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여름 생활] 그림책 삼매경...삶을 예술로,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
[슬기로운 여름 생활] 그림책 삼매경...삶을 예술로,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
  • 시니어每日
  • 승인 2023.06.29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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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그림책버스· 미로정원, 마을 전체가 도서관이자 놀이터
“무지· 가난· 허약에서 탈출하자” 장길섭 촌장이 직접 만들어
서점을 나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2층 천장 높이까지 올라간 책장이 있다. 빼곡하게 들어찬 수천 권의 책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 제공
서점을 나와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2층 천장 높이까지 올라간 책장이 있다. 빼곡하게 들어찬 수천 권의 책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 제공

코로나로 긴 터널을 지나며 한없이 힘든 시간이 있었다. 대구의 번잡한 도로는 텅 비워지고, 지하철역 상가는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이라도 마주칠라치면 서로 눈을 내리깔고 외면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그림책이었다. 어린 시절, 그림책 한 권을 손에 넣기 위해 아버지를 졸라 서점을 찾곤 했다. 그림책 속에 나오던 ‘제라늄’, ‘구슬 달린 구두’, ‘하늘을 나는 흰말’, ‘바이킹’은 내 상상력을 자극했고 꿈꾸게 했다. 그 그림책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몇 시간 만에 글을 쓰고, 서울에 아는 작가에게 연락해 그림을 부탁했다. 여러 번 통화를 하고, 그림과 채색 하나하나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그렇게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었다. 나를 위로하고 싶어 만든 그림책. 그 그림책은 출간하지 않은 채 여전히 외장하드에 담겨 있다. 이 나이에 웬 그림책이냐고 하지만, 그림책은 마음을 치유하고 희망을 품게 하고 일어서게 한다.

그때처럼 올여름에는 그림책에 빠져 지내고 싶다. 혼자가 아닌 친구끼리, 가족끼리 찾아도 좋은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이다.

음악감상실에는 장길섭 촌장이 수집한 CD와 음반으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음악 CD를 가지고 가면 감상할 수도 있다.
음악감상실에는 장길섭 촌장이 수집한 CD와 음반으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음악 CD를 가지고 가면 감상할 수도 있다.

책을 통해 삶을 예술로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충남 금산군 진산면)은 1991년 ‘ALP삶의질향상센터’에서 시작되었다. 장길섭 촌장은 의식향상프로그램(ALP: Art of Life Program)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속상하고 힘들고, 억울하고 슬픈 이야기.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은 다음에 자녀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장 촌장은 많은 가족을 만나며 가난과 무지가 대물림되는 현실을 보고 ‘교육과 책’의 중요성에 주목했다. 그렇게 무지와 가난과 허약으로부터 탈출하자는 슬로건 아래 대안학교 ‘레드스쿨’을 설립했다.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이번에는 어릴 적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3대가 함께 책을 읽고 즐기는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을 지었다.

책 속에는 길이 있고 스승이 있다. 0세부터 100세까지 3대가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다.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은 책을 통해 삶을 예술로 가꾸는 삶의 예술가가 되라고 하는 장길섭 촌장의 큰 그림 위에 세워졌다.

미로 정원
미로 정원

마을 전체가 도서관이자 놀이터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에서는 초록빛 숲속에서 그림책을 읽을 수 있다. 건물의 복도와 계단은 물론 숲길과 정원, 근사한 한옥의 대청마루까지 마을 전체가 도서관이자 놀이터다. 넉넉한 독서 공간과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숲속의 도서관이다.

360년 된 향나무와 느티나무, 돌과 풀과 꽃, 명상 정원 레버린스와 메타세콰이어길, 미로 정원. 매미 소리와 바람결과 구름이 환상의 세계로 손짓한다.

마을의 입구는 살림 대문이다. 전북 고창군에 있던 종갓집 재실의 실제 대문을 옮겨온 것으로, 살림 대문이라는 이름은 ‘살리는 기운을 크게 얻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재실은 본관 건물과 마주하고 있다. ‘책과 노닌다’라는 뜻을 담아 서유당(書遊堂)이라 부른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책 몇 권 옆에 끼고 머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집이다.

본관으로 들어서면 넉점반 도서관과 서점이 반긴다. 서점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서점 안 벽면은 원화를 전시하고 있는데, 마음에 들면 구입할 수도 있다.

본관에서 나와 걸어가면 노란색 그림책버스와 정원이 나온다. 그림책버스는 아이들에게 인기 높은 버스도서관이다. 아이들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버스를 타고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놀고 싶으면 당장 숲으로 달려가도 된다. 그림책버스 주변에 조성된 미로 정원과 아하 정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미로 정원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로 모양의 정원이다. 가운데 있는 정자에 도착하기 위해선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금세 닿을 것 같지만 돌고 도는 길이다. 미로에 빠진 듯 길을 헤매고 다시 찾는 경험이 새소리, 발소리, 우리 주위에서 나는 작은 것에도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시행착오라는 경험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짧은 산책으로 배운다.

고택 스테이. 긍구당 전경
고택 스테이. 긍구당 전경

긍구당에 묵으며 옛 선현의 정신을

긍구당은 조선 제25대 철종 재위 기간에 지어졌다. 충남 논산에서 처음 지어진 후 180년간 세월의 풍상을 견디어 오다, 이곳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로 옮겨졌다. 중부지방에서 많이 지었던 ‘ㄱ’자형 전통 한옥으로, 화려한 팔작지붕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한옥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자연의 품에서 책을 만날 수 있는 곳. 세대를 넘어 함께 읽고, 함께 나누고, 함께 모여 ‘가족’이 되는 곳. 금산지구별그림책마을로 여름 여행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