 않아도, 막내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에 기쁘게 받으셨으리라. 평생 병원과 가족밖에 모르던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의 무게를, 그 혜안을, 그 넓고도 깊은 사랑을 느낀다.

돌담길에 핀 낮달맞이꽃과 진실이.
돌담길에 핀 낮달맞이꽃과 진실이.

제주의 여름은 아름다운 바다와 정겨운 꽃과 나무, 귀여운 동물과 함께 다가온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서울에 있을 때 누군가 내게 꽃을 선물하면 금방 시들어 버릴 꽃을 왜 주느냐고 얘기하곤 했었다. 사막처럼 메마르고 감성은 찾아볼 수 없던 도시 여자의 모습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하니하우스 근처에, 여름 야생화가 만발하다. 물도 공기도 좋은 환경 탓인지 도시에서 만나던 화려한 꽃이 아니라, 마치 아무 장식 없는 백자를 닮은 질박한 꽃들이다. 그 꽃들의 모습에 갈 길을 멈추고, 홀린 듯 쳐다본다. 쉬어가라고, 조금 삶에 쉼표를 찍어가도 괜찮다고 말을 건네는 듯하다.

‘하나’를 데리고 제주에 내려와 강아지들 외에도 고양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년 겨울 우연히 추위에 떨고 있던 고양이를 돌보기 시작한 후에, 고양이들이 내가 사는 집을 제집 드나들 듯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유로움을 배우며 점점 동물 친구들과의 교감이 늘어난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는 전설의 섬 이어도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의 여름은 여전히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론 폭풍우가 섬을 헤집고 상처를 내도, 섬은 그 생명의 힘을 놓지 않는다. 그 제주의 품속에서 꽃들은 꿈꾸고, 별들은 밤하늘을 빛내며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바닷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펄떡이는 생명의 힘으로 꽉 들어찬 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글· 사진 하니하우스 김은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