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옻나무' 우듬지
'개옻나무' 우듬지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3.06.2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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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싹, 나물문화 우듬지
산새들 비상식량 개옻나무 열매
경산시 성암산에 서식하는 '개옻나무 꽃'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개옻나무의 꽃말은 ‘현명’이다. 흔한 옻나무 종류로 그다지 쓸모없다는 뜻에서 ‘개’ 자가 더해진 이름이다. 옷나무로 기록된 바 있다. 옻나무란 명칭은 15세기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에서 기록된 오래된 한글명이다. 한글명 옻나무는 옻이 오른다라고 할 때 어간 오(옫, 옺, 옻)와 나무의 합성어다. 옻나무는 건칠(乾漆, 마른 옷)이라 해 한방 약재로도 사용하지만, 1900년대 초까지도 칠전(漆田)이란 명칭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했다.

옻나무는 용도가 많다. 독특한 옻나무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옻나무는 물론이고, 개옻나무도 어린 싹을 채취해 삶아서 나물로 먹었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살아남기 위한 나물문화의 우듬지다. 오늘날 옻나무는 대부분 식재된 개체이거나 그것으로부터 탈출한 개체가 드물게 야생하지만, 개옻나무는 아주 흔하게 자생한다. 종소명 트리쵸카르파(trichocarpa)는 꽃차례와 열매에 털이 많은 것에서 유래하는 라틴어로 옻나무와 구별되는 점이다.

'개옻나무' 열매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개옻나무는 동북아 삼국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에도 분포한다. 수평적으로 우리나라가 분포의 중심지이며, 대륙성 요소이고, 하록활엽수림을 특징짓는 종이다. 개옻나무의 서식처 조건도 아주 폭넓다. 밝은 빛만 충족된다면, 습한 계곡에서부터 건조한 산등성이까지 산다. 직사광선이 숲 바닥에 도달할 정도로 밝은 숲속이나 숲 가장자리가 최적 서식처다. 이 차림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수종으로 자연림보다는 잡목림처럼 인간간섭으로 교란된 숲속에 즐겨 산다. 줄기 다발을 만드는 능력(萌芽力)도 매우 왕성하다.

숲 가꾸기를 한다고 속아 낼수록(間伐), 숲 바닥을 벌채할수록, 개옻나무는 다시 솟아나고 더 잘 살아간다. 개옻나무가 농촌 근처 숲속에 흔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개옻나무 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이고, 새들이 열매를 발견하고 찾아먹기에 더욱 용이한 입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훤해진 밝은 숲은 개옻나무에게 더없이 좋은 기회의 공간이다. 인간간섭이 많은 숲에는 개옻나무 암그루가 많다. 오랫동안 열매를 달고 있기 때문에 초봄까지 굶주린 산새들의 비상식량이 된다.

숙성된 '개옷나무' 열매 모습.  사진 여관구 기자.

옻나무보다는 덜하지만, 우루시올(urushiol) 물질의 알레르기 현상으로 옻을 타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우루시올이란 명칭은 일본말에서 유래하는데, 야마우루시(山漆, 산칠)는 산에 나는 옻나무란 뜻이다. 그런 일본의 옻나무 문화는 한반도에서 전래되었고, 7세기에는 이미 옻나무를 재배했다고 한다. 줄기에 상처가 나면, 유액의 백색 칠(漆)이 분비되고, 잠시면 산화되어 흑색을 띤다. 속명 루수(Rhus)는 그리스(Gresia)의 옛 이름(Rhous)에서 유래한다. 개옻나무의 속명을 톡시코덴드론(Toxicodendron)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독성이 있는 나무란 의미다.

정착농경사회의 마을 가까이에서 흔하고 자주 마주치는 야생의 생명체일수록 자원으로서 그 유용성에 대한 인류 경험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옻칠은 그리스를 지나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인류문화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옻나무 문화는 이집트의 그것과 동형진화(convergent evolution) 또는 평행진화(parallel evolution)인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그 증거가 되는 물질적 기록과 유물이 없다고 침묵해야 한다면, 지혜의 동물 인간의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식물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한반도 지사(地史)와 문화사 그리고 생태학 정보를 아우르면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